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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어의상상 Nov 02. 2020

0# 단 한순간도 괜찮지 않았다.
(프롤로그)

흐르지 않은 마음은 곪기 마련이다.

"여행 이후에 변한 것들이 있나요?"
"변한 게 있다면 마주하기 두렵던 나를 바로 보게 된 것이죠"     


태어나서 첫 번째 기억은 가족들이 빙 둘러앉아 나를 지켜보던 기억이다. 모두가 동그랗게 둘러앉아서는 심각한 표정으로 누가 나를 키울 것이냐며 진지하게 대화하던 모습. 주눅 든 얼굴을 하고 숨어 옷자락을 꼭 쥐던 나. 눈치 게임하듯 서로 눈치 보며 한숨만 푹푹 내쉬던 얼굴. 나를 바라보는 무서운 표정. 정적을 깨고 덤덤하게 나를 키우겠다는 큰엄마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고작 내 나이 3살 밖에 안됐는데 그때 그 기억이 삽십대가 된 지금도 생생하다. 큰엄마는 나의 유년시절을 지켜준 사람이자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사랑이었다. 나는 운이 좋게도 큰엄마 밑에서 부족함 없이 사랑받으며 성장하였지만, 버림받은 상처가, 다행이다는 이유로 지워지지 않았다.      


"불쌍해서 어떻게..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가 이혼을 해서 "
"그래도 큰엄마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나는 불쌍한 아이 취급하는 말들이 싫었다. 안정적인 가정에서 벗어난 삶의 형태는 나에게 유년시절 사랑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들로 매일 밤을 지세 게 하였다. 애정에 대한 압박은 나의 신체적 변화에 까지 끼쳤다. 매일 밤, 잘 시간이 되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도통 모르겠는 불안한 심호흡. 몇 번이고 숨을 쉬어보려 노력해야 진정이 되었다. 안정이 찾아오면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나의 이상 변화가 내 삶인 것만 같아서 우울해지곤 했다. 몽유병도 심했다. 한밤중에 2시간 동안 앉아서 갑자기 우는가 하면, 온 집안을 돌아다니고 문을 두드리기 일 수였다. 큰엄마 손을 꼭 붙잡고 병원에 가던 날.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애정결핍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결핍.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 않는 나의 오점. 결핍은 결국 나를 형용하는 또 다른 자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결핍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과열되었다. 남들이 싫은 일을 해도 웃어 보여야 한다. 나는 무엇이든 말잘 듣는 아이 어야 한다. 안정적인 가정 아래 성장한 아이처럼 행동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해 주게끔 만들어야 한다고 프레임을 씌우기 시작했다.     


나는 아프지 않다.     
나는 씩씩하다.     
나는 행복하다.

          

스스로를 다그치고 방치하며  20년이란 세월을 보냈다. 참 오래도 버텨낸 것 같다.

폐기되지 못한 것들은 썩어 들어가기 마련이다. 내 마음 역시 그러했다. 


모든 관계에서 호인이어야 한다는 압박

항상 타인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무

인간관계에서 버림받고 미움받지 않도록 죽을 듯이 노력했다. 당연히 그런 내가 괜찮을 리 없었다.



여행을 생각했던 것은 뜬금없이 나온 한마디로부터 시작되었다. 애인과 술 한잔 하다 무심코 꿈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세계여행이라고 답했다. 나는 사실 단 한 번도 세계여행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타의 중심적으로 살아온 내가 당연히 나 자신에 대해 알리가 없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지조차 몰랐으니까. 그저 어디서 인가 '세계여행' 참 멋진 일이야 라고 들었던 기억에 무심고 뱉은 말이었다.


그 당시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람들과 만나도 즐겁지 않았고. 그 누구를 만나도 편하지 않고 에너지가 소비되는 느낌이 들었다. 나란 존재가 소멸되어 하늘로 둥둥 떠다니는 느낌에 매일 밤을 울었다. 아침에 거울을 보며 온갖 괴로운 표정으로 웃어 보일 때면 


"이제 정말 행복해져야지" 


자신에게 말해주곤 했다. 


지금의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지긋지긋한 '괜찮은 사람' 프레임도 벗어던지고 싶다.

나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괜찮지 않았다고, 동네방네 소리치고 싶다. 더 이상 억지로 괜찮아지는 일은 그만두겠노라 다짐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만두어야 할까? 휑설수설 정신 못 차릴 때 세계여행은 나의 뒤통수를 때렸다.


어쩌면 나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공간으로 가면, 나 자신을 바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남들이 멋지다고 말하는 그 세계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진정한 나에게로 걸어 나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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