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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흐름 Mar 08. 2021

사람의 관점은 변할 수 있다.

바뀌지 않은 사람은 아직 "바뀌지 않음"을 선택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지속적인 시도와 노력을 통해 개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생활패턴은 물론이고 성격 또한 바꿀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아.",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랬어."라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사람이다. 바뀌는 사람과 바뀌지 않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그 사람의 노력이 스스로를 변화시킬 만큼 충분했느냐, 불충분했느냐가 다를 뿐이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랬어."

 

 사람은 두 갈래로 나뉜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사람은 죽어도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 


<사람은 죽어도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은 곁의 누군가가 긍정적인 쪽으로 바뀌기를 기대했으나, 끝내 그러지 못한 상대방에게 실망감과 느껴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의 삶에서도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 사람들이다. 만일 본인만의 확실한 터닝포인트가 있었다면 사람은 바뀔 수 있다는 쪽에 표를 던졌을 것이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앞의 사람들과는 반대이다. 이들은 자신이 변화를 이끌어내었거나, 다른 사람의 변화를 줄곧 지켜본 사람이다. 이들은 변화의 가능성을 시인하며 다른 사람들 또한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지지한다.


이 글에서 다룰 "변화"는 기본적으로 관점의 변화이다. 그리고 이 관점의 변화는 성장에 초점을 두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부정적인 부분을 긍정적인 부분으로 바꾸어가는 과정, 개선과 교화의 성격을 지니는 변화가 이 글의 소재이다. 이 점을 기억하고 글을 읽어주길 바란다. ("너는 원래 나한테 잘해줬는데, 이젠 변했어."에서의 "변화"는 잠시 넣어두었으면 한다.)




성격과 관점


이 글을 제대로 열어보기 위해서는 "성격"과 "관점"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 행동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의 정의를 참조하면, 성격은 "개인이 환경에 독특하게 적응하도록 결정지어주는 심리 물리적 체계의 역동적 조직"이다. 즉, 한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그 사람의 자아를 주변과 구별되도록 "독특"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성격(personality)이다. 


관점(viewpoint)은 무엇인가?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로 관점이다. 관점은 "독특성"과 연관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태도"와 연관된다. 


성격과 관점의 미묘한 차이를 알아보자, 다음 두 문장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A : "물이 반밖에 안 남았네?"
B : "물이 반이나 남았어!"


"관점의 차이"다. 이 두 문장만을 두고 성격 차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대신 한 사람이 매사에 부정적인 태도만을 보여준다면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를 두고 "부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칭할 것이다.






성격을 직접적으로 바꾸는 것은 굉장히 어렵다. 이미 오랜 연구를 통해 성격의 변화는 이루기 어렵다는 것이 귀납적으로 증명되었다. 하지만 관점(태도)의 변화는 성격에 비해 비교적 쉽게 이뤄낼 수 있다. 


"성격 자체는 바꾸기 어려우나,
관점의 전환을 통해
성격의 변화를 간접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지속적인 시도와 노력을 통해 개인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생활패턴은 물론이고 성격 또한 바꿀 수 있다. 그러므로 필자는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아.",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랬어."라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는 사람이다. 바뀌는 사람과 바뀌지 않는 사람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그 사람의 노력이 스스로를 변화시킬 만큼 충분했느냐, 불충분했느냐가 다를 뿐이다.


이때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할 노력은 "목적의 수정"이다.




목적의 수정이 관점의 변화를 이끈다.


어두운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가 오래도록 나오지 않는 아이를 상상해보자. 아이가 동굴에 숨어있는 정확한 이유는 정확히 판가름하기 어렵다. 자신의 연약한 모습에 싫증이 났을 수도 있고, 부모의 괴롭힘과 또래 사이에서의 따돌림이 그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보다 복합적인 원인이 얽히고설켜 있을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원인이야 어쨌든, 아이는 계속 컴컴한 동굴 속에 앉아있다. 동굴 밖에 있는 사람들은 그런 아이를 보며 '너, 얼른 밖으로 나와!', '음침한 동굴은 네게 좋지 않아!'라고 외친다. 하지만 아이는 계속해서 동굴 안에 맴돌고 있다. 그는 무엇을 기대하고 있기에 동굴 속에서 나오지 않는 것일까?


동굴 속에 머물고 있는 아이의 목적은 "타인으로부터 상처 받지 않는 것"이다. 동굴은 그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이다. 아이는 동굴 안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줄 것임을 안다. 즉, 아이에게 있어 동굴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합리적인 장소가 된다.


아이는 다른 사람의 진심 어린 조언(동굴 밖에서의 목소리)도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으로 돌려서 생각할 것이다. 왜냐면 아이의 목적은 여전히 "다른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동굴 안에서 벗어던지기 위해서는 아이 스스로가 목적을 수정해야 한다. 목표를 수정하는 그 첫 시도가 가장 어렵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타인을 경계하지 않고 사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이제 아이는 동굴을 다른 시각(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그에게 있어 동굴은 타인으로부터 보호받는 위장처가 아니라,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도록 가둬놓는 걸림돌이다. (위에서 언급한 "물이 반밖에 / 물이 반이나"처럼 대상을 인식하는 관점이 바뀐 셈이다.)




관점의 변화는 성격의 변화를 유도한다.


그는 걸림돌이 된 동굴에서 벗어나기로 마음을 먹었고, 동굴 밖으로 걸어 나옴으로써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는 동굴 밖으로 걸어 나온 자신의 이야기를 교훈 삼아 다시는 동굴 속으로 걸어가지 않겠노라고 다짐하였고, 용기를 발휘하며 사람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내향적인 과거의 모습을 조금씩 탈피하며 자신감을 쌓아간다. 곁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상처 주는 존재에서 믿음을 주는 존재로 바뀌었다. 아이의 목표가 다시 뒤집히지 않는 한, 아이는 계속해서 외향적인 쪽으로 바뀔 것이다. 이 과정이 바로 관점의 변화를 통해 성격의 변화를 유도하는 장면이다.




이것저것 생각 나눔


이 글을 준비하는 동안 심리학자 아들러의 사상을 여러번 참고했습니다. 아들러는 우리가 바뀌지 않는 것은 스스로가 변화하지 않기 위한 어떠한 목적을 갖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변화를 위해서는 자신이 겪은 과거나 자신이 속한 환경 탓을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바꾸어야 합니다.


본문에 등장한 동굴 속 아이의 변화는 관점의 변화를 서술하기 위한 하나의 스토리입니다. 여러분들은 스스로 동굴 속에 갇혔던 적이 있으신가요? 혹은 주변을 돌아보았을 때, 과거에 사로잡혀 동굴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곁에 있나요?


트라우마, 우울증이라는 이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목적을 바꾸어라."라는 이야기는 들리지도 않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의 인간기저론은 그들에게 치료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목적을 수정해야함은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굳이 트라우마를 소재로 들지 않아도 다양한 예시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이어트와 시험 공부가 될 수 있겠지요.)



* 성격을 뜻하는 영단어" personality"는 페르소나 (persona)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페르소나는 3편 가면 벗기에서 자세히 다뤘으므로 이 글에서는 설명을 생략합니다.)


* 관점은 누군가의 추천이나 도움으로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본문에서도 나타내었듯이, 변화를 이룩하고 싶다면 그 첫발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인간기저론 시리즈에서는 그 부분까지 서술하지 않습니다. 실천법과 어울리는 글들을 연결하오니, 변화를 원하는 분들께 조금의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변화를 이끄는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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