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라는 것
현대 판타지의 기본은 아무래도 주인공의 특별함으로 대변된다. 극도로 평범한 주인공이 갖가지 우연이 겹쳐 벙상하지 않은 존재가 되는 것. 최근에는 좀 덜하지만, 대부분의 판타지 주 독자층이 청소년이라는 점은 이런 양식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방증한다.
초기 서양 판타지가 대부분 중세시대와 마법, 드래곤이 배경이었던 것과 동양 판타지라고 할 만한 무협소설이 중국 배경에 무공이 바탕이었던 것에서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다양한 신진 작가들이 등장하면서 게임판타지, 퓨전판타지 등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났다.
그리고 역시 우리에게만 있는 여러 문화, 즉 저승사자나 삼신할매 같은 소재들을 활용한 새로운 판타지가 등장했다. 일단 대표적인 것은 아무래도 환단고기 등 고자료를 바탕으로 서술된 '퇴마록'이 아닐까 싶다. 후로도 '치우천황'이나 '왜란종결자'같은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등장했고 개인적으로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하지만 웹소설과 웹툰의 발달로 점점 판타지라는 장르 자체의 점유율이 떨어지면서 비례해서 한국 판타지의 등장도 뜸했던 것 같다. (혹은 내가 몰랐거나...) 최근에 읽은 작품이라고 해봐야 '저승 최후의 날'이 전부. 일단 소설의 완성도 자체를 떠나, 판타지 팬의 한 명으로써 감사한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삼 사자 현, 철, 한은 망인의 혼을 저승으로 보내는 일을 한다. 다만 저승의 엄격한 규율에서도 예외가 있었는 바, 명부에 적힌 대로 생을 살지 아니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자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여도 그 죄를 묻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현은 10여 년 전부터 늘 죽음을 생각하는 김밥노점 할머니에게 날마다 김밥을 사 먹는다. 그리고 도서관 자살 관련 책들에는 자살예방센터의 명함을 꽂는 일을 한다. 그러던 중 도서관에서 어린 정운을 만나고,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자살을 생각하는 정운에게 고양이를 선물하는 방법으로 자살을 막는다.
그렇게 5년 뒤, 우연히 정운을 길에서 다시 마주치는데 아직 명부에 살 날이 남아 있는 정운이 여전히 현을 알아본다. 자살하려는 것인지 의심한 현과 철은 그런 정운을 유심히 살피지만 결국 자살할 생각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미 사자의 존재를 아는 정운을 이용해서 평소에 먹지 못하는 음식들을 먹던 삼 사자. 나름 평화로운 시간이 지나지만, 어느 날 등장한 해당 선녀마저 정운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일행을 혼란에 빠뜨린다.
사자와 달리 살인에 관계된 자들의 눈에 보이는 선녀. 하지만 아무런 낌새가 없어 신경이 쓰이는 상태에서 그냥 지낸다.
그러던 어느 날, 철을 만나러 현이 대구로 내려간 때 멀리서 까마귀가 울고, 현은 정운에게 뭔가 변고가 생길 것임을 직감해 천리경을 통해 살핀다. 정운이 대학 진학 기념으로 아빠와 엄마를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현. 급히 창살문으로 가려하지만 기차 탈선사고로 창살문이 닫히고 만다.
급히 한과 해당 선녀에게 부탁하지만, 이미 정운의 아빠는 정운을 죽이려 칼을 빼들었다. 사고가 수습되어 창살문으로 급히 이동한 현. 처벌을 각오하고 사자의 힘으로 아빠를 제압하고 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재차 급습하는 정운 아빠의 공격에 대응하려는 찰나, 정운이 몸을 던져 대신 칼을 맞는다.
병원에서 혼수상태에 빠진 정운. 해당은 죽음의 고비에서 혼을 상실한 것 같다며 저승길로 정운의 혼을 찾으러 떠나고, 한 때 불우한 삶을 살았던 현에게 보상으로 내려진 옥구슬을 가진 비리공덕할미의 도움으로 정운의 혼을 되찾아온다.
