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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꾸 Jun 20. 2022

모래주머니

불행은, 내 인생의 곳곳에 숨었다가, 불현듯 나타나 나를 괴롭게 하는 어떤 카르마의 일종이다. 분명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지만, 나로부터 만들어지는 인생의 불길한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행복이란 것을 평소에 바라지도 않았고, 다만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도록 평범히 살아가게 하소서라며 기도를 외쳤으나, 신이란 것은 무색하게도 나의 작은 소망조차 들어주지 않는다. 하긴, 나는 불경한 세상 속에서 신이란 건 믿지도 않았으면서, 평탄한 삶만을 살아가게 해달라고 떼쓰는 하나의 억지를 부리는 꼬마 아이일 뿐이다.


 행복이 뭔지는 잘 안다. 평범한 이 순간이 가장 큰 행복이라는 것을. 팔다리 중 하나가 잘려나가 봐야, 있던 것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일 테니까. 에고, 잠시 극단적인 예를 들었다. 내가 불행이 크게 느껴지는 세상에 살고 있는 탓이다. 뭐든지 빨리빨리 지나가는 세상에서도, 찐득하게 잠식하는 썩은 늪은 나를 천천히 깊은 불행의 골로 끌어내린다. 차라리 나날이 발전하는 인터넷 속도처럼 순식간에 나를 끝장내 버리면 좋으련만.


 지나가버린 평범한 순간은 곧 행복이 된다. 7살 때 엄마랑 어린이 대공원을 산책하던 날,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 피시방에 처음 갔었던 날, 휴대폰을 처음 샀던 날, 여자 친구와 여행을 떠났던 날, 취업했던 날 등 등.. 이미 나에게 평생을 곱씹을 행복이 있다는 것은 나도 안다.


 지금 손가락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생각하는 이 순간을 포함하겠다. 단, 이 순간을 평탄히 보내고 어느 날 갑작스레 오늘 이 순간이 생각난다는 가정하에.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생각 없이 행복한 것 같다고 말하거나, 솔직하게 아무 생각도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현재라는 순간에서는 행복을 자각하기 어렵다. 아마 복권에 당첨되는 순간이라면 모를라나.


 그에 반해, 불행을 자각하기란 얼마나 쉬운지. 팔다리에 모래주머니를 하나씩 얹는 느낌이다.


 발목에 한 움큼, 팔목에 한 움큼, 어깨에도 한 움큼.


 그걸 그렇게 잔뜩 짊어지고 걷다 보면, 허리가 굽고, 목이 굽어 나는 서서히 작아진다. 너무 무거워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나는 과연 그 모래주머니들을 내게서 떼어낼 수 있을까. 잔뜩 지쳐버린 이 몸으로, 팔을 들어 올려 거머리처럼 들러붙은 이 모래주머니를 벗어낼 수 있을까. 내 아픔을 무시하고, 회피하고, 도피하다, 쌓이고 쌓인 무거운 짐들을 나는 결코 떼지 못한다. 떼려야 뗄 수 없이 쌓이기만 하는 그 감정에 결국 팔 하나 움직일 힘도 없으니, 그냥 나는 짓눌리고, 작아지고, 무너지고, 쓰러져버리련다.


 그러니까 누군가 내게 와 이 모래주머니를 풀어줬으면, 단 하나만이라도 풀어줬으면.


 많이 힘들면, 기대도 돼. 기댄다고 해서 남이 대신 네 모래주머니를 들어주는 게 아니야. 모래주머니는 풀면, 그냥 바닥에 떨어지는 거야. 그리고 그냥 같이 그 위를 지나쳐가자. 불행은 멀어지게 지나갈 자리에 두고, 행복하지만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걸음으로 같이 걷자. 모래주머니는 같이 걸어간 자리에 흔적들로 남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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