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반전 좋지
출판시장은 호황이던 시기가 있기는 했나 싶게 불황이다. 특히나 자기계발서에서 투자서, 그 뒤를 이은 감성에세이 유행에 따라 그나마 소위 '대박'을 치는 서적은 편중되게 마련이고, 그중에서도 매우 불황인 분야가 있으니, 장르물이다.
SF나 판타지 등은 워낙 발달한 영상기술과 바로 눈으로 보는 것을 더 선호하는 시대, 세대의 흐름에 따라 아무래도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추리물의 경우는 어떨까. 시대를 풍미한 애거서 크리스티나 코난 도일 같은 추리 소설의 대가나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다작작가를 제외하면 성공이 너무 어렵다. 아무래도 추리분야에서 전유물처럼 차지하고 있던 반전의 묘미라는 것이 이제는 어디에나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솔직히, 현실이 너무 팍팍하고 풀어내기 어려운데 굳이 꼬이고 꼬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추리소설을 독자들이 피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니면, 뉴스에서 보는 사건이 추리소설 속 사건보다 더 흥미진진해서일까.
하지만 추리소설이 주는 카타르시스라는 것은 분명 존재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분명 우리는 주인공(보통 해결사)을 따라 사건을 풀어가고 증거를 추적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긴 하다. 하지만 추리소설이 그것과 다른 것이라면 추리에 우리의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영상에서 1차원적으로만 느껴지던 현장이나 증거들을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다는 것 아닐까.
시호는 어릴 적 잔혹한 사건 현장에서 담당 형사에게 우연히 발견되어 입양된다. 어린 시절이기도 했고 사건의 충격으로 기억 대부분이 사라져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등에 남은 시체꽃 문신이 유일한 과거의 증거. 경찰과 시체꽃 타투이스트로 활동하며 어릴 적 자신의 동생을 살해한 자들을 찾는 시호는 유독 잔혹한 사건 현장을 찾아다니게 되고, 잔혹범죄전담팀이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다.
그러던 중, 사채업자인 신영호가 보안이 철저한 고급아파트에서 밀실살인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인 신영호의 팔뚝에서 자신의 등에 새겨진 문신과 같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를 발견하고 의구심을 갖는다. 한편 유력한 살해용의자이자 신영호의 아들인 신태광을 쫓는 동시에 용의자는 아파트 내부인일 것이라는 심증에 윗집 도우미인 김해정을 주요 용의자로 잡고 수사를 계속한다.
그러던 중 신영호와 신태광이 한 때 창시관음교라는 사이비 종교의 총수로 활동했고, 소신공양으로 발생한 화재사건 이후 사이비종교의 재산을 빼돌려 사채회사를 차린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시호 자신의 등에 새겨진 문신이 바로 창시관음교에서 비롯된 것임을.
아직 남아있는 창시관음교에서 신영호를 배신자로 현상금을 걸었다는 것을 안 시호는 단신으로 찾아가 문신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지만, 위험에 빠지게 된다. 절체절명의 순간, 동료가 나타나 시호를 구하게 된다.
이후 윗집 도우미인 김해정의 방에서 돈가방이 발견되고, 강력한 용의자로 추정한 와중, 김해정이 돌보던 치매할머니 박이순이 갑자기 신태광의 사주로 돈을 받고 신영호를 죽였다며 자수를 한다. 하지만 시호는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승진에 눈이 먼 시호의 상관 장대장은 그런 시호를 수사에서 배제시키고, 고집대로 박이순 할머니와 신태광을 대질신문시킨다. 대질신문 도중 갑자기 박이순 할머니는 신태광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살해하는데...
어떻게 보면 소재는 그렇게 새롭지는 않다. 어릴 적 사이비종교 때문에 가족을 잃고, 기억도 잃은 주인공이 하필 또 경찰이 되어서 그 뒤를 캐내는 이야기는 기시감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와 함께 우리가 잃은 것은 참신함일지도 모른다. 워낙 많은 소설이 있었기에 새롭기만을 바라는 것은 억지일 것이고, 기존에 있었던 소재나 스토리라인이라도 이를 얼마나 다르게, 또 독자가 흥미를 느끼게끔 재구성했느냐가 작가의 역량이라 하겠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서 작가의 역량은 매우 빼어났다. 확실히 여러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 작가인만큼 빼어난 추리소설이었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이 경찰이 된 부분과 자신의 과거를 찾아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 어색함이 없이 잘 결부되어 있었고, 중간중간 과거의 장면을 사건의 전반적인 힌트로 삽입한 부분도 독자가 소설의 흐름을 자연스레 쫓아갈 수 있도록 해준 주요 장치가 되어주었다.
게다가 최근 추리소설 중에서는 오로지 반전에만 과도하게 집중한 나머지 사건 자체의 인과관계를 너무 허술하게 잡아 종막에 가서는 '도대체 왜?'라는 의아함이 드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이 소설에서는 사건 자체의 인과관계 역시 매우 단단하게 결부되어 있어 마지막까지 의아함이 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소설 말미의 단 한 줄. 그것으로 열린 결말 혹은 반전을 더해주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 소설에서 마지막 한 줄은 반전이라기보다는 약간 사건의 본질에 대한 접근인 데다가 추후 이어질 수 있는 이야기의 전개를 상상하기도 애매해서 되려 아쉬웠던 감이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 해외 출판 시장과 다르게 우리나라 출판시장 중 추리물의 설자리는 매우 협소하지 않은가 싶다. 특히나 홍보되는 꽤 많은 추리물들이 번역판인 것을 볼 때마다 더 그런 생각이 짙어진다. 출판사 역시 영리를 추구하는 곳이므로 해외에서 이미 독자들의 호응도를 담보받은 작품을 번역하는 것도 이해는 되지만, 이런 추리소설을 접할 때면, 굳이 해외 추리소설을 번역비 들이면서 해야 하나 싶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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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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