내 자신에 걸어가는 첫걸음 : 뚜르드 몽블랑을 걷다 (TMB)
살면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해야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받는 사람으로 남느냐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긍정적인 면모를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이 사랑받는 행복한 사람으로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나는 주로 "아무거나 좋아요",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의 의견을 내곤 했다. 어떻게 하든 상관없다는 것은 상대에게 선택권을 넘겨준 다는 의미이고, 상대방이 선택을 하게 함으로써 기분을 상하게 만들지 않는 방어 책이기도 했다. 나는 이러한 태도를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속해왔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이 싫은지 알아볼 틈도 없이. 어쩌면 나의 인생은 그때부터 길을 잃어버린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에게 나는 너무나도 이상적인 사람이지만, 사실 스스로는 누군지 알 수 없는 빈껍데기 자신을 보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런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된 첫 번째 장소가 있다.
굽이 굽이 펼쳐진 광활하고 거대한 산, 그 사이로 흐르는 작은 냇물,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 한 폭의 그림 같은 곳 뚜르 드 몽블랑 트레일 (tour du montblanc)이다. 이 길은 10일간 170km를 몽블랑 산을 중심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3개국을 지나게 된다. 텐트를 치고 잠을 자고, 직접 밥을 해 먹으며 1000m의 산을 매일 오르고 내려가고를 반복하며 10일이란 시간을 채우게 된다.
나는 당시 14kg가 넘는 배낭을 지고 잘 해낼 것이라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길 양옆으로 나있는 작은 꽃들, 잔잔히 흐르는 에메랄드 빛 냇물, 하늘은 청명하고 모든 것이 완벽했다. 가방의 무게가 무겁긴 했지만,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착각이었다. 장거리 트레일을 너무 쉽게 본 것이다. 매일 1000m 무거운 짐과 함께 오르기를 반복하니 신체적, 정신적으로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가장 힘든 것은 바로 배낭이었다. 배낭이 몸에 맞지 않아 어깨 끈이 쇄골과 뼈를 짓누르는 것이다. 계속해서 마찰이 되니 빨갛게 부어올랐다. 한걸음 한걸음이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뒤처지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나와 맞지 않은 속도로 꾸역꾸역 오르막을 올랐다. 오빠는 나에게 힘들어 보인다며 괜찮냐는 물음을 던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의 약점이 드러날까 연신 괜찮다는 말로, 나를 포장했다. 나는 오르막을 오를수록 걷고 멈추고를 반복했다. 뒤를 따라오던 오빠는 나의 속도를 맞추기 어려웠는지 지친 얼굴이 역력했다.
"민아야, 너 속도에 맞게 걸어 급하게 갈 필요 없어. "
오빠가 던진 그 말에 나는 불같이 화를 냈다.
"이게 내속 도야. 나름대로 잘하고 있는데 왜 자꾸 그런 말 하는 거야?"
나는 길을 걷는 내내 멋진 풍경을 두고 화만 내고 있었다. 심지어 이 길이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3일 동안 길을 걸었는데 내 가슴속에 정말 남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것이라곤 땅만 보고 걸었던 기억뿐이다. 생각해보면, 여행을 떠나기 전 누군가와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방전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마치, 길고 긴 1인극을 마친 연기자처럼 아무런 힘 없이 침대에 무표정으로 공허하게 누워있는 느낌이랄까. 오빠에게 화를 내는 순간 나는 그때가 떠올랐다. 즐거운 시간이라고 포장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남겨지지 않는 공허함. 나는 분명 수많은 아름다움을 지나쳤을 것이다. 아름아름 춤추는 꽃들, 깊고 푸르른 하늘, 광활하고 거대한 산자락. 그 누구는 이곳에 오는 것이 평생소원이라고 할법한 장소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다니
잠시 후, 문제가 터졌다. 오빠가 엄청난 고통을 호소하며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는 재빨리 오빠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는 바닥에 발을 딛기만 해도 고통을 호소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 길을 걸어 나아가야 할지, 포기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그늘 하나 없는 뙤약볕 아래 주저앉아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순간 오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늘 나의 속도를 맞춰주던 그. 어쩌면 페이스 조절을 못한 나 때문에 무릎에 무리가 온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길을 포기하고 싶었다. 비겁하게 미안하다는 핑계로 길을 그만두자고 제안했다. 오빠는 한참을 바닥에 앉아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말이야.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힘들게만 느껴지는 건 어쩌면 우리의 속도대로 걷지 않아서 일지도 몰라. 천천히 가면 어때. 우리만의 속도대로 천천히 다시 한번 걸어보자"
머리가 멍해지는 느낌이다.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나답게 삶을 살아온 적이 없다. 남들이 빨리 가면 빨리 갔고, 남들이 좋다는 건 좋다 생각하려 했다.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어야 행복이라 생각했기에 늘 그것에만 초점을 두고 살았다. 어쩌면 이번에야 말로 나답게 걸어 나가는 첫 번째 길이 되어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음을 두배로 늦췄다. 이전에는 오르막에 오를 때 빠르게 오르고 쉬 고를 반복했더라면, 한걸음 한걸음 숨이 차지 않을 정도의 속도를 두고 쉼 없이 걸어 나갔다. 걸음을 늦추니 크고 작은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무릎이 아프다고 호소하던 오빠의 무릎은 점점 나아지기 시작했고, 그동안 오르막을 오르며 보이지 않았던 아름다운 풍경을 만끽하는 여유도 부리게 되었다. 무엇보다 불평불만이 사라졌고. 그동안 땅만 보느라 이야기 나누지 못했던 길 위에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작은 추억들이 아름아름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신체적으로 지친 매일이 반복되긴 했지만, 우리는 작은 것에 즐거워했으며 진심으로 행복했다.
길을 마치며 지난날의 나를 떠올렸다. 스스로에 대해서 은둔할수록 매일이 완벽해진다고 생각해왔던 날들. 오늘도 성공했다. 오늘도 무사하다. 이렇게만 반복된다면 정말 행복해질 거다라고 굳게 믿어왔던 시간. 인생을 살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마주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숨을 것인가. 아니면 맞설 것인가. 나는 숨는 것을 택했고, 그렇게 2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보냈다.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나약함을 바로 보아야 나약함과 맞설 수 있다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야 성숙해진 나에게로 걸어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