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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Jul 28. 2022

7월의 바다는 차가웠다

[고성] 계획 따위 개나 줘라 3편

지도 앱에 의지해 숙소까지 걸었다. 한낮의 해가 너무 뜨거워서 정수리에 감각이 없었다. 뉴스로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서 날계란이 익는 장면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게 생각났다. 지금이라면 내 정수리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싶었다. 아야진 해변에서 숙소까지는 20분 남짓이었지만 체감으로는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망할 지도 앱이 가파른 오르막길로 나를 안내했기 때문이었다.

'아까 택시 왔던 길대로 갈걸!'

후회에 형태가 있다면 나는 아마 아주 긴 꼬리를 달고 있을 것이다.


오르막에 약한 터라 숨을 헐떡이며 숙소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30초 간격으로 들여다봤다. 그 오르막은 마을 골목 안쪽에 있었는데, 그늘 아래에 나란히 앉은 할머니 무리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선글라스에 하늘하늘한 시폰 옷을 입은 젊은이가 캐리어를 든 채 오르막을 오르는 모습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할머니 중 하나가 놀라면서

"아니, 왜 이 쪽 길로 올라오는가? 바다에서 온 거 아니요?"

그러게 말입니다. 제가 왜 그랬을까요.



겨우 도착한 숙소는 한 동짜리 작은 아파트였다. 안내된 호수에 들어서니 살 것 같았다. 신발을 벗고 고개를 드는데 우와-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하얀 커튼 너머는 온통 새파랬다. 이 이파트 앞으로는 다른 높은 건물이 없었기 때문에 시야가 탁 트여 있었다. 테라스로 달려가 보니 바다가 보였다. 1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라더니 정말이었다. 해변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있었고, 스노클링 하는 어린이들과 파도와 술래잡기하는 강아지들이 보였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나는 후다닥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바닷물에 들어가면 하나도 안 피곤할 것 같았다.


숙소 앞 편의점에서 물과 이온음료를 챙긴 뒤 바다로 향했다. 짭조름한 바다향이 바람이 실려오자 괜히 떨렸다. 바다에 와서 그런 건지, 혼자 와서 그런 건지. 도착한 곳은 아야진 해변에 비하면 한산했다. 아야진 해변의 인파에 질려서 발도 담그지 않고 곧장 떠났는데 숙소 앞 해변은 마음에 쏙 들었다. 지도 앱을 꺼내 여기가 어디인지 확인해봤다.

-청간해변

그렇구나. 청간해변이라는 곳이구나. 좋았던 것들은 잘 기억해둬야 의미가 있다. 노력해야 하는 건 언제나 내 쪽이다.    


해가 지면 물에서 나와야 하니 1분이라도 빨리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래시가드 상의를 벗으려다가 멈칫했다. 말랑한 배와 옆구리가 괜히 민망해서 한번 만져봤다. 하지만 이내 시원하게 벗어재꼈다.

'물에 들어가면 안 보이니까 뭐.'

이런 자신감은 아무도 나를 안 볼 거라는 믿음에서 나온다. 멀리서 봐도 잘 보이게 에코백과 음료수 병들을 쌓아 올리고 신발까지 벗자 비로소 해수욕할 준비가 끝났다. 똑바로 걸어가니 풍경처럼 느껴지던 곳 한가운데 내가 서 있었다.


바다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파도가 '부서진다'는 표현을 처음 쓴 사람을 존경하게 된다. 밀려오고 쓸려가는 지구의 운동을 이런 말로 바꾸다니. 그 부서짐에는 뾰족한 구석이 없어서 아무리 오래 보고 있어도 무해하다. 광활하게 펼쳐진 풍경 앞에서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그 느낌이 좋아서 바다를 좋아한다. 내 삶이 찰나에 불과해서, 지금 살아 숨 쉬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우연이라서.


발을 담가보니 차가웠다. 지구의 3분의 2를 데우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하다. 7월이 되자마자 물에 들어가겠다고 달려온 내가 성급했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바닷물에 안 들어가면 여기까지 온 보람이 없다고 생각했다. 눈앞에 이렇게 멋진 바다가 있는데! 사람도 없고 한산한데! 수영복도 가져왔는데! 핑계도 가지가지다. 나는 어떻게든 물에 들어가 보겠다고 착실하게 상반신에 물을 끼얹고 준비 태세에 들어갔다. 그리고 허리쯤 오는 깊이에서 몸을 쑥 집어넣었다.


'히이이이익!'

하마터면 괴상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보다 더 적절한 게 없다 - 물이 얼음장 같았다. 하반신과 상반신이 느끼는 온도가 다른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렇게 물이 소름 끼치게 차가울 리 없었다. 그 뒤로도 몇 번 들락날락하며 물속에 있어봤지만, 조금만 깊어져도 수온차가 많이 나서 힘들었다. 그 와중에 어린이들은 스노클링을 잘만 하더라.  


어렸을 때 수영을 배운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내가 배운 게 아니라 부모님이 수영교실에 보낸 거에 좀 더 가깝지만 아무렴 어떤가. 나는 바다에 누운 채 멍하니 하늘 구경을 했다. 귀까지 물에 담그고 있으면 바깥세상의 소리가 멀어진다. 꿈속에 있는 것 같다고 할까. 해변에는 어린이들과 강아지들을 잔뜩 있었는데, 강아지들 이름이 특이했다. 한 마리는 김치, 또 한 마리는 만두였다. '김치야 안돼, 이리 와!' 하는 아주머니의 외침이 몽롱하게 들려서 웃음이 났다. 나머지 강아지들의 이름은 뭘까. 까만 강아지는 음, 짜장?



한참을 물에 동동 떠 있던 내게 한 어린이가 말했다.

"거기 해파리 있던데. 저 아까 쏘였어요."

나는 충분히 물장구를 쳤다고 생각하며 얼른 물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니, 내가 해파리 때문에 무서워서 그랬다기보다는 바닷물이 너무 차갑더라고. 6시도 다 되어가고 배도 고프고. 흠흠. 슬슬 편의점이나 가볼까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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