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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석 Jul 27. 2021

태양계

사람 사이의 인력

'질량을 갖는 모든 물체는 서로를 끌어당기는 중력을 갖는다'라고 만유인력의 법칙은 이야기한다. 즉 모든 물체는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다는 의미이다.


태양은 자신의 행성계에서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터전인 지구도 1년을 주기로 태양을 공전한다. 태양의 중력이 지구에게 미친 막강한 영향력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떨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지구와 태양과 같은 상호작용이 일어날까? 물리학자들은 yes라고 말 할 것이다. 질량을 갖는 모든 물체에는 사람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심리학자의 대답은 어떨까. 심리적 측면에서, 사람과 사람은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대답은 마찬가지로 yes일 것이다.


사실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한 것이 우스울 정도로 당연한 결론이다. 우리는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내가 하품을 했을 때, 내 앞에 있는 사람,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하품이 옮겨갈 수 있다는 것. 옆에 있는 내 친구가 친숙한 노래를 흥얼거릴 때, 나도 모르게 같이 그 노래를 흥얼거릴 수도 있다는 것. 우리는 이미 많은 경험을 통해 이와 같은 '영향력을 주고받는 것'에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최근, 이 익숙한 현상이 문득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잠시 조금 거북했었던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 싶다.


얼마 전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어머니는 주방에서 국거리를 준비하고 계셨고 나와 아버지는 식사 준비를 위해 수저를 놓고 있었다. 식사 세팅을 끝낸 후 아무 생각 없이 리모콘을 집어 들고 tv를 틀었던 때였다. 아버지의 음성이 들렸다. "tv좀 그만 바쳐라(tv에 좀 그만 집착해라, 정도의 의미). 무슨 맨날 tv를 그렇게 트냐."


난 퉁명스럽게 아버지께 리모콘을 건넸다. 아버지는 어머니께 다시 리모콘을 건넸고 어머니는 필요 없다며 나에게 리모콘을 건네주었다. 나는 리모콘을 내려놓고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냉장고에서 소주 한병과 소주잔을 꺼내 오셨다. "여보 저녁에는 술 안 마신다고 했었잖아." 어머니가 말했다. "내가 언제?" 아버지가 말했다. "이틀 전에 약속했잖아." 어머니가 말했다. "나 그런 말 한 적 없어." 아버지가 말했다. 아버지는 소주뚜껑을 비틀어 여신 후 차가운 소주를 소주잔에 가득 따르셨다.


"그럴수록 신뢰가 자꾸 떨어지는 거야." 내가 말했다. 왜 본인의 입으로 한 약속을 스스로 깨어버리냐는 약간의 비난 어린 표현이었다. 아버지가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묵묵하게 밥을 먹었다.


분위기가 삭막했다. 리모콘을 다시 들었다. tv를 켰다. "야 tv좀 그만 바쳐라. 뭔 맨날 하루종일 tv만 보면서 밥 먹을때도 그러냐? 좀 양보 좀 해라." 아버지가 말했다. 비난 섞인 어조가 역력했다. "그래서 아까 줬었잖아." 내가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조금 전에 했던 똑같은 논지의 말을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그리고 조금 더 사납게 말했다. 밥 위에 고개를 파묻고 아버지의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 듣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정정할 사항이 하나 있다. 나는 밥 먹는 시간과 자기 전 1-2시간 외에는 tv를 보지 않는다. 하루종일 tv를 본다는 표현은 옳지 못했다.)


"어디서 이 새끼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아버지가 노발대발하며 말했다. 젠장, 트리거 포인트가 당겨졌음을 깨달았다. 그렇지만 이미 늦었다. 아버지는 곧 속사포처럼 비난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형편없는 놈이라니, 머리도 좋지 못한 놈이라니, 깨끗하지 못한 놈이라니, 버릇 없는 놈이라니, 생각 없는 놈이라니,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는 무례한 놈이라니 하는 논지의 말이 계속해서 빙글빙글 돌며 아버지의 입밖으로 내뱉어졌다. 


"니 나이가 지금 몇인줄 알아? 너 이제 어린 나이 아니야. 근데 이렇게 생각 없이 살고 말이야. 내가 니 친구냐? 내가 니 친구야? 이 새끼가 어른 공경할 줄도 모르고 말이야. 어! 어디서 아버지를 친구처럼 대하고, 뭐? 신뢰가 떨어져? 신뢰가 떨어져 이 새끼야? 아버지한테 할 소리가 있고 못할 소리가 있지, 어디서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 너 나이가 벌써 28이야. 어린 나이 아니야. (이하 같은 구문 무한반복)"


생각을 해보았다. 나에게는 총 3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첫 번째, 아버지께 사과하고 상황을 무마한다. 두 번째, 아버지의 말을 끊고 반박한다. 나 어린 나이 아닌거 나도 알고, 그래서 지금 아둥바둥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악하고 있고, 아버지 걱정돼서 한 말이었고 등등등. 세 번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으로 간다. 상황이 정리된 후 다시 나와 혼자 식사한다.


