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한 인연
혹시 'X-파일'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아는 분이 계신가. 온갖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추적하는 FBI요원 멀더와 스컬릿의 모험(?)을 그린 드라마이다. 어린 나이에는 꽤나 공포스럽다고 느꼈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딱히 공포스러운 묘사나 놀라게 하는 음향도 없었다. 그저, 무엇인지 모를 막연한 무지에의 공포를, 그 어린 나이에도 느꼈나 보다. 이런 면에서 새삼 느끼는 것은, 내가 참 확실히도 ISTJ라는 것. 애초에 종교도 없는데 심령을 믿을쏘냐.
이런 심령 같은 비과학적 요소와 추리라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요소가 등장하는 추리소설에서 나처럼 극도로 이성적인 존재가 나오고, 그 이성이 온갖 속임수로 치장된 심령이나 종교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조금 달랐는데,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심령에 어느 정도의 믿음(?)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제니는 길거리에서 마술로 생계를 잇는 아가씨다. 그러던 중 핑커턴 탐정회사에서 고용을 제안받는다. 핑커턴 탐정회사는 은밀히 종교계의 의뢰를 받아 폭스 자매의 심령현상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쳐 폭로하면 거액의 사례를 받기로 했다.
요원을 잠입시키는 방식으로 남북전쟁부터 명성을 떨쳤던 핑커턴 탐정회사는 창립자의 죽음 이후 명성을 잃고 있었기에 심령주의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폭스 자매를 잡아 일약 스타덤에 오를 기회와 함께 큰 사례를 얻기 위해 백방 노력하였으나 성과가 없었고, 우연히 발견한 제니를 요원으로 투입시키기로 결정한다.
이는 제니가 여성이라는 점과 마술사라는 점이 작용했는데, 이는 어느 정도 이점으로 작용해 폭스 자매에게 접근하는 것에 성공한다. 하지만 핑커턴 탐정회사는 로버트와 윌리엄 형제의 경영방식의 차이로 분열되고, 그 분열의 여파로 겨우 성공의 덜미를 잡았던 제니의 잠입은 발각되고 만다.
그런 과정에서 제니는 윌리엄이 과거 남북전쟁 당시에 겪었던 학살 비극에 대해 알게 되고, 폭스 세 자매 중 나머지 한 자매의 행방 역시 추리해 낸다. 이제 단순히 사례금이 아니라 진실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된 제니는 재차 폭스 세 자매 중 행적을 감췄던 케이트에게 접근하고자 재차 잠입을 시도하여 진실에 다가서려 하지만 재차 윌리엄의 방해로 인해 무산되고 만다. 하지만 로버트와 다시 진실에 다가서고, 실제 지하실에서 두개골을 발견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로버트와 함께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제니는 핑커턴 탐정회사와 결별한다.
한동안 실의와 함께 심령주의의 비밀에 대한 의구심에 빠져있던 제니는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모든 사건이 오묘하게 맞아떨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다시 한번 심령주의 운동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잠입하고 로버트는 이를 제니의 배신으로 오해한다.
결국 심령주의 운동 안에 들어간 제니는 다시 케이트와 마거릿을 만나고, 이 둘이 결국 맏언니인 리아에게 혹사당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이 둘을 구출할 방법을, 이 둘이 스스로 탈출할 방법을 알려준다.
케이트와 마거릿은 결국 거의 40여 년을 얽매어 있던 심령사기극에서 탈출하고, 제니는 정식으로 마술사로 데뷔, 로버트는 평생 지고 있던 지난 과오의 짐을 인정하고 털어낸다.
기구한 인연
일단 소설의 두께감이 주는 압박감은 상당하다. 차라리 순수문학이라면 애당초 문장의 수려함에라도 기대고 판타지라면 전혀 새로운 세계관에 대한 서사로 인해 그 분량을 이해하겠지만, 추리소설에서 이런 두께감이라니. 개인적으로 이 정도 분량에 추리소설의 각 요인들, 복선, 반전이 들어가 있다면 전체적으로 따라가기가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없지 않다.
게다가 단순히 범죄를 쫓는 추리물도 아니고, 심령주의의 비밀(사기)을 파헤치는 탐정회사와 거기에 우연히 고용된 길거리 마술사 아가씨의 모험이라니. 물론 나처럼 미신 자체를 혐오하다시피 하는 사람이라면 그 거대한 사기극의 비밀이 밝혀지는 통쾌함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그다지 확연한 경계심이나 반발심도 없다면 이 분량을 그것 하나로 끌고 가기는 쉬운 것이 아니지 싶다.
그럼에도 중간중간 '마술사의 길'이라는 책자 소개 및 핑커턴 탐정회사의 지침서, 폭스 자매의 연대기에 대한 간략한 내용 등이 삽입되는 형식으로 주어져있어서 나름 전체적인 흐름의 맥을 짚어갈 장치를 준 것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거기다 마지막에는 거의 극적이다시피 얽히고설켜 이어지는 인간관계는 정말 '대서사시'라는 단어도 어울릴만한 장구한 이야기라고 볼만했다.
다만 마지막까지 심령이라는 행위에 대해 무언가 모를 여지를 주고 있다는 것과 결국 주인공인 제니가 탐정의 눈에 띈 것이 어떠한 특이점이라기보다는 그저 과거의 연에 의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조금의 아쉬움을 남기고 말았다.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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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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