인연이라는 것
일단 위에 언급한 것처럼, 한국 판타지에 대한 호감도가 기본으로 깔려있는 편이다. 일단 천리경이나 저승마, 죽음이 임박한 식당에서만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설정 등은 참신했다고 본다. 특히나 자살을 대하는 사자의 업무 방식(?)은 상당히 색달랐다.
다른 작품에서는 대부분 명부에 그 자살마저도 들어가 있거나, 아니면 자살을 하게 되면 남은 날을 이승에 떠돈다는 설정이다. 그런 걸 떠나서 애초에 사자가 산 자의 자살에 관여한다는 설정 자체가 상당히 참신했다. 그저 죽음의 이미지만 채워져 있던 저승사자의 모습에 전혀 다른 색의 옷을 입힌 것 같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개연성의 부족이 상당히 아쉬운 면이 없지 않았다. 일단 현이 그 처연한 과거의 삶을 그 원인으로 선녀 해당과 옥황상제의 자애를 받아 신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음에도, 자신이 죽고 싶던 상황에 본인에게 힘이 되어주었던 저승사자를 기억해 내고 저승사자의 길을 택했다는 것. 그리고 그런 저승사자가 되어서 자살하려는 자들에게 신경을 쓰는 것은 어느 정도 개연성을 확보했다.
하지만 그러한 사연을 가진 현이라면 그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자살하려는 사람들에게 개입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지 않았을까? 그저 망자가 되어 삶에 대한 감정이 희미해졌다면 되려 한처럼 자살하려는 사람에게도 무신경한 것이 맞지 않나. 하루에도 수 십 명이 자살하는 세상에서 오로지 김밥 노점 할머니와 정운만 신경 쓰는 이유를 잘은 모르겠다.
그리고 소설의 전개 방식에 있어, 언제나 주인공 옆에 냉철하고 현실적인 사람과 감정적이고 이상적인 사람이 조연으로 있는 것은 클리셰나 다름없다. 그리고 유머러스한 전개와 주인공의 부족한 부분 혹은 주인공이 운신할 수 있는 폭(원래 주인공이라면 저렇지 않은데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주는)을 넓혀준다. 하지만 그런 클리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런 조연의 설정 역시 자연스러워야 하는데, 철의 자유분방함은 일단 저승사자라는 존재에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나름 저승의 관료인 저승사자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도를 지나쳤다. 또한, 한의 경우, 특유의 냉철하고 냉담한 모습만 보자면 도저히 무리를 이룰 수 없는 성격임에도 꾸준히 붙어있는 데다가 갑자기 극도로 화를 내거나, 예상외로 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등 일관성이 결여돼 있다.
특히 정운의 경우, 사자와 선녀를 모두 볼 수 있는 상태가 된 연유에 대해서는 일절 설명이 없어 흔히 '주인공이라서 주인공인' 경우가 되어버렸다. 살해당할 운명이었다는 이유로 해당이 보인다면 해당은 정운의 미래를 봤어야 했고, 명부에 그 살해가 반영이 안 됐다면 애초에 사자가 보이면 안 되었다. 게다가 갑자기 외도에 폭력으로 집에 별로 없던 아버지와의 저녁식사 약속을 잡는데, 그 자리에서 아버지가 정운을 계획적으로 죽이려 했다는 설정은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어렵다.
물론, 네이버 연재소설이니만큼, 책으로 펴내는 과정에 많은 부분의 생략이 일어나 벌어진 사태(?)로 볼 수도 있겠지만, 어찌 되었든 단행본으로 출간하기로 마음먹었다면, 그런 빈틈이 생기지 않도록 어느 정도는 신경을 좀 써줬으면 어땠을까 싶다.
그럼에도 저승사자에게 자비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하고, 자살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닌 '필요'임을, 우리가 조금이나마 더 신경 쓸 수 있도록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설이었다.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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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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