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파고드는 강렬한 햇살, 거친 숨소리, 온몸에 흙투성이가 된 채 끝을 알 수 없는 길 위를 비틀비틀 걷는다. 지고 있는 가방은 14kg, 발에는 터져버린 풍선처럼 일그러진 물집이 흥건히 적시고 있다. 발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태양을 바라본다. 희미한 시야로 얕은 말소리가 들린다.
“아이는 누가 키울 것인가요?”
내 나이 고작 3살.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목소리. 선명하고 차갑던 그 목소리에 잠든 나의 기억이 깨어났다. 서로 눈치 보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표정, 나를 안쓰럽게 쳐다보는 수십 개의 눈. 나는 그 눈들이 무서워 큰엄마 품을 파고들었다. 차가운 공기가 흘렀다. 모두 나라는 존재를 감당하기 망설이는 눈치다. 한참 후 누군가 정적을 깼다.
“제가 키울게요.”
부드럽지만 결단 있는 목소리, 한 손에는 나를 안고, 큰엄마는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쳐다보았다. 걸음마를 띠기 이전에 나는 부모님의 이혼으로 큰엄마 손에 길러졌다. 어린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부모님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나는 스스럼없이 큰엄마 이야기를 했다. 엄마 이야기를 하지 않은 나를 친구들은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나는 고개 숙이지 않았다. 그것이 내가 이 세상에 살아 숨 쉴 수 있게 만들어준 큰엄마에 대한 보답이자 의리라고 생각했으니까. 가끔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잘 지내니, 학교는 잘 다니고 있니?"
마치 친구에게 안부를 묻는 것 같은 전화. 자주 보러 오지 않은 엄마, 가끔 한번 하는 전화가 전부인 엄마가 미웠다. 당신 없이도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더 씩씩하게 괜찮은 척했다.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엄마와 통화할 때마다 나의 결핍을 확인받는 것만 같아서 전화를 받고 나면 열병을 앓는 사람처럼 며칠 동안 끙끙 앓았다. 그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은 채. 미련하게도 나는 나의 결핍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지 못했다. 사실 나는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깊은 땅속에 영영 묻힐 보석이 누군가의 손길로 세상 밖에 나와 찬란히 빛나는 보석이 되었다고.
사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나의 의지로 남이 보기에 잘 익은 살구처럼 살아왔다. 가족이든 남이든 그들 눈에 좋아 보이는 일이 있다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그런 일들을 해왔다. 상처 받은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 않아서, 큰엄마에게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성인이 되고 대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어느 날 애인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미국에 4300km를 걸어서 종단하는 PCT라는 길이 있데, 6개월 동안 너랑 이 길을 꼭 같이 걷고 싶어.”
나는 그가 드디어 미쳤다는 생각을 했다. 길게 걸어봐야 4일 이상 산행을 해본 경험이 없었는데 매일 6개월 동안 산길을 걸어야 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도대체 무식하게 그런 길을 왜 걷느냐고 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날수록 PCT라는 길은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세계여행이라는 큰 그림에 그곳을 가는 일이 나의 상처를 벗어 내 던져줄 큰 점이 되어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먹음직스럽게 길러진 살구는 행복했을까?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물었다. 사람들 입속으로 소멸하는 그 순간까지도 스스로 만족하지 못했을 거다. pct라는 거대한 길에 내가 내쳐지면, 조금 더 쉽게 지난 상처를 꺼낼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반드시 긴 여정을 선택할 것을 다짐한다.
CEPTER. 2 길 위에 올라서다
“민아야! 괜찮아? 앞에 그늘이 있으니 잠시 쉬고 가자”
정적을 깨는 목소리, 14kg 가방을 메고 지칠 대로 지친 두 다리를 억지로 내디딘다. 여기는 South California의 모하비 사막이다. 매일이 무더위와의 싸움이다. 30도가 넘는 날씨가 이어지는가 하면, 마운틴 라이언,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갈 수 있는 독성이 강한 전갈, 방울뱀을 이곳저곳에서 만나기도 한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텐트를 접고, 온종일 걷고 멈추고를 반복한다. 해 질 녘쯤 텐트를 칠만한 캠프 사이트를 찾으면 하루가 끝나는 것이다.
