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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Mar 21. 2024

엄마. 언젠가 그런 내가 그리워질 거야.

아이의 9살 생일을 보낸 다음 날.

대건이는 이제 아홉 살이 되었다.

3월이면 시댁 식구들의 생일이 연일 계속되고, 특히 3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시어머니 생신에는 온 가족들이 총출동해서 평일이라도 모여 늦게까지 시간을 보낸다. 한국인 막내며느리의 정체성을 아직까지 가지고 있어서인지 가능하면 매년 시어머님의 생일 케이크를 구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3월 초에 큰 형님 파티를 하고 또  그다음 생일인 남편의 케이크를 만들고, 며칠 뒤에  또 시어머님 케이크를 만들고 파티까지 하다 보면  정말 피곤함에 몸살이 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3월 하순의 시작에 있는  대건이의 생일 준비에는  힘을 쏟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매년 대건이의 생일이 지나고 나면 아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든다.  


 

구글 포토에서 6년 전 대건이가 3살이 되었을 때 생일 아침에 찍은 동영상을 보여줬다. 아침 일찍 일어난 아이에게 마치 크리스마스 아침처럼 침실에서 거실로 데려가서 선물로 깜짝 놀라게 했던 그날이었다. 아이는 기분이 좋아서 목소리가 한껏 들떠 있었고, 스스로를 위해서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동영상을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도 보내고 또 나 역시 몇 번이고 돌려보았다.

 

반면에 올 해는 아침에 일어난 아이가 볼 수 있게, 색종이로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는 배너 아닌 배너를 만들어 둔 것 말고는 아침에 아이를 기쁘게 해 주는 일은 없었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준 뒤 집에 와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아침 겸 점심을 챙겨 먹고 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던 1시경에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이의 생일을 준비하기 위해 엄마가 해야 할 일이 생각보다 정말 많다는 사실을.

 

생일 케이크로 초콜릿 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말했던 대건이를 위해 평소에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로 레시피를 찾아서 제누아즈를 만들었다. 혹시나 새로운 케이크를 만드는데 실패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평소에 대건이가 좋아하는 브라우니도 한 개 더 만들어 두었다. 대건이가 먹고 싶어 했던, 로스트 치킨과 함께 허니베이컨 로스트 포크햄도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미역국도 오랜 시간 잘 끓여 두었다.


 

대건이가 수업을 마치고, 나를 만나기 위해 걸어오는 모습을 보는 것은 웬일인지 늘 마음이 짠해지는 순간이다. 시어머니께서 언젠가 아이들에게 ‘poor soul’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며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요즘은 그 말씀이 공감되는 순간이 많다. 오후 3시 가까운 시간까지 수업을 듣고,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함께 앉고 싶은 친구와 짝꿍이 되지 못해 서운한 마음도  가슴에 묻어두고 묵묵히 걸어서 나에게 다가오는 이제 막 9살이 된 아이의 모습이 참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하루를 잘 보냈다는 말을 했다. 사실 같은 반에 한 살 더 많지만 정확히 같은 날이 생일인 남자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는 우리 아이와 성격이 다르고 무엇보다 그의 부모는 부모로서 우리와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다. 소문에 의하면 이 가족이 재작년에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축하한다는 말을 했을 때, 그 아이의 엄마가 손사래를 치며 그런 적이 없다는 말을 해서 나는 오히려 미안하다는 말을 했어야 해서 꽤나 머쓱해졌었다. 하지만 그다음부터 이 가족이 새롭게 소유한 차가 타운에서 제일 좋은 차 중에 하나가 되더니, 학교 수업이 있는 평일에도 뉴욕으로 파리의 디즈니랜드로 가족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는 것을 본 뒤엔 미안하다고 말하지 말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대건이가 물었다. “엄마 내 선물은 없는 거야?” 이미 선물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아직 포장을 하지 않았기에 나는 이따 저녁을 먹고 케이크를 자른 뒤 주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친구가 학교 오기 전 생일 선물로 받은 것들을 자랑하며 이야기할 때 부러웠다고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케이크에 바를 크림을 준비한 뒤 선물의 포장을 했다. 대건이는 내가 선물 포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짐짓 모르는 척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시댁 어른들과 함께 생일 축하를 하고 싶어 케이크를 가지고 갔더니 아이의 큰 아버지와 사촌이 와 있었다. 평소에 시간관념이 약한 고모는 댄스 클래스를 마치고 급하게 선물을 준비해서 파티에 오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는데, 9시가 가까워서야 도착을 했다. 그렇게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는 케이크에 촛불을 끄고, 밤 10시가 다 되어서야 겨우 두 손에 선물을 받아 든 아이는 그럼에도 두 눈을 반짝이며 기분 좋게 선물 포장을 풀었다.


