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장흐름 Aug 07. 2021

세 번째 과제: 통제 가능한지

사실과 판단을 구분함으로써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면 내가 조절할 수 있는 영역과 나의 힘으로는 변하지 않는 영역을 구획해야 한다.


1.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


2.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


이 두 가지를 명쾌하게 분리할 수 있다면 쓸데없는 곳에 감정을 낭비하는 시간은 덜어지며, 인간관계에서 피로감이 오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다.


1번과 2번을 구분 짓기 위해서는 어떠한 일이 나의 의식과 능력 안에서 조절 가능한 종류의 것인지 알아보아야 한다. 통제권 안에 있다면 능력껏 해결하도록 노력하면 될 일이고, 통제권 밖에 있으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어느 쪽이든 더 나아질 방도는 있다. 다음의 예시 상황을 빌려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약속 직전, 갑자기 폭우가 내린다면?


아침 8시,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내린다. 오래간만에 친구와 신나게 놀 작정으로 약속을 잡아놓았는데 하늘이 펑펑 울기 시작했다. 분명 어제 일기예보를 확인했을 때는 맑을 거라 했는데 실제 날씨는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예정된 모임 시간은 11시, 연락을 해보니 친구도 아직은 집을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이때 나는 어떤 모션을 취할 수 있을까?


친구를 만나고 싶다면 우산을 챙겨 나가면 될 일이고, "비가 안 그칠 것 같은데 그냥 다음에 볼까?"라는 말로 약속을 취소할 수도 있다. 어쩌면 친구도 내심 꺼내고 싶었을 말일지도 모른다.


친구를 만나거나, 만나지 않거나. 어느 쪽이든 나의 주동적인 선택으로 해낸 것이다. 선택지를 만들었다는 건 통제할 수 있다는 것과 같다. 반대로, 세차게 내리는 비를 멈추려는 시도는 통제권 밖의 행위이다.




비행기의 진동에 반응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비행기 안에서 잡지를 펼쳐 읽고 있는 나는 나머지 승객의 기분에 관여할 수 없다.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시간을 단축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이것은 나의 통제권 밖이다. 기껏해야 우리가 조정 가능한 영역은 잡지를 넘기다 근사한 시계를 광고하는 페이지가 나왔을 때, 여기에 시선을 고정할지 여부를 선택하는 것이다. 또는 "콜라를 드릴까요, 사이다를 드릴까요?"라 묻는 스튜어디스의 질문에 "사이다 주시겠어요?"라 대답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통제가 불가능한 영역에는 신경을 꺼두자. 이미 좌석에 앉은 이상, 비행기의 미묘한 진동에 불안감을 느껴서 좋을 것이 뭐가 있겠는가? 한 명의 승객에 불과한 채로 비행기 안에 존재하는 물리학적 불안요소를 제거하려는 건 월권행위나 다름없다.


대신, 통제권 안에 있는 경계 안에서는 무한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기억하라.




심리치료 전문가인 크리스 코트먼은 그의 저서 「감정을 선택하라 」에서 좋은 태도를 소개한다.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야. 다들 그러하듯이 나도 여기(이 집단, 가족, 팀 등)에 속한 사람이야. 나는 내가 대우받고 싶은 대로 사람들을 대우할 테지만, 그들의 반응을 통제할 수는 없어. 나는 마음을 열고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배울 거고, 필요할 때는 긍정적으로 변하려고 용감하게 시도할 거야.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건 내가 그 말에 찬성하지 않는 한 나는 상처 입지 않아.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두려워하면서 살지 않을 테지만, 그들의 반응을 신중하고 적절하게 평가할 거야. 나는 그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투영하는 하나의 자극일 뿐이니까." - 「감정을 선택하라 」/ 크리스 코트먼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각"

"날아오는 비판과 날선 말투"


사람들이 이러한 것들에 신경 끄기 어려워하는 진짜 이유는 스스로가 얽매여 있도록 매우 강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태껏 우리가 느꼈던 모든 감정은 사실은 붙잡고 있도록 통제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거꾸로 놓아주는 것 역시 통제할 수 있다.


주체가 "나 자신"인 것들을 바꾸어야 한다.


타인의 비판을 수도꼭지 잠그듯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비판을 수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도를 넘는 발언을 들었을 때, 우리에게는 그 말을 인정하지 않을 권리를 갖추고 있다. 내게 잘못한 상대를 용서하는 것도 가능하다. 수용과 인정, 용서의 주체는 나이기 때문이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녔을 무렵에는 학생들의 안전한 통학을 돕는 "녹색어머니"들이 계셨다. 빨간 불일 때는 도로를 건너지 말라고 수기로 길을 막아주시고 초록 불일 때는 길을 열어주셨다. 신호에 맞추어 알맞게 교통 지도를 해주시고 가끔은 반갑게 웃어주셨던 분들이다.


지금은 누가 옆에서 "이건 해도 괜찮아.", "이건 안 돼!" 말해주지 않는다. 모든 걸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불안에 사로잡히면 내가 어떤 인물인가 헷갈리게 마련이다.


잠깐, 스톱!


왜 불안이라는 부정적인 신호에 갇혀 있는 걸까?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 말이다.


아, 어찌보면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가두는 이유 말이다. 변화에 드는 노력이 불안함을 핑계로 쉬고 있는 것보다 힘이 들기 때문이다. 눈에 띌 정도의 변화라면 더더욱 어렵다.


작은 순간만 본다면 정체되어 있는 것이 편할 것이다. 하지만 인생은 롱런이다. 장애물이 나올 때마다 주저 앉는다면 허비한 시간이 더 아까울 것이다.


이제는 깃발이 어머니들이 아닌 우리 손에 들려있을 뿐이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다. 깃발을 직접 흔들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다.  마음속 감정 체계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 아닐까. 그동안 두려움, 불편함으로 피했던 일들에 시원하게 부딪혀보자.






같이 읽으면 좋은 글


과제의 분리



감정 처리의 과정


1. 감정을 느끼도록 허락하기


- 마음속에 있는 불편한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해보자. -속상함, 우울함, 무미건조함, 적개심, 슬픔- 나를 건드리고 있는 것은 하나의 감정일 수도 있고 복합적인 감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느끼고 있다는 것은 처리가 가능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 사실과 판단 구분하기


- 감정을 허락했다면, 사실과 판단을 구분해보자. 나도 모르게 "판단"을 사실로 간주하지는 않았는지, "사실"에 부정적인 의미 부여를 하지는 않았는지 떠올려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본문에 인용한 다정이와 진서의 이야기를 참고하면서,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지나쳤던 이 과정을 "의식적"으로 해보자.


3. 통제 가능한 일이 있는지 확인하기


- "더 나은 기분 갖기"라는 처음의 목적을 기억하자. 손을 꽉 쥐고 있었다면 거꾸로 놓아주는 것 역시 가능하다. 바꿀 수 없는 타인의 시선과 말투에는 신경을 꺼두어라. 사고방식, 해석 방법, 행동 양식 등 스스로 컨트롤이 가능한 부분에 집중하자.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째 과제 : 사실과 판단 구분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