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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어의상상 Oct 28. 2020

3# 살고 싶었다.

아니,  그저 평범하고 싶었을 뿐이다.

        

“ 오빠 숨이 잘 안 쉬어져 ”   


아콩카과 산에 오른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겹겹이 껴입은 옷 사이로 칼 같은 바람이 파고든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공기의 소멸, 내 코는 공기를 찾아 이리저리 벌름거린다. 

정상에 오를 때까지 먹을 식량과 장비를 가득이고 힘겹게 내 딘다. 숨이 너무 차서 걸음을 멈추고 정상을 바라본다. 단단하고 거대한 몸, 날카로운 이를 내세우는 괴물. 나는 저 괴물 위에 올라설 수 있을까? 해발고도 6962m의 공포감이 밀려든다. 눈을 뜨고 있는데도 감은 것처럼 내가 갈 길은 아득하기만 하다.     


걷다 보니 캠프 1이 보인다. 오자마자 가방을 내팽겨 치듯 내려놓고 맨바닥에 철퍼덕 앉았다. 눈앞에 보이는 말도 안 되는 풍경.  발아래 작게 수놓은 사람들이 보인다. 자연 앞에서 우리는 작은 점임을 깨닫는다. 시선을 옮겨 정면을 보았다. 흰 무스탕을 멋지게 차려입은 산자락. 적막함 속에서 그 자리를 견고히 버텨내는 저 모습을 보라. 아름답다. 내 입에서 작은 탄성이 새어 나왔다.     


‘아!’          


멍하니 산을 바라보는데 그가 정적을 깼다.     

 

“민아야 해지기 전에 얼른 텐트 치자.”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그와 나는 가방에서 모든 장비를 꺼냈다. 기압이 낮아 빠르게 몸을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최대한 빠르게 텐트를 쳤다. 식량과 겨울장비는 카고백에 잘 감싸서 텐트 뒤에 두었다. 바람이 워낙 사나워 날아갈 수 있기에 무거운 돌을 가방 위에 가득 올려두었다. 텐트도 돌과 연결하여 날아가지 않도록 고정해 두었다. 


캠프 주변에 있는 깨끗한 눈을 잔뜩 퍼 날랐다.  ‘물’을 만들기 위함이다. 

물이 없으면, 정상에 오르지도 살아날 수도 없다. 필사적으로 물을 끓이고 끓였다. 

눈을 코펠에 올려 녹이고 더러운 잔해를 걸러 내었다. 걸러내다 물을 조금 쏟을 때는 그게 아까워 눈물이 찔끔 날 지경이었다. 밥을 지어먹을 식수를 만들고 텐트 안으로 쏙 들어왔다. 새빨간 텐트도 추위에 정신을 잃은 듯 새파래졌다. 나는 하얗게 질린 텐트 안에서 계속 중얼거렸다.

      

“춥다. 춥다. 너무 춥다...”      


손은 이리저리 옷자락을 끌고 와 몸 둥아리에 걸친다. 저녁이 되면 기압이 낮보다 더 낮아진다. 가만히 있는데도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어깨를 폈다 굽혔다를 반복하며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괜찮냐며 나의 상태를 체크한다. 빵빵해진 몸을 침낭 안으로 욱여넣는다. 누우니 더 숨이 막힌다. 

      

“오빠 숨이 잘 안 쉬어져... 무서워..”          


나는 무의식적으로 최악을 상상했다. 내쉬는 숨 한 모금에 내 인생이 끝난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나는 덤덤했다. 깊은 잠에 빠져도 미련 없는 삶이라 생각했다. 조용히 눈을 감았다.      

껌껌한 시야 사이로 과거의 내가 비치기 시작했다.



띠리 리리. 띠리 리리 


주인 없는 전화 벨소리, 수십 통을 전화해도 받지 않던 그녀, 무거운 수화기를 들고 손을 부들부들 떨던 그 시절의 나.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초라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어린 시절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면 친구들은 늘 부모님과 보낸 행복한 시간을 이야기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혔다. 가슴 안에 누가 돌을 가득 넣어 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지경이었다. 가슴을 찌르는 이야기들을 잠자코 듣던 나의 어린 시절은 모든 것이 안개처럼 자욱했다. 나는 쉬어지지 않는 숨을 억지로 내뱉곤 했다. 어쩌면 살아내기 위한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민아야! 너 괜찮은 거지? ”           


누군가가 부르는 애절한 목소리에 눈을 떴다. 그는 잔뜩 겁이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두 어깨에 느껴지는 그의 손길.         


“나 괜찮아.. 오빠”          


숨이 안 쉬어진다고 말하고 금방 잠에 들어버린 내가 혹시나 잘못될까 걱정했나 보다. 언젠가 아콩카과 원정을 다녀온 대장님이 어느 하이커가  이산에서 자다가 고산병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그는 혹여 내가 그리될까 무지 걱정이 된 모양이다.


그는 내 얼굴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이상하게도 그의 걱정스러운 얼굴에 숨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새벽의 추위는 내 살을 더욱 파고들었다. 하지만 춥지 않았다. 왠지 모를 따뜻함이 나를 적셨다. 나는 차가운 눈덩이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 들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을 때 딱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 나는 원망과 분노가 아니라

그저 사랑을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저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나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곪아버린 상처를 한 번에 털어내지는 못하겠지만 

세상의 새로운 면을 구경하는 동안 한 조각씩 상처의 파편을 빼내고 싶다.


오늘 밤 나는 마음속의 작은 파편을 쌓인 눈 속에 묻었다. 추운 계절을 단단히 버텨내는 저산처럼, 누군가 바라보았을 때 슬픔과 아픔이 아닌, 작은 탄성이 새어 나오는 아름다움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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