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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Dec 25. 2021

이토록 내향적인 삶

외향인의 삶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서울 북쪽 거의 끝자락에 살아서 좋은 점은 전철에 한번 앉으면 마음 편히 졸며 갈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날은 운 좋게 자리에 앉았지요. 의자가 따뜻하니 슬슬 졸리더군요. 어차피 한참 가야 할 텐데 싶어서 눈을 감고 잠을 청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비어있던 제 옆자리에 할머니가 앉으시더니 혼잣말을 하더군요.

"아유, 와이파이가 왜 안 잡히지... 집에서는 잘 되던데..."

그야 그건 댁에서 쓰시는 개인 와이파이니까요. 하지만 대답하지는 않았습니다. 모르는 사람이랑 대화하는 걸 좋아하지 않거든요. 변명을 좀 하자면, 길 알려달라는 '도를 아십니까'에게 매번 붙잡히고, 택시기사의 정치인 비난에 맞장구를 치다가 멀미를 얻고 나면 이렇게 됩니다. 전철에서도 어르신들과 한번 말을 텄다가 내릴 때까지 대화를 하며 가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계속 자는 사람인 척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처럼 혼잣말 잘하는 민족은 없으며, 그중에서도 어르신들의 혼잣말은 결코 '진짜 혼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할머니는 와이파이가 안 된다는 말을 주문처럼 뱉어내셨죠. 이거 혹시 나 들으라고 하시는 소리인가.


 내가 말 걸기 쉬운 상인가. 할 수 없군.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뜨는데, 비어있던 할머니 오른쪽에 마침 젊은 연인이 앉더군요. 할머니가 다시 한번 와이파이가 안 된다고 중얼거리기가 무섭게 여자분이 물었습니다.

"뭐 안되세요?"

"아니~ 집에서는 와이파이가 잘 되는데, 밖에만 나오면 안 되네~"

"아 그거요? 집에서 쓰시는 거는 집에서만 돼요. 밖에서는 안돼요."

"근데 내가 밖에서도 몇 번 썼거든. 이게 되다 안되다 하네."

"되는 것도 몇 개 있긴 한데, 대부분 잘 안돼서 그럴 거예요."

그 여자분은 한참 동안 공공 와이파이들 중에 자동 연결되는 것들이 있으며, 통신사에 따라 지하철 와이파이가 집히기도 한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할머니는 그제야 수긍하셨고, 저는 그 여자분이 외향인일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엄청 싹싹한 사람이네. 이런 순간이면 묘한 부러움을 느끼며 약간의 귀찮음이 가니쉬처럼 얹어진 제 성격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저의 글을 오래 읽으셨던 분들이라면 제가 내향인이라는 걸 아실 테지요. 저는 내향인 중에서도 극 내향인입니다. 사회화가 꽤 잘 된 내향인이라고 할 수 있죠. 내향인이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몰랐는데 김혜성 씨가 출연한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방송분을 보고 알았습니다.

출처: 오은영의 금쪽 상담소

여러분은 몇 개 해당하시나요? 저는 5개 모두 해당입니다. 나원참! 오은영 박사님이 극 내향인으로 보인다고 말한 김혜성 씨조차 5개는 아니던데 말이지요. 외향성과 내향성 중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괜히 착잡해졌습니다. MBTI에 과몰입하는 사람들 중에 내향성이 높은 사람을 두고 친구가 없을 거라는 둥, 사회성이 떨어질 거라는 둥, 회사 생활하기 어렵겠다는 둥 선무당 사람 잡는 발언을 하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이 여행 가이드는 대체 어떻게 했나 싶기도 합니다.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먼저 다가가 친근하게 대하고, 쾌활해 보이는 상태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던 날들이 분명 있었으니까요. 저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 버텼던 걸까요? 스트레스받을 때야 늘 있었습니다. 하지만 즐겁고 행복한 순간 역시 많았죠. 일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건 사람이었지만, 나를 살게 하고 웃게 하는 것 역시 사람이었습니다. 외로움을 타는 편은 아니지만, 모든 걸 혼자 하기에는 역시 부담스럽더라고요. 가끔 심심하기도 하고요.


 외향인이 부럽냐고 물으신다면, 특별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태어났고, 또 이렇게 30년 넘게 살아왔는걸요? 지금 제 모습도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못났고 덜 떨어진 구석이 있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좀 보완하고 반짝반짝하게 닦아서 잘 데리고 살아야죠. 사람 고쳐 쓰는 거 아니라는 말이 있긴 합니다만, 내가 남을 바꾸지는 못해도 내가 나를 다듬는 건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이야기를 하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어서 보여주는 그런 연습들을 통해서 말이죠.


그런데 마무리를 어떻게 하죠?

음, 어, 내향인들 파이팅!     



Fin.  


(타이틀 이미지 출처: YouTube 'Lofi 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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