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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장흐름 Jul 01. 2021

감정을 처리하기 위한 첫 과제 : 허락하기

검은색 길고양이를 잊어버리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모두 우울하다.


'약속 하나 없이 조용히 지나간 날, SNS를 보니 즐겁게 떠들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이 대부분이다. 나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는 게 전부인데, 나 혼자만 즐기지 못하는 것 같아 우울하다. 생각해보니 이번 한 달 동안 이뤄낸 것이 없는 것 같다. 친구들은 왜 나에게 연락을 해주지 않는 걸까? 섭섭하고 우울하다.'


대부분에게 평균적일 이야기. 단 한 번도 우울하지 않았던 사람은 없다. 우울은 도처에서 사람들을 건드리는 녀석이다. 그냥 우울한 것에서 멈추면 괜찮다. 우리는 종종 슬픈 노래나 영화를 보면서 위로를 받곤 하니까. 하지만 우울함이 괴로움을 안겨다 주는 것은 괜찮지가 않다. 아픈 것은 싫고, 싫은 게 많아지면 삶의 의미를 잃기 때문이다.


우울감으로 인해 고통을 느끼는 사람이 원하는 것은 "고통으로부터의 벗어남"이다. 하지만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곧바로 감정을 바꿔버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물론 스위치를 on / off 하듯 감정도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극히 일부의 사람도 있지만,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어렵다.


올바른 해소를 위해서는 감정이 어떤 작용으로 우리를 피곤하게 하는지, 우리가 처리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구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전문적일 필요는 없다. 목적은 박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나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한 걸음씩, 천천히. 감정을 마주하는 연습을 해보자.






검은색 길고양이를 잊어버리기는 쉽지 않다.


집 안에 머무는 것이 괴로운 당신은 옷을 적당히 갈아입고 산책에 나섰다. 방안에만 있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네 주변을 걷던 당신은 고양이 한 마리를 만났다.



고양이는 귀여운 동물이다.


어슴푸레 눈을 뜨고 있는 검은 고양이. 요 녀석은 사람을 마주쳤는데도 미동 하나 없다. 쳐다보는 둥 마는 둥 여러 사람들을 이미 지나쳐 보낸 듯하다. 앞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옆을 지나가다 보니 배가 불룩하다. 조용한 눈빛으로 참치캔을 몇 번이나 얻어먹은 게 분명하다. 아무튼 귀여운 고양이다.


자, 지금부터 재밌는 일을 한 번 해보자. 지금부터 절대 고양이를 떠올려서는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검은색 고양이를 떠올리는 것은 금물이다.




머릿속에서 고양이를 완벽히 지워냈는가? 아니, 오히려 당신의 생각 속에서는 고양이의 검은색만 더 짙어졌을 것이다. 보다 명확히 말하면, 인식한 존재를 지워내려는 노력은 그 존재를 강화하는 꼴이 된다. 고양이를 잊으려 하면 검은색 털, 입가의 수염, 더 나아가 어릴 때 봤던 톰과 제리까지 떠오른다. 자잘한 것들이 모여 고양이를 키워버린다.


감정도 마찬가지이다. 죄책감을 좀 덜고 싶은데, 아침에 그 사람에게 말실수한 것이 자꾸만 떠오른다. '아, 이렇게 말하면 안 되었는데..', '하여간 내 입이 방정이지.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 결국에는 이 모든 생각들이 핵심 감정인 죄책감을 증폭시킨다.



감정을 느껴도 된다고 허락하라.


이쯤에서 우리의 목적, "조금 더 나은 기분 누리기"를 기억하자. 주인이 사랑스러운 강아지에게 '먹어'라고 허락하는 것처럼, 우리가 감정을 느끼는 것을 허락할 차례이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라는 말처럼, 자신의 감정도 똑같이 존중해주어야 한다.


"지금의 나는 평상시랑 다른 것 같아.
우울한 기분 때문에 몸도 좀 처지는 것 같네.
이것만큼은 병원에 가지 않아도 알 수 있지.

그렇지만 괜찮아.
우울함이 나쁜 감정은 아니니까.
내 몸이 제대로 일하고 있다는 증거야.
그러니 우울해도 된다고 나를 허락하자.


우울한 내가 기쁜 나보다 열등한 존재는 아니다. 화가 잔뜩 나있는 내가 책을 읽고 있는 나보다 열등한 사람이 아니다. "우울감" 역시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나 어감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이는 것이지, 그 자체로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편견을 지우고 감정을 인식한 후, 그 감정을 느껴도 된다고 허락하자. 


"허락하기"는 의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챙기는 진단법이다. '내 몸을 누가 챙기겠어. 나밖에 챙기지 못하잖아.'라는 마인드로 자신을 진단해보자. 너그러운 태도로 허락할수록 상황이 더 객관적으로 보이고 맑아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한 가지, 감정을 허락하는 주체가 중요하다. 우울감에 자신을 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울감을 허락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자칫 잘못해서 감정에 몸과 마음을 내주면 회복은 더 어려워진다.


감정 허락은 처방전을 뽑는 과정이다. 아직 감정을 처리하는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이제 치료약을 받을 준비는 되었다. 이제 우리는 처방전을 구기지 않고 보관하고 있으면 된다. 약국이 문을 열 때까지 잠시 기다리자.



* 본문에 등장한 고양이 사진은 친구가 보내주었다. 검은색 길고양이 사진이 필요하다는 요청에 곧바로 사진을 보내준 친구에게 감사하다. (문자를 보낸 지 5분도 안 되어서 3장의 사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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