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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Sep 09. 2021

그렇게 나는 자라 내가 되었다

<런던에서 자란 사람> 완결 후기

안녕하세요. <런던에서 자란 사람>을 쓴 서남입니다.


지난 3년간의, 저의 런던에서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마지막 이야기를 쓴지도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났는데, 이제야 후기를 쓰네요. 지금까지 공을 들였으니 실컷 해방감을 느끼고 싶어서였는지 아니면 여운이 남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아서였는지는 저만 알고 있겠지요. 음, 일단은 '웹툰 작가님들처럼 완결 후기를 써보고 싶어서'라고 해두지요.



<런던에서 자란 사람>은 아주 예전부터 제가 쓰고 싶었던 이야기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을 꽤 믿는 편인데요, 런던에서의 여러 가지 일들과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만났던 많은 사람들과 그들이 들려주었던 이야기, 또 내가 생각하고 다짐했던 것들이 서서히 옅어지는 게 두려웠어요. 런던에서의 내가 마치 꿈속의 존재처럼 아득하게 멀게 느껴지는 그런 순간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래서 머릿속에만 있는 것들을 글로 정리해보자고, 계속 꺼내어 보고 기억할 수 있게 해 보자고 결심했던 거죠. 


<런던에서 자란 사람>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나의 구원은 오직 나뿐이라는 것이었어요. 후반부에 밝혔다시피 투어가이드가 되고 싶다는 표면적인 이유 외에도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땅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한국이 싫었거든요. 런던은 한국보다 모든 게 훨씬 좋을 거라 생각했고 계속 즐겁고 행복한 나날이 펼쳐질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런던은 낙원이 아니라서 숨쉬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건 똑같았죠. 고통의 형태만 조금 다를 뿐. 결국 어디에 사는지는 크게 상관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타인과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할지, 이 삶을 어떻게 더 잘 살아갈지 결정하고 노력해야 하는 건 언제나 나 자신이었으니까요. 런던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그걸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요. 또 나는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 이런 것을 좋아하고 또 이런 것을 잘하는 사람이라는 것. 미처 몰랐는데 이런 면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 여러 모습의 나를 발견하고 또 알아갈 수 있게 해 준 곳이 런던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런던에서 자랐다는 표현을 제목으로 골랐답니다.     



직장인이다 보니 주말 동안 틈틈이 글을 썼습니다. 물론 업무가 바쁘지 않은 월급루팡이라 사무실에서 가끔 쓴 날도 있지만요. 주말 하루, 특히 일요일은 글 쓰는 날로 정해두고 대부분의 글을 완성하고 평일 동안 짬짬이 퇴고하여 목요일에 올리는 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왜 목요일에 올렸는가 물으신다면, 목요일이 가장 지루한 날이라 그렇게 정했던 것 같네요. 월요일은 바쁠 것 같고, 수요일은 어정쩡한 느낌이고, 목요일은 그냥 왠지 싫어서라는 노래 가사도 있지 않습니까. 목요일 오전 10시에 글을 올릴 생각을 하면 출근길이 설레고 벌써 오늘 할 일을 하나 했다는 성취감도 있거든요. 간혹 메인에 노출이 돼서 알람 오는 재미도 쏠쏠했으니 제 목요일의 비타민이었네요.      


여전히 제게 런던은 그리운 곳입니다. 아마 영원히 그럴 테지요. 그렇다고 엄청 아쉽고 부정적인 느낌으로 그리운 건 아닙니다. 저의 선택으로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으니 억지로 온 것도 아니고, 또 마무리를 못하고 온 것도 아니니 예전처럼 분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습니다. 아련하고 애틋한 감정에 더 가깝겠네요. 런던에 영영 못 가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요. 그저 친구들이 보고 싶고, 익숙했던 장소들에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는 정도? 가을이 되면 더욱 런던이 그리워집니다. 어째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요. 특히 11월에는 꼭 런던에 가야만 할 것 같은 기분입니다. 올해도 런던은 못 가겠지요. 내년에는 갈 수 있을까요? 


글을 쓰는 동안 저는 런던으로 돌아가는 착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브런치에는 굵직한 것들만 골라서 쓰긴 했지만, 정리를 위해 일기를 들춰볼 때면 추억여행을 하느라 한참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임에 분명해서 화나고 짜증 나고 우울하고 섭섭한 일들도 많았을 텐데, 지금은 굉장히 좋은 기억들만 남아있습니다. 물론 깨알같이 적어둔 플랏 인스팩션(점검)에 대한 분노와 S 사장에 대한 것들은 제외해야겠지만요. 언젠가 이것도 추억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그저 그날그날의 이야기들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시작했던 게 이렇게나 큰 선물이 되었네요. ㅋㅋㅋ와 음슴체의 향연이었던 블로그 일기가 이렇게 글이 되는 걸 보니 저도 무척 신기합니다.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로.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저는 또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해 볼게요. 안녕!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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