아버지의 속사포 비난을 들으며 선택지를 곱씹었다. 그중 첫 번째는 내키지 않았다. 아버지가 하는 말에 사과를 하고 싶지 않았다. 진실이 아니고 진심이 아닐테니까. 두 번째는 감당할 수 없었다. 아버지와 정면으로 부딪히면 논쟁에서는 이길 수 있을지 몰라도 후폭풍을 감당할 수가 없다. 나는 지금 백수고, 가족의 지원이 절실하다. 세 번째의 옵션이 적당할 것 같았다. 적당히 내가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동시에 전선이 확대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생각을 하는 순간, 내 옆에 죽은 듯 가만히 계시는 엄마가 보였다.




아버지는 이후 거의 20분동안 빙글빙글 도는 논지의 말을 끊임없이 내뱉으셨고 끝내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는 방으로 들어가셨다. 마침내 적막이 찾아왔다. 자리에는 어머니와 내가 남았다.


"미안해 엄마." 내가 말했다. "아버지한테 미안하다고 해." 엄마가 말했다. "미안, 그럴 수 없어. 나는 엄마한테는 미안한테 아버지한테 미안한 건 없거든."


어머니가 얼굴을 부여잡고 한숨을 쉬셨다. "나는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내가 말했다. "너랑 니 아빠가 이런데 어떻게 행복하니." 엄마가 말했다. "미안해 엄마."


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쏟았다. 아버지 건강이 걱정이 되어서 술 좀 줄였으면 좋겠는데, 속상해서 그렇게 이야기했다고. 나 아버지 싫지 않다고. 나 아버지랑 잘 지내고 싶다고. 진심으로 그러고 싶다고. 그런데 아버지가 저렇게 행동할 때마다 너무 화가 난다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나도 모르게 화가 끌어 오른다고. 그래서 아버지랑 나는 이 이상 더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다고.


"난 엄마가 진짜 행복했으면 좋겠어." 잠시 뜸을 들였다. 마음 속에 있는 말이 하나 있는데, 이 말을 어머니에게 꺼내도 될지 알 수 없었다. 잠시 생각을 하다 말을 이었다. "엄마, 그런게 있어. 사람들은 자기가 처한 상황이 아무리 괴롭고 힘들어도 쉽게 거기서 벗어나지 못한대. 그 사람 옆에 새로운 좋은 기회가 있고, 자기가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이 있어도 그걸 선택하지 못한대. 그런 종류의 행복이 낯설기 때문이고, 기존의 방식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이래." 곧 어머니가 말했다. "그래서 매 맞는 년들이 도망을 못가. 그런데 엄마도 어떻게 사는게 맞는건지 잘 모르겠어." "그냥 그렇게 사는거야 엄마. 아무도 몰라. 그냥 계속 노력하면서 사는거야. 어떻게 사는게 맞는건지, 어떤게 행복인지, 아둥바둥하면서. 그렇게 사는거야." 



우리 가정에서, 아버지는 가정이라는 행성계에서의 태양이다. 어머니와 나는 그 태양 주위를 돌며 아버지로부터 막강한 영향력을 받는다. 내가 비로소 이 생각에까지 도달하는데 28년이 걸렸다. 내 나이는 28살이고, 나는 과거 28년동안 아버지 주위를 돌며 아버지가 내뿜는 태양광을 맨몸으로 맞았다. 어머니는 그보다 오랜 시간 그러했을 것이다.


이건 내 개인적인 성격인데,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과 대화를 할 때 숨이 가쁘거나 목소리가 떨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 내 감정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내 의견을 말하는데 많이 서투르다. 


며칠 전 아버지에게 비난을 듣는 그 20분의 시간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럴수록 신뢰가 자꾸 떨어지는거야." 라는 15개의 음절을 내뱉은 것이 이 참극을 불러왔다. 만약 내가 15개의 음절을 입밖으로 내뱉지 않았다면? 식사는 무미건조하고 불편했겠지만 마그마는 결코 수면 위로 폭발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말에는 상당한 무게가 있었다. 이건 내가 하는 말이 무거울만큼 가치가 있다, 이런 의미가 아니라 내가 그만큼 말을 뱉는 것에 많은 중압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유명한 정부인사가 말실수를 했을 때 정치적으로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있듯, 나의 말도 가정 내에서 그러했을 것이다. 무려, 28년동안. 내 말 한마디에 폭발한 아버지의 감정이 몇번이었을까. 28년의 시간은, 괴로울만큼 상당히 긴 시간이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 그리고 과거의 아버지와의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졌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서 나를 본다. 그리고 아버지를 통해서 나를 본다. 그리고 아버지를 매개로 하여 나를 보았을 때 떠오르는 나의 특징들이 하나같이 부정적이고 지우고 싶은 것들이라는 사실은 분명 씁쓸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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