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한 요가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난 적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우리는 그동안의 회포를 내려놓았고 한참 수다를 떨곤 헤어졌다. 그리고 난 집에 오는 지하철에서 대화 중 나누었던 선생님의 말 한마디를 중얼거렸다.'선생님 그럼 이제 요가는 안 하시는거에요?'
강사 일을 그만둔 지 벌써 두 달이란 시간이 지났다. 그 두 달이란 시간 동안 난 나름 알차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공부를 했고, 운동을 했고, 이런저런 취미생활을 했다.
사실 시간이 이렇게 금방 흐를지는 꿈에도 몰랐다. 2021년의 첫 번째 태양을 마주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그 태양이 52번을 떠오르며 3월을 마주하고 있을 줄이야. 분명 알차게 보냈지만,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 김이 빠진다.
강사 일을 그만둔 건 조금은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나는 여태껏 스스로 이러한 판단을 보류하고 부정했지만, 시인한다, 그건 분명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코로나로 인해서 너무 오래 일을 쉬고 있었고 일을 다시 하게 된다 해도 나에게 주어진 수업 수는 너무나도 제한적이었다. 일주일에 1-2개의 수업이 겨우 주어졌으니까.
마치 오래 구르지 않아 녹이 슬고 기름이 마른 체인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거의 한 달가량 수업을 할 수 없었던 그 당시에는, 솔직히 거리두기 제한이 완화되고 수업을 다시 한다는 것이 오히려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그래서 그만두었다.
일을 그만두고, 나는 곧바로 나에게 더 많은 수업을 주는 또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고 보다시피, 2달의 시간이 지났다.
고백하건대 이런 나의 행동 이면에는 내가 가진 어떤 두려움이 존재한다. 이 두려움은 언제나 나와 함께 있었고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에는 그 반대로 작용했다.
두려움, 그것의 이름은 의심이었다.
의심이란 두려움
의심은 항상 방향성이 있다. 마치 물리학이나 역학에서 사용하는 벡터값처럼 크기와 방향을 가지고 어떤 분명한 대상을 가리킨다. "여기 놔둔 내 빵 네가 먹은 거지"라던지, "찬 바람이 들어오는 것 같은데, 또 누가 문을 열어놨나?"라던지, 보통은 방향이 나로부터 출발해 다른 대상에 가 닿는 경우가 많지만 나의 의심은 주로 나로부터 출발해 나에게 닿는다.
나는 사실 요가강사로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늘 참 두려웠다. 이 두려움의 농도는 생각보다 꽤 진해서 요가강사를 시작한 지 정말 얼마 안 된 초보강사일 때는 특유의 긴장감에 수업을 완전히 망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경력이 조금 쌓이면서 수업에서 실수를 하는 일은 크게 줄었지만 일을 그만두기 직전까지도 모든 수업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건 이 수업이 나의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최고의 수업을 할 수 있는 실력이 되지 않아도 최고의 수업을 만들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때로는 과유불급인 법, 과도한 책임감은 나의 성장을 자극하기보단 오히려 나를 짓누르는 중압감으로 자리하곤 하였다.
나는 충분히 유연하지 않으니까, 나는 충분히 강하지 않으니까, 나는 아직 부족하니까, 나는 회원님들을 만족시킬 만큼 충분히 실력이 있지 않으니까.. 등등으로 시작되는 나로부터 시작해 나에게 가 닿는 많은 의심들이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리고 결국, 나는 주저앉아버렸다.
일을 그만 두고 공부한 것들의 흔적들
그리고 지금의 나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있다. 카페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는 나. 스스로를 지독히 아끼면서 동시에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의심의 화살을 돌리는 나.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도 너 따위가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비아냥 거리는 나. 실로 양가적인 내가, 지금 여기 있다.
단언컨대, 나는 일을 그만둔 직후부터 모든 것을 나에게 쏟았다. 강해지기 위해, 유연해지기 위해, 충분한 실력을 갖추기 위해 운동을 하고 공부를 했다. 더 나은 강사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말이다. 그러나 지금 드는 생각은... 그 모든 것이 과연 무엇 때문이었지..?
날이 부쩍 따뜻해졌기 때문일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다. 내 인생에서 단 하루뿐인 오늘을 나는 부단히 놓치고 있는 느낌이다. 내 나이 벌써 28. 아직 부족해, 더 성장해야 해, 하는 채찍질로 20대의 7할 이상을 쏟았다. 어쩌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 내 눈 앞에, 글을 쓰고 있는 내 노트북 오른편으로 글을 다 쓴 후에 공부해야지 하고 꺼내 든 해부학 노트가 보인다. 나는 이 글을 갈무리 지은 후 노트북을 닫고 해부학 노트를 펼쳐 공부를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공부가 끝나면 집에 가서 저녁을 먹은 후 저녁 런닝을 하겠지.
성실하고 알찬 생활. 그러나 전혀 만족스럽지도 뿌듯하지도 않다. 오히려 조급함과 불안만이 증폭되는 생활이다. 아무래도 초점이 틀어진 것 같다. 나는 지금 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