아이는 평소보다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이불을 덮어주고 방에서 나와서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아이 방으로 다시 갔더니 아이가 쪼로륵 눈물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가 생일 파티나 선물에 감동을 했다거나 그래서 행복한 하루였다는 말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환하게 웃으며 아이의 침대에 걸 터 앉았다.  


  

그런데 아이는 기대했던 것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 “엄마 만일 내가 아침에 선물을 받았다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자랑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아. 친구가 자기의 선물을 자랑하고, 생일입니다 헤어밴드를 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내가 아니라 그 친구에게만 생일 축하한다고 말했거든. 내 생각엔 그 친구의 생일이 더 좋았을 것 같아. 나 보다. “ 

 

그 순간 아이에게 네가 받은 선물과 사랑과 축하의 메시지를 생각해 보라고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아이에게 즉각적인 위로를 줄 수 없다는 것을 나 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아이에게 말했다. “내년에는 엄마가 아침에 선물을 준비해 줄게. 그리고 어떻게 생일을 보낼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엄마 아빠가 준비해 줄게. 올 해는 미안하다.”


 

아이가 잠든 뒤에 남편과 함께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대건이의 마음을 이야기해 준 뒤에 만약 내가 기대하던 생일에 생일 선물을 밤 10시가 되어서야 받았다면 나도 서운한 마음이 들었을 거라고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 조금 더 이성적인 편이 되면서 “그래도 좋은 날이었잖아.”라고 말하곤 하는데, 아이의 마음에 측은함을 느꼈던지 내년에는 미리 준비하고 아침에 선물을 전해주자는 말해 동의를 했다.


 

어린 시절 누군가가 내가 원하는 선물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누군가 정말 내 마음을 이해하고 내 마음을 받아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조금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서 가족들의 성격과 내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뒤, 나의 사춘기가 감정적으로 힘들었던 이유를 깨달은 적이 있다.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느는 비록 어른이 되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누군가 정말 내 마음을 이해해 주고, 심지어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기만을 여전히 바라고 있을 때가 많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는 내가 바라는 모습 그대로 내 아이의 마음을 잘 읽고,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유아기를 지나 아동기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독립적인 인격체로 자라고 있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또한 8년 간의 경험이 만들어 낸 아이의 자아를 발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 또한 조금씩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 역시 고백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 어려움의 과정 속에서도 부모로서 그 곁을 지키며 아이의 성장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큰 기쁨을 준다. 아이가 좋아하는 축구 선수의 주특기 기술을 기억하는 것.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아이에게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지 않고) 내가 잘 모르는 영어 단어를 뜻이 무엇인지 아이에게 진지하게 물어보고, 또 새로운 영어 표현을 알게 되었을 때 아이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언젠가 설거지를 하며 흥얼거렸던 한국 노래를 아이도 기억해서 드라이브를 하며 함께 흥얼거릴 수 있는 것 그리고 오늘처럼 아이의 생일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기 위해 작은 것 하나라도 아이의 입장에서 고려하는 것. 이렇게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내게 주는 기쁨들이 구멍이 많은 내 삶을 채워주고, 또 고독한 내 삶에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끔 혹은 자주 어른으로서, 내 속으로 낳았으니 아이가 하는 행동과 의도를 먼저 미리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아이를 다그칠 때가 있다. 최근 들어 아이가 음식을 손으로 먹는 모습을 보고 자주 혼을 내곤 했었다. 잔소리가 쏟아지면 대건이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해질 때면 도리어 미안한 마음이 들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한참 잔소리를 하고 있는 나를 잠시 바라보던 대건이는 화를 내고 있는 내 얼굴을  멈추어 쳐다본 뒤 엷은 미소를 띠며 이렇게 말을 했다.


“엄마. 언젠가 음식을 흘리면서 손으로 먹는 대건이가 그리워질 거야.”


먹는 것보다 흘리는 음식이 더 많았던 손가락으로 이유식을 먹던 대건이는 이제 기억 저편에만 남아있다. 비록 여전히 음식을 흘리고 수저보다 손가락이 편한 대건이지만, 이제는 식탁 밑을 쓸고 닦아야 할 만큼 흘리며 먹지 않는다. 대건이 말처럼 그런 아기 대건이, 어린 대건이가 언젠가 그리워지는 훗날 지금을 돌아보면 그냥 재미있고, 그리운 날 중에 하나가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엄마로서 나는 대건이를 다그치기보다 그저 친절하게 다시 한번 수저를 사용하는 법을 설명하고, 아이가 흘린 음식을 허리 숙여 닦으면 그만인 것이다.   


 

"오늘도 대건이에게 배웠구나. 고맙다. 그리고 진심으로 9번째 생일을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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