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하는 것은 "더 나은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장에서 우리는 감정을 느끼도록 허락해주었다. 이제 해야 할 것은 사실과 판단을 구분하는 것이다. 사실은 고정불변의 것으로, 누구에게 물어보든 동일한 대답이 나오는 것이 사실이다. 판단은 사실이 아닌 것에 붙인 나의 주관적 감상이다.
상황과 일은 우리의 감정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감정을 결정하는 것은 생각과 의식이다. 만일 상황이 감정을 결정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같은 사건에 대해 동일한 감정을 느껴야만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비가 내리면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고 짜증을 내는 사람이 있으면, 비가 내리는 특유의 분위기를 즐기는 사람도 있다. 각 사람이 비에 대해 내리는 가치 판단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감정을 유도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의식이지, 바깥의 사건이 아니다.
자, 이제 우리는 감정을 느끼도록 허락을 내려주면서 처방전 한 장을 받았다. 약국에 들어와 처방전을 제출하니 약사가 말을 건넨다. "약을 드시기 전에는 사실과 판단을 구분할 줄 아셔야 합니다." 약만 지어서 먹으면 될 줄 알았는데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약사는 궁금증에 빠져있는 우리에게 설명을 시작해주었다.
다정이 이야기
사람들은 때로 사실과는 무관한 판단만으로 자신의 감정에 영향을 준다. 다정이는 "속상함"이라는 감정을 처방받았다. 처방받았다는 것은 어쨌거나 그 감정을 느끼도록 허락하였다는 것이다. 다정이의 처방전에 적힌 문구를 읽어보자.
"친구들은 나를 두고 맛있는 걸 먹으러 갔어. 내가 싫어진 건가 봐."
다정이는 속상함의 이유로 친구들이 본인을 두고 갔다는 걸 골랐다. 그리고 친구들의 행동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자신을 싫어한다고 판단했고, 결론적으로는 속상함이라는 감정을 얻었다.
여기서 사실과 판단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즉, 속상함이라는 감정 아래에서 무엇이 사실이었고, 어떤 부분이 사실이 아니었는지 분리해야 한다.
"친구들이 나를 두고 갔다."는 사실에 해당한다. 식당에 걸어서 갔는지 지하철을 타고 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점은 다정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도 변함없을 사실이다. 이쪽은 괜찮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내가 싫어진 건가 봐.", 이쪽이다. 다정이는 친구들의 동기를 멋대로 해석했다. 이것이 바로 주관적 감상에 해당한다. 친구들은 바빠 보이는 다정이를 배려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다정이의 판단은 포도나무에 올라가지 못하는 여우가 "저 포도는 틀림없이 신 맛이 날 거야."라고 결론지은 것과 다름없다.
다정이는 친구와의 일로 인해 속상함을 느꼈다고 처방전을 지어왔다. 하지만 약사의 설명을 들어보니 "속상함"은 애초에 가져오지 않아도 되는 감정이었다.
진서 이야기
진서는 "우울함"이라는 감정을 들고 왔던 사람이다. 그의 사례를 살펴보자.
"나는 볼품없는 사람이야. 누가 나처럼 살찐 사람을 좋아하겠어."
진서의 말에서 우리는 두 개의 가치 판단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모두가 살찐 사람을 싫어할 거라는 진서의 예상은 섣부른 판단이다. 확정할 수 없는 사실을 두고 예단한 것이 첫 번째 오류이다.
두 번째는 진서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자신의 가치와 연결 지었다는 점이다. 타인의 생각은 나의 현실과는 무관하다. 어떤 인물이 진서를 좋게 보고 나쁘게 보는 것은 진서의 가치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하지만 진서는 자신을 무가치한 사람으로 정의 내렸고, 이로 인해서 우울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다정이의 속상함과 진서의 우울함은 사실이 아닌 그들의 판단에 의해 생겨난 감정이었다. 다정이는 친구가 자기를 두고 간 사실을 놓고 확장 해석하여 속상함을 느낀 경우였다. 진서는 자신을 불우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그 근거는 명백한 사실이 아닌 자의적 판단에 기초한 것이었다.
약사는 우리에게 다정이와 진서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려주었다. 약사의 말에 따르면, 그 둘은 상담 후에 자신이 느낀 감정이 헛된 판단에 의한 것이었음을 이해했다고 한다.
감정을 이끈 자동적 생각 가운데 사실과 판단을 구분하는 과정은 감정 처리의 필수 과제이다. 요약하자면, 생각을 바로잡는 것이 이 장의 핵심 목표라 할 수 있다. 나도 모르게 판단을 사실로 옮겨가지는 않았는지, 사실에 과잉 해석을 덧붙이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자.
우리는 약사에게 처방전을 보여주었고, 사실과 판단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복약 지도를 받았다. 잠깐, 아직 약국 문을 나설 때가 아니다. 약사에게 친절한 설명을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 한 번은 어떨까?
감정 처리의 과정
1. 감정을 느끼도록 허락하기
- 마음속에 있는 불편한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해보자. -속상함, 우울함, 무미건조함, 적개심, 슬픔- 나를 건드리고 있는 것은 하나의 감정일 수도 있고 복합적인 감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느끼고 있다는 것은 처리가 가능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 사실과 판단 구분하기
- 감정을 허락했다면, 사실과 판단을 구분해보자. 나도 모르게 "판단"을 사실로 간주하지는 않았는지, "사실"에 부정적인 의미 부여를 하지는 않았는지 떠올려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본문에 인용한 다정이와 진서의 이야기를 참고하면서,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지나쳤던 이 과정을 "의식적"으로 해보자.
* 세세한 과정을 건너뛰어도 기분을 더 낫게 할 수는 있다. 문제를 무시하고 잠을 자거나, 맛있는 음식으로 덮어버리면 해소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해법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사가 자신을 혼낼 때마다 절친과의 소고기에 의존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단기적으로는 기분이 좋아질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지갑을 쳐다보면 또 우울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