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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르군 Mar 18. 2023

집사의서평#84 우먼 인 스펙트럼

다섯 빛깔


들어가는 말


 빛은 그저 눈부심이다. 그 어떤 색도 내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하나로 된 한 줄기의 빛을 여럿으로 나눠보면 그제야 그토록 다채로운 색들을 볼 수 있다. 

 우리의 삶, 그것이 과거든, 현재든, 현실이든, 이상이든, 이곳이든, 아니면 전혀 다른 이 세계든, 그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마치 스펙트럼처럼, 결국 해체하듯 낱낱이 흩뜨려놓지 않으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여혐이나 페미니즘, 남성우월주의, 여성해방운동... 그 모든 것들은 결국, 빛처럼 매우 단순화되고 획일화되고 강제로 뭉뚱그려놓은 우리 삶 속의 여성이라는 존재에 다시 색을 입히고 본연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는 것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아마 이 앤솔러지가 제작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다. 



다섯 빛깔


 수직의 사랑: 지상이 오염으로 인한 독성을 내뿜자, 인간들은 수직으로 건물을 갈수록 높였다. 층이 높을수록 오염에서 멀어졌고, 층에 따라 계급은 분화되었다. 하층민 하영은, 계층 내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로 상하층 간 아동들이 편지를 주고받는 정책에 참여했다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상층의 아이와 극도의 동질감과 친밀감을 갖는다. 하지만 정책이 폐기되고, 연결은 끊긴다. 10여 년 후, 하층민 간에 구조를 뒤집어엎겠다는 혁명단이 생겨나고 이에 하영도 참여한다. 혁명단은 상층의 국회의원 딸을 납치, 협박해서 구조적 변화를 꾀한다. 임무를 맡은 하영은 나중에 가서야 인질인 상미가 어릴 적 자신과 편지를 나눈 친구라는 걸 알게 된다. 

 여우 구슬은 없어: 요괴혐오의 여론에 편승, 요괴 사냥꾼으로 생계를 잇던 이선. 10여 년 전 자신이 떠나온 여은화의 등장으로 갑자기 요괴 동정론이 일기 시작하고, 사냥꾼들은 전설로만 내려오던 고등요괴가 이를 배후에서 조작한다고 의심한다. 예전 인연으로 여은화의 경호를 맡게 된 이선은 연인인 옌의 의심과 배반자라는 동료 사냥꾼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지만, 여은화가 구미호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계략을 꾸며 여은화와 함께 숨어 살던 집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옌과 더불어 여은화 역시 이선의 계획을 이미 눈치채고 다른 계획을 세운다. 

 하나뿐인 춤: 라뮈스 성인은 무성無性의 쌍둥이로 태어나 분화의 시기를 거쳐 각각의 남녀로 성인이 된다. 의식은 졸업식의 무도회. 릴카는 감관도 사라지고 완연한 여성의 모습이 되어가는데 반해 카릴은 남성성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무도회 춤 연습에도 영향을 끼쳐, 결국 릴카는 남자친구인 얀과 춤을 추게 되고, 카릴은 자신의 여자의 춤에 더 관심이 많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얀에게 자신이 여자 파트의 춤을 추는 것을 도와달라는 청을 하고, 얀은 이를 흔쾌히 수락한다. 춤 연습과, 얀의 비밀을 알게 된 카릴. 졸업 무도회에서 완벽한 오로지 자신만의 춤을 추게 된다. 

