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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Dec 16. 2022

집사의서평 #71 그분이 오신다

괴물은 그저 괴물


들어가는 말


 작가 소개란에 '괴물을 사랑한다.'라고 쓰여있다. '푸르게 빛나는'을 읽을 때만 해도 그렇게 주의 깊게 새겨 보진 않은 문구다. 작가 소개라는 것이, 나도 써봤지만 참 애매하다. 이 책 한 권보다 훨씬 더 복잡 미묘하고 긴 서사를 가진 나 자신을 어떻게 하면 한 지면도 안 되는, 심지어 반도 안 되는 살짝 접힌 면에 표현해낼까.

 하지만 김혜영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을 접하고는 그 '괴물을 사랑한다.'던 작가의 소개가 참, 진실된 표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작가는 본인이 사랑한 그 '괴물'을 독자도 사랑할 수 있도록 표현해냈을까.

 괴물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그저, '괴상하게 생긴 물체'다. 엄밀히 따지면 굳이 살아있는 것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작가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것은 필히 살아있어야만 한다. 생경하고 역동적인 것만이 지루하고 상투적인 우리의 삶 한 부분을 두근대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분명 작가는 독자마저도 괴물을 사랑하게 만들었다고 본다.



그분이 오신다, 달려!(런)


 - 런, 달려! : 어릴 적 친구인 민아와 주기적으로 편의점 맥주를 즐기는 지우. 재개발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떨어지게 되고, 그만큼 자신과 친구사이에 알 수 없는 괴리를 느낀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친구가 말리던 아파트 뒤 공원길로 향한 지우는 좀비 떼와 마주친다. 그 순간 모든 것이 정지해버린 지우. 자신은 생존에 취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지만, 사실은 좀비들이 촬영용 분장을 한 배우들이었음을 알게 되고 안심한다. 

 하지만 한 번 놀란 가슴은 진정이 되지 않아 서둘러 아파트를 향해 가던 중 아이팟을 떨어뜨린 것을 알게 되고 민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되찾으러 돌아간다. 어느덧 좀비들도 사라지고 아이팟 찾기 기능으로 아이팟이 내는 소음을 향해 가는데, 아이팟은 도저히 떨어질 수 없는 외딴 숲 속에서 소리를 내고 있다. 

 마치 자신을 유인하듯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던 소리는 어느 순간 지척에서 들리고, 공포에 질린 지우는 끝내 찾기를 포기하고 뒤돌아 사람들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하지만 어느새 바로 등 뒤에서 무언가 아이팟을 아작 내는 소리가 들린다. 공포에 굳어버린 지우는 안간힘을 쓰지만 발끝조차 움직일 수 없다. 

 - 그분이 오신다, 종막 : 유투버 하이바로 활동하는 종찬. 어릴 적 못생긴 외모와 그 외모를 극도로 싫어했던 동창 양리나와의 사건으로 왕따와 괴롭힘을 심하게 당한다. 결국 중학교를 중퇴하지만 배달일을 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해보려 한다. 

 하지만 양리나가 탑스타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복수심에 불타고 양리나의 과거를 조금 각색한 폭로 유투버 하이바로 변신하면서 복수의 쾌감과 함께 부를 얻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가던 중 검은 무언가를 목격하게 되고 마침 뉴스가 없던 종찬은 이를 미스터리라며 업로드한다.

 하지만 곧 양리나가 자살을 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종찬의 신상이 폭로되자 사람들은 일제히 종찬을 비난하며 비웃는다. 특히, 가장 최근 업로드된 그 검은 무언가를 조작이라며 몰아가자 종찬은 난국의 타개책으로 미스터리의 진실을 밝히는 것에 몰두한다. 

 며칠 동안 처음 목격한 도로를 반복한 어느 저녁, 다시 그것을 목격하고 차로 쫓아가지만 무엇인지 모를 그것은 그보다 빠르게 앞서간다. 드디어 진실을 밝힐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있던 그때, 차에 무언가 부딪히고 그것은 어린아이의 시체였다. 

 시체는 여기저기 피부가 벗겨져 근육과 뼈가 드러나 있었다. 엉겁결에 시체를 치우려던 종찬은 마주 오던 차에 발각되고, 갖가지 죄명으로 기소되어 조사를 받게 된다. 유튜브에는 온갖 비난 댓글이 줄지어 올라오는데, 그중 자신의 누명을 벗겨주겠다는 댓글에 연락한 종찬. 외딴 폐공장으로 찾아간 종찬은 낯선 이 두 명에게 '디자이너'와 '그분'이라는 말을 듣고, '그분'이 바로 자신이 치어 죽인 그 아이의 집에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액션캠을 차고 찾아간 그곳에서 모든 것을 '보고 있는' '그분'을 본 종찬은 단순히 '보임당함'으로 왼팔을 잃고, 공포 탈출하려 피 웅덩이를 기어 보지만, 이미 그분은 오셨다. 아파트가 무너지고 추종자들은 껍질의 벗김을 당했고, 불신자들은 반으로 갈라졌다.



괴물은 그저 괴물


 앞선 작품 '푸르게 빛나는'에서는 단편들을 관통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섣부른 판단이었음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만약 두 단편집이 애초에 픽스 업 방식으로 창작되었다면 두 권을 관통하는 소재는 오로지 괴물, 하나인 것 같다. 그분이 오시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종말의 이야기.

 '열린 문'에서는 피해자가 등장한다. '우물 속'에서는 애초에 우리와 다른 별의 초신성으로 생겨난 족속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푸르게 빛나는'에서는 그분의 종속으로 보이는 벌레가 등장한다. 단순히 픽스 업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괴물의 등장에서 괴물의 완성과 함께 종말까지 그려낸 시리즈물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확실히 '그분이 오신다'가 후속으로 출간된 것은 앞 이야기가 전반부의 이야기이고, 이 책에서 종결이 나기 때문이겠다. '런'에서 드디어 '그분'께서는 고치를 찢고 나와 아이팟을 씹어드셨고, 그와 동시에 거짓말처럼 '레디, 액션!'이라는 대사를 흘린다. '그분이 오신다'에서는 계속된 '그분'의 목격담에 대한 언급과 함께 종찬이 끈질기게 '그분'을 밝혀 폭로하려는 모습, '그분'이 밝혀짐과 동시에 소멸하는 아파트와 주민들의 모습에서 이야기의 끝맺음을 한 것 같다. 

 살짝 아쉬운 점이라면, 워낙 의미부여가 일상화되어있는 나로서는 괴물에게도 무언가 목적의식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는 것.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그저 괴물을 사랑하는 작가가 '손바닥만 한 지옥'을 만들어내기를 위해서였다면 이런 의문이 무슨 소용일까. 이유가 없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

 '푸르게 빛나는'을 읽을 때만 해도 그저 잘 쓴 단편집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책을 읽자 단편들의 요소요소가 조금씩 겹쳐지면서 짙어진 부분에 드러나는 '괴물'의 모습이 작가의 대단함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 같다. 최근 접해본 단편들 중에 단연 다음 단편이 기대되는 작가다.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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