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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어의상상 Dec 02. 2020

# 나만 몰랐던 엄마 이야기

4300km PCT 미국도보종단길  여행기

South California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우찬이와 재홍이다. 이들 역시 기나긴 PCT를 걷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 출발 전에 트레일 엔젤 하우스에서 만났었는데 그 이후 먼저 길을 떠나와서 한참을 보지 못했다가 중간에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모든 PCT하이커는 이 길을 걷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뜨거운 전우애를 나누게 된다. 길을 걷다가 가끔 외국인 하이커 친구들을 볼 때면 마치 전쟁터에 나갈 준비를 하는 군인처럼 비장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우리는 빛나는 전우애를 이곳 pct에서 나누고 있다. 머나먼 땅 미국에서 한국인 하이커 5명이 길을 같이 걷기 시작했다.


수현이, 재홍이, 우찬이, 나, 그리고 오빠 걸음 속도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따로 걷다가 캠프 사이트에서 만나기를 반복했다. 어느 날은 함께 길을 걷다 뜨거운 날씨에 힘이 들어 겨우 발견한 그늘에 들어가 자리를 깔고 누웠다. 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우찬이가 말을 꺼냈다.     

  

“큰일이다, 나 이제 물이 얼마 남지 않았어.”          


우찬이의 말에 물을 나누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나의 물을 체크했다. 나는 가방 옆 주머니에는 1L 물병, 가방 안쪽에는 3L짜리 수낭을 짊어지고 다녔는데, 오늘 수낭 물을 얼마 안 마셨던 기억이 나서 나에게 있던 1L의 물을 우찬이에게 건네주었다.          


“자! 이거 마셔 내 수낭에 물이 남아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우찬이는 연신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나는 그냥 받으라며 물을 넘겨주었다. 한참을 쉬고 난 뒤, 우찬이와 재홍이가 먼저 출발을 했고, 다음 차례로 수현이, 마지막으로 우리가 길 위에 올라섰다.



지도를 보니 다음 마을까지 약 3시간 정도 걸으면 될 것 같다. 속도를 높였다. 마을에 도착하면 샤워도 할 수 있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으니 자동으로 걸음이 빨라졌다. 하지만 무더운 날씨는 온몸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목이 말라 수낭에 연결된 호수를 빨았는다. 한 모금. 두 모금          


“어?!! 물이 왜 안 나오지?”          


수낭 호스를 빨았는데 물이 나오지를 않는다. 간혹 가방에 물건이 수낭 호수를 눌러 안 나올 때가 있어서 걸음을 멈추고 가방을 열어 보았다. 수낭을 살펴보는데 세상에! 물이 없다!           


“오빠! 물이 없어”          


분명 수낭에 물이 가득했었는데 무언가 이상하다 싶어 어리둥절해있을 때쯤. 오빠도 가방을 내리고 수낭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허! 내 가방 수낭에도 물이 없어! 무슨 일이지?”          


알고 보니 그늘에서 쉴 때 가방 옆에 연결되어 있던 호스가 가방에 눌려서 물이 모두 새어버린 것이다. 갑자기 하늘이 노래졌다. 앞으로 3시간 물 없이 30도가 넘는 이 온도에 산길을 걸어야 하는데. 이를 어쩐담. 나는 지금 죽을 듯이 목이 마르다. 심지어 우리가 마지막 순서로 길을 나섰기 때문에 우리에게 물을 나누어줄 사람을 만날 수도 없다.      


“오빠 우리 이제 어쩌지?”     


“방법은 하나야 수현이를 따라잡자! 수현이는 분명 물을 가지고 있을 거야!”          


우리는 그때부터 먼저 앞서간 수현이를 따라잡기 위해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삼키며 언제 만날지 모르는 수현이의 그림자를 상상했다. 점점 타들어 가는 입, 흥건히 적신 옷을 부여잡고 달리고 또 달렸다. 땀을 흘릴수록 내 몸에 필요한 수분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표정은 점점 일그러지고 거의 울기 직전으로 상태가 점점 나빠졌다. 한 시간 반 정도가 지나자 저 멀리 수현이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빠! 저기! 저기 수현이 같아!”      

“수현아!! 수현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수현이의 이름을 불렀다. 사실 나의 울부짖음은 수현이 이름이 아니라, 살려달라는 울부짖음이었다. 수현이는 길을 걷다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인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얼굴로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나는 수현이의 얼굴을 보자마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여보세요? 엄마?”          


대학교 2학년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대학생이 되고 나서 엄마는 나에게 전화하는 빈도수가 적어졌다. 아니, 나에게 전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내가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순간이 허다했다. 그랬던 엄마가 갑자기 먼저 전화가 온 것이다.           


“엄마! 무슨 일이야?”          


내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엄마는 말을 했다.          


“민아야, 주민번호 좀 알려줘”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전화해놓고선 뜬금없이 나의 주민등록번호를 묻다니.          


“갑자기 주민등록번호는 왜?”     

“그냥 서류 처리할 게 있으니까 빨리 불러봐 봐”     


조급하고, 냉소적인 그녀의 목소리,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전화할 때는 받지도 않더니 용건 있으니 갑자기 전화해서 주민등록번호나 알려달라고 하다니, 나는 왠지 알려주기 싫어서 그녀에게 왜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하냐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보험 처리하려고 해!”     

“그러니까 보험처리 어떤 것 때문에 그러는데!”          

“아으 정말! 혹시 엄마가 잘못되면 보험 상속 너에게 넘겨주려고 그러는 거야! 그러니까 빨리 알려줘”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갑자기 전화해서 상속을 넘겨준다니.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몰려왔다. 나는 나지막하게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그녀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아무 일 없어”          


나는 불길한 기분을 떨쳐내지 못한 채 그녀에게 주민등록번호를 알려주었고 그녀는 도망치듯 전화를 끊었다. 한참 뒤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녀에게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언니 괜찮아?”          


걱정하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녀, 나는 수현이를 보며 말했다.          


“수현아 혹시 물 얼마나 남았니?”          


그녀가 가지고 있던 물은 500L 그녀는 200L를 나와 오빠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는 그 물을 받아 들고 생명수를 마신 것처럼 미친 듯이 물을 들이켰다. 우리는 한 시간 반을 더 버티고 난 뒤에야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을 소방서에서 나오는 물을 허겁지겁 들이켰다.


 엄마와 나 사이는 오늘 내가 필사적으로 수현이를 쫓았던 것처럼 닿을 듯 닿지 못하던 사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부정하고 싶었지만 나는 엄마를 사랑했다. 보란 듯이 잘 살아 낼 것이라며 씩씩한 척했지만 언제나 미워하는 마음 안에는 항상 엄마를 갈망했다. 만약 엄마에게 솔직하게 왜 나를 놓았느냐고, 나 사실 엄마가 그리웠다고, 하나도 씩씩하지 않았다고, 매일 알 수 없는 공허함에 울부짖었다고 말했으면 엄마가 내 곁에 있어 주었을까?       


어느덧 황량한 사막은 끝을 향해가고 있었다. 늘 나를 아프게 했던 물집들도 나의 마음처럼 단단한 굳은살로 변해갔고 체력도 최고치로 올라왔다. 저 멀리 산장 하나가 보인다. 저곳이 바로 사막의 끝을 알리는 케네디 매도 우즈이다. 산장에 먼저 도착해있던 하이커들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마치 전쟁터에서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병사들에게 보내는 환호성처럼 힘찼다. 나는 그들을 향해 승리의 표시로 두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기쁨과 미소를 머금고 잔잔한 감동을 안으며 나의 뜨거웠던 사막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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