 누가 진짜 언니일까?: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재혼 소식이 탐탁지 않은 안여. 상견례 자리에서 새아버지의 딸로 보이는 한 여자가 결혼을 말리라고 귀띔을 한다. 결국 결혼 후 새아버지의 집으로 이사를 가는데, 그곳에서 만난 낙희는 상견례 자리에서 만났던 여자가 아니다. 아름답고 친절하지만 뭔가 섬뜩한 낙희와 뭔가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정부와 정원사, 그리고 집사인 박여사까지. 우연히 나선 산책로에서 상견례 자리의 여자, 의은을 우연히 만난 안여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점점 낙희에 대한 의심을 키워간다. 우연히 찾아 들어간 방에서 발견한 다섯 개의 단지. 그리고 많은 여자가 죽어나갔고, 귀신이 나온다는 집에 대한 소문과 새아버지와 낙희를 제외하고 두 명의 여자만 계속 바뀌는 가족사진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협탐, 좁은 길의 꽃: 무림의 탐정 노릇을 하는 상화. 몸이 상해 찾은 의원에서 영약을 소개받지만 구할 방법이 없고, 때마침 자신을 찾은 사매 무림천후에게 남편인 강호신제의 불륜을 조사해 주면 영약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협탐의 스킬을 활용, 강호신제의 뒤를 쫓은 상화는 결국 강호신제의 본모습을 발견해 내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생각했던 사매의 사산과 자신이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결국은 하나

 

 안전가옥의 앤솔로지는 대부분 읽고 나서 큰 후회는 없었다. 물론 나 같은 염세론자 혹은 까다롭고 삐뚤어진 독자에게는 마음이 불편한 부분도 없진 않지만. 읽고 나면 약간 안전가옥의 PD 제도가 이런 완성도를 만들어 내는 것인지 혹은, 완성도 높은 작가들만을 모아놓는 PD의 능력이 좋은 것인지 궁금해진다. 

 일단 책의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이 워낙 '우먼'이다 보니, 결국은 그렇고 그런 흐름이 되지 않겠냐는 생각이 없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난 여혐 쪽도, 페미니즘 쪽도 아닌 흑색분자다. 좋은 말로는 중도. 애매한 표현으로는 합리론자. 하지만 막상 펼쳐낸 책은 '우먼' 인 스펙트럼이 아니라 우먼 인 '스펙트럼'이었다. 그저, 여성의 입장에 대해서만 써 내려갔다기보다는, 우리의 삶 자체에 대한 폭넓은 해체와 분석이 보였달까. 

 수직의 사랑에서는 사회 계층 구조에 대해서, 특히 상위 계급자의 자애가 얼마나 뼛속까지 계급주의 적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해 줬다. 여우 구슬은 없어에서는 자기 스스로를 내보일 수 없거나 꺼리는 사람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용기에 대해, 그리고 늘 편하게 괜찮다고 말하지만 실체를 보고 나면 한 걸음 물러서는 제삼자에 대한 이야기가 마음을 찔렀다. 누가 진짜 언니일까는 여성의 외모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현시대의 모습을 호러로 펴낸 것처럼 보였다. 

 특히 하나뿐인 춤은, 흔히 LGBT- 로 불리는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라뮈스 성인이라는 외계종족을 통해 소름 돋게 표현한 것 같다. 애초에 태어났을 때 성이 정해진 것이 아닌 데다가, 쌍둥이라는 원인으로 둘 중 하나에게 한 가지 성이 부여되는 설정은, 성소수자가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부여된 성에 대해 저항할 수 없도록 만든 사회의 모습에 대해, 그리고 그런 사회 속에서 고뇌하고 방황하는 성소수자에 대해, 마지막으로 그런 고난을 응원해 주는 주변인과 이겨내는 주인공과, 받아들이는 주변 사람들로 표현해서 매우 완성도가 높았던 것 같다. 

 협탐:좁은 길의 꽃은 상당히 위트 있는 작문과 함께 탄탄한 구성, 물 흐르는 듯한 전개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당최 무협이란 것이 전개가 느리고 디테일한 이벤트들이 많아서 이런 단편 무협은 처음 접해보는데, 생각보다 간결한 전개와 작가의 탁월한 위트가 마음에 들었다. 

 





본 서평은 서평단 참여로 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으며,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적었음을 밝힙니다.



개인 블로그 : https://blog.naver.com/uyuni-sol

※ 블로그 셋방살이 중입니다. '작가의 서재' 방만 제 관할입니다. ㅠㅅ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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