드넓은 대자연 속에 우리 둘만 있는 것은 아니다. pct 출발 전에 트레일 엔젤 하우스에서 만났던 수현이도 함께다. 그녀를 처음 봤을 때가 잊히지 않는다. 선명한 눈빛, 자유분방해 보이는 표정, 체구가 아담한 이 아이는, 산 경험도 없이 소설 wild의 여주인공처럼 무작정 이곳 PCT에 왔다. 수현이는 오랫동안 세계여행을 한 배낭 여행자라고 했다. 왠지 모를 내공이 느껴지는 그녀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셋이 되어 함께 길 위에 오르게 되었다. 나와 오빠는 각자 악기를 들고 다녔다. 나는 우쿨렐레를. 오빠는 기타를 챙겼다. 살인적인 날씨에도 셋은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걸었다. 노래의 시작은 먼저 운을 떼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바람이 불어올 때면 한 사람이 노래를 시작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러면 자동으로 나머지 사람들은 다음 구절을 함께 불렀다. 셋이서 함께 노래를 부르며 길을 걸을 때면 지쳐있던 온몸이 충전되는 것처럼 두 다리가 가벼워졌다. 우리는 매일 저녁 노래를 연습했다. 떠나오기 전에 준비해온 악보를 가방에서 꺼내어 2인용 텐트 안에 셋이 들어가 함께 노래를 불렀다. 거세게 부는 사막의 바람에 모래가 텐트에 한 움큼씩 들어오는데도 우리는 모래가 눈에 들어가는지 입에 들어가는지 상관하지 않고 깔깔깔 거리며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다. 멜로디에 우리는 함께 웃고, 서로의 눈을 마주하고, 천진난만한 웃음을 나누며, 각자의 삶을 나누었다. 그럴 때면, 나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한 소소함 이상의 행복을 느꼈다. 이곳에서의 아무것도 없는 삶이 진짜 나의 행복을 조금씩 찾아주는 것 같았다.
“큰일이다, 물이 없어”
지도를 확인하더니, 물 포인트에 물이 없다며 한숨을 쉰다. 지금 물을 구하지 못하면 한참을 더 걸어가야 하는데 어쩐다. 물 없이 다음 물 보급 장소까지 가는 것은 무리이다. 혹시나 주변에 물 흐르는 곳이 있는지 두리번거리는데 저 멀리 거대한 드럼통이 보인다. 왠지 물이 있을 것 같은 마음에 드럼통 가까이 달려가 본다. 물이 있기는 한데 물 색깔이 무언가 이상하다. 조금 더 가까이 물을 들여다보니, 녹조가 낀 초록색 물이다. 게다가 수십 마리가 넘는 모기 시체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다. 우리 셋은 사색이 되었다.
“설마, 이 물을 보고 물 포인트라고 표시되어 있던 건 아니겠지?”
주변을 살펴보니 푯말이 있다. ‘horse water’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갈증을 참고 20km를 더 걷느냐, 아니면, 그냥 이 물을 필터 해서 마시느냐. 고민에 빠졌다. 이미 20km를 넘게 걸어왔는데 여기서 더 걸으면 오늘 40km를 걷는 셈이다 중요한 건 물도 없이 말이다. 나는 그럴 자신이 없었다.
"20km를 물 없이 걷느니 차라리 말 물을 마시겠어. "
우리는 각자 챙겨 온 쏘이어 물 정화 필터기를 꺼내어 정수하기 시작했다. 정수하는 내내 딸려 들어오는 모기 시체들에 얼굴이 찌푸려졌지만, 그래도 물이 있는 것이 어디냐며 우여곡절 끝에 얻은 4l의 물을 지고서 캠프 사이트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 밤 텐트 안에서 셋이 옹기종이 모여 행복하게 밥을 지어먹었다. 아까 보았던 모기 시체들이 눈에 선했지만 먹는 순간 그 모든 것은 사라졌다. 내 입에 들어오는 따듯한 밥알 하나하나가 오늘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는 듯했다. 물, 음식, 푹신한 침대, 매일 하는 샤워가 내 삶에 얼마나 큰 부분 행복으로 차지하고 있었는지 절실하게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