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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gi Sogi Nov 01. 2020

요가에는 힘이 있다 2

당신의 방어기제는 무엇인가요.

<방어기제>


1. 자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여, 감정적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를 가리키는 정신분석 용어  <두산백과>

2. 자아가 원초아의 욕구와 초자아의 요구 사이에 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원초아의 욕구가 강해지면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때 이러한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사용하는 정신 책략  <심리학용어사전>






<1>     



1

한 소녀가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Maris Degener.      


아주 어린 나이부터 거식증을 앓곤 했던 소녀는 자신의 고통을 자해라는 형태로, 그녀의 팔에 새기곤 했다. 소녀의 팔에는 칼에 배인 상처 자국이 남았고, 소녀는 한여름에도 긴팔을 입고 다녀야만 했다.


소녀의 방에는 늘 그녀가 게워낸 토사물이 든 플라스틱 용기가 있었다.     



2

소녀가 10대 중반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소녀가 여름에도 긴팔을 입게 되는 날들이 늘어가면서, 소녀의 부모는 기존에는 성장의 일부로 인식하던, 자신의 자녀가 느끼는 고통의 깊이가 더 이상 간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따님의 상태는 너무나도 심각합니다. 언제라도 심장마비가 올 수 있어요. 당장 입원시켜야 합니다.”

소녀를 이끌고 찾아간 병원에서 소녀의 부모가 들은, 소녀를 진단한 의사의 소견은 이러했다. ‘당장’ 입원시키지 않으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의사의 권고는 소녀의 부모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3

다행히도 병원에서의 수개월의 입원 치료 후, 소녀의 건강은 회복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거식증이 치료된 것은 아니었다. 소녀의 음식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했고, 소녀는 감정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여전히 피폐했다.      


“아이가 퇴원하면, 병원에 있을 때보다 훨씬 힘들겠죠?”

퇴원에 대한 상담을 하던 중 소녀의 어머니가 물었다.

“어머니 상상보다 훨씬 더 힘드실 겁니다,” 의사는 대답했다.

그리고 퇴원 후, 정말로 매 끼니때마다, 집안은 음식을 먹지 않겠다는 딸로 인해 늘 전쟁터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4

소녀가 요가를 접하게 된 것은 이맘때쯤이었다. 어머니의 소개로 요가에 대한 정보를 접한 소녀는 룰루레몬(요가 의류 브랜드. 캐나다 토론토에 본사를 두고 있다) 매장에서 우연히 ‘저스트 비’라는 무료 요가 클래스를 보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요가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서서히, 소녀는 매트 위에서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 방법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년 후, 소녀는 소녀를 눈여겨본 요가 스튜디오의 지원 아래 요가 강사가 되기 위한 강습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의 나이 16세 때의 일이었다.           



5

수년 후, 이러한 Maris의 이야기는 ‘요가를 통해 거식증을 극복한 소녀’라는 타이틀로 미국 언론의 소개를 받으며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고, 더 이상 소녀가 아닌 20대의 Maris는 현재 미국에서 요가를 가르치며, 자신과 같은 거식증을 앓고 있는 여성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2>     



1

한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종종 사회불안증과 공황발작을 경험하곤 했기 때문에 이따금씩 증상이 악화되면 병원에서 처방받은 항우울제를 복용하곤 했다.      



2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느껴지는 극도의 불안감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유난히 길었던 남자는, 다행히 사색을 하는 것을 좋아했고 혼자 있을 때면 이런저런 사색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사색을 하는 과정은 남자에게 있어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었고, 이는 남자가 혼자 있는 시간 중 상당량을 외로움 없이 보내기에 충분한 놀이로 기능하였다.     



3

그러나 남자가 본질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 그 자체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기에 이따금씩 몰아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종종 파괴적인 수준으로 남자를 괴롭히곤 하였다. 남자 입장에서는 사람들과 어울리면 불안한 감정에 휩싸이고, 혼자 있으면 외로운 마음이 드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4

내가 왜 이러지? 남자는 틈이 날 때마다 생각하곤 했다. 나는 왜 이리 괴롭지? 다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걸을 수 있는 저 거리를 걷는 것과, 사람들과 자연스레 대화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나에게는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이런 궁금증은 어느 순간부터 남자의 사색의 주요 주제가 되었고, 남자가 위와 같은 주제에 더욱 몰입할수록 남자의 고민의 깊이는 점차 깊어졌다.     



5

남자가 요가를 접한 것은 이맘때쯤이었다. 잘못된 자세로 인한 근육통에 시달림을 받던 남자는 우연한 계기로 요가에 대한 정보를 접하게 되었고, 이후 매트 위에서의 움직임에 경도되었다. 평소 끊임없이 ‘생각’을 하던 남자에게, 특정 동작에 몰입하는 훈련은 그 자체로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매트 위에서 움직임을 갖고, 호흡에 집중하며 남자는 평소에는 놓지 못했던 ‘생각의 늪’에서 잠시 떨어질 수 있었다. 생각에서 떨어져 현재에 집중을 하는 요가라는 훈련은 남자에게 희열 그 자체로 다가왔다.     






<3>



요가에는 힘이 있다. 분명한 치유의 힘 말이다. 이 힘은 비단 우리의 몸을 강하고 유연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우리 안의 감정적인 그리고 정신적인 부분도 강하게 만든다.     


나에게 어떠한 병리적인 증상이 있다는 부분을 인식하게 된 순간부터, 나는 최선을 다해 내 안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하였지만 정작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에는 집중하지 못했다. 나는 늘 무미건조했고 메말랐으며 무감각했다. 매 순간 힘들었지만 내가 힘들구나, 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그저 뭐가 문제일까,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지? 하는 질문들에 몰입했다.


요가는 이런, 내 안에서의 어떤 이성과 감정 사이의 불균형이랄까, 이런 불균형을 바로잡는데 많은 도움을 준 것 같다. 되뇌어 생각해보면 정말 그 말이 맞다. 실제로 요가를 접하며 그 이전과 비교해서 정말 많이 내 감정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으니까. Maris가 매트 위에서 자신의 감정을 바라보기 시작하였듯, 나 또한 매트 위에서 그러하였다.     


아주 먼 옛날, 중학교였던가 고등학교였던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어느 날, 내 안에서 웅크리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내 머릿속에서 분명한 시각적 이미지로 그려졌던 그 아이는 굉장히 작았고 또 굉장히 연약해 보였다. 이 아이를 발견한 후 (발견했다는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그 아이가 너무 측은해서 슬픔에 잠겼던 기억이 남아 있는데, 어쩌면 그 아이가 바로 내가 그동안 바라보기를 꺼려했던 내 안의 감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되뇌어보면 정말 오랜 시간, 나는 나 자신이 알지도 못한 채, 참 많이 나 스스로를 학대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Maris가 자신의 팔에 자해의 상처를 새겼듯, 나는 나를 정신적으로 가혹하게 몰아세웠다. '왜 문제가 있지?' '나는 뭐가 문제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지?'와 같은 파괴적인 질문들로 말이다. 정말 중요한 건 지친 나를 감싸 안아주는 것인데, 정작 울고 있는 내 안의 나를 방치한 채 말이다.




잠시 멈추고, 호흡을 고르며 나를 온전히 존중하는 것.

나는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 요즈음 그러한 부분에 대한 생각을 하곤 한다.

   



참고페이지

YogaMaris 홈페이지 : https://www.yogamaris.net/


참고영상

다큐멘터리 'I am Maris'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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