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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Mar 03. 2024

나는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니까

한국어를 정말 잘하는 자랑스럽고 고마운 대건이에게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어머니의 날을 맞이해서 수업시간에 색칠한 꽃을 내게 건네주었다. 그런데, 꽃다발 그림에는 ‘Omma'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는데, 글씨체를 보니 담임선생님이 쓰신 것 같았다. “이거 선생님이 써 주신거야?” 내가 물으니 “응. 다른 애들은 다 ’Mom' 이나 ‘Mommy'라고 썼는데, 나는 선생님에게 ’Omma'라고 써 달라고 했어. 나는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니까.”     


결혼을 한 뒤 아이가 생기면 나는 오로지 한국어로 아이와 의사소통을 하겠다고 남편에게 선언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아이가 태어난 뒤, 남편은 실제로 내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면서 대건이의 ‘대디(daddy)’ 가 아닌 ‘아빠’로 살고 있다.      


나는 아이와 한국어로 대화를 한 것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학습지를 공수해 와서 아이가 연필을 잡을 수 있을 때부터 한글쓰기를 가르쳤다. 시간이 흘러서 대건이가 한국 만화영화와 친해지면서 한국말 듣기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또 여동생이 부지런히 보내준 한글 책들 덕분에 읽기 실력도 못지않게 향상될 수 있었다. 나는 비록 아일랜드에 살고 있었지만 한국에 사는 엄마들 못지않게 아이의 교육에 불타는 열의를 가진 한국 엄마 그 자체로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엄마, 학교에 내 친구 중에 아무도 한국어 공부하는 아이들이 없어. 그리고 이렇게 문제집을 푸는 애들도 없고. 그런데 왜 나는 이걸 해야 하는 거야?” 아이는 한글 학습지를 풀면서 뾰로통한 목소리로 꽤 설득력 있게 불만을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 시간이 넘게 다른 짓을 하면서 몇 장 안 되는 학습지를 푸는 둥 마는 둥 하는 아이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대건이는 아일랜드 사람이지만, 한국 사람이기도 하니까 한국어를 잘 해야 하지 않겠니? 이제 그만 집중해서 문제집을 빨리 풀어. 시간이 많이 지났단 말이야”     


참 이상하게도 잔소리를 한번 하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아이가 어제 했던 실수도 생각나고, 어쩌면 내일 하게 될 실수가 근거 없이 예상되기 시작하면서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사람처럼 잔소리를 멈추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가 울기 시작하고, 나도 그만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자 잔소리를 멈추기 위해 내가 선택한 방법은 어이없게도 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아이의 얼굴을 뒤로 하고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내가 아이에게 한글공부를 그렇게 시켰던 이유는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낯선 나라에서 단 한명이라도 나와 편안하게 한국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아이에게 강요 아닌 강요를 해 왔던 것은 아닌지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만약 그렇다면 대건이와 함께 놀이를 하거나 같이 앉아서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더 보냈어야 했는데, 내가 선택했던 방법은 손쉽게 아이에게 학습지를 풀게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참 게으른 엄마였다.     

그 때 아이가 방문을 두드리며 들어와서 책상에 몇 개의 작은 종이를 남겨두고 방을 나갔다. ‘엄마를 슬프게 해서 미안해.’, ‘엄마. 나는 기분이 화가 나면 참을 수가 없어.’, ‘엄마 나는 한글공부 안 싫어해.’, ‘사랑해’ 생각지도 못한 아이의 편지를 받자 미안한 마음이 들어 한참을 울었다. 그런 뒤에 나도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마음을 담아 답장을 써서 거실로 나왔다. 아이는 혼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아이의 무릎 위에 편지를 올려두고 그 옆자리에 앉았다. 아이가 편지를 펼쳐 읽은 뒤에 나를 보며 “엄마 나는 엄마를 이해해.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고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고 또 용서해 주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가 한국의 대학에서도 공부할 수 있을 정도의 한국어 실력을 갖춘다는 목표를 접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대화를 하고 또 책을 읽을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는 목표로 수정했다. 재미있게도 나는 아이를 키우며 이렇게 마음을 바꿔 먹고 아이에게 욕심을 더 이상 부리지 않는 순간에 나의 모성애가 조금 더 커지는 것을 느낀다. 지난 10년 동안 만일 내가 인격적으로 성장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많은 부분이 ‘엄마’로서의 삶을 통해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엄마인 나를 향한 아이의 인내심과 이해심이 없었다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을 나는 잘 안다.      


 ‘정말 고마워.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대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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