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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돌이한의사 Nov 07. 2021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공부하다 생긴 병 (#수험생직업병)

 30대 초반, 나는 한의대를 가기로 결심하고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누구나 선망하는 대기업을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가족을 비롯하여 주위 사람들의 만류가 심했다. 하지만 내 결심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남들이 봤을 때는 무모해 보였을 것이다. 학교 공부에 손을 놓은지 10년도 더 지난 나이에 다시 대학시험을 보겠다고 도전장을 내밀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당시 한의대는 드라마 허준과 대장금의 연속흥행으로그 위상이 하늘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10년전만 하더라도 있는 줄도 몰랐던 지방 한의대 커트라인이 SKY에 있는 웬만한 학과보다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도전한 이유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입시 과목을 조사해보니 예전에 비해 시험 과목이 대폭 줄어 있었다. 학력고사 시절에는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이외에도 한국사, 제2외국어, 사회, 윤리 등 10과목 이상을 공부해야 했지만 지금은 5과목만 공부하면 됐다. 그동안 회사에서 했던 업무가 수학과 과학이 바탕이 된 연구 업무였고, 영어는 토익 시험에서 늘 900점 이상 나왔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국어는 고등학교 때 가장 취약한 과목이었지만 모의고사를 풀어 보니 할만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신문을 읽고 다양한 책을 접했기 때문에 배경지식이 많이 늘어서 비문학 부분이 매우 쉽게 느껴졌다. 


 수능 문제 또한 학력고사 문제에 비해 전반적으로 깔끔했다. 학력고사는 이해력보다 암기력이 필요했고 중요한 개념을 묻기보다 지엽적인 내용을 많이 물었는데 수능은 주요 개념이나 주제만 알면 풀리는 문제가 많았다. 수학의 경우 예전처럼 계산이 복잡한 문제가 없었고 개념만 정확히 이해하면 간단하게 풀리는 문제가 많았다. 이정도면 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로 공부를 해야 할 것은 국어에서 문학파트, 영어에서는 문법 정도였다. 기계공학도 출신이니 과학 중 물리는 자신 있었고 생물도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 주말마다 미리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해 놓았기 때문에 개념 정리는 다 되어 있었다. 이제는 대입에서 가중치가 가장 높은 수학에 전력 투구를 하면 됐다. 


 이렇듯 머리 속에서 어느 정도 계산이 된 상태에서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수능을 불과 3개월 앞두고 회사를 그만 둔 것이었다. 공부계획뿐만 아니라 절박함도 있었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한 번에 붙어야만 했다. 이번에 실패하면 1년치 생활비와 학비가 더 필요한데 예산이 없었다. 지금껏 모아 놓은 돈으로 한의대 6년을 다니기도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말 배수의 진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감, 의지, 공부계획의 삼박자가 갖춰졌다. 계획대로 공부하면 원하는 대학에 갈 가능성이 보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첫 한 달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이 됐다. 아침 6시부터 밤 10시까지 공부했다. 일어나자마자 인터넷 강의를 1시간 듣고 오전에는 수학, 오후부터는 국어와 영어, 과학을 번갈아가며 빈틈없이 알차게 공부했다. 밤이 돼서 그날 계획한 공부를 다 마치면 뿌듯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밤 하늘을 보면서 원하는 곳에 당당하게 합격하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처맞기 전까진.”


 미국 권투 선수였던 마이크 타이슨이 상대 선수에게 한 말이다. 당시 이 선수의 펀치가 얼마나 강력했던지 별명이 ‘핵주먹’이었다. 마이크 타이슨의 글러브에 스치기만 했는데도 상대 선수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타이슨을 상대로 1라운드를 넘기는 선수가 별로 없었다. 물론 그들은 타이슨을 상대할 그럴싸한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전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내 상황도 비슷했다. 계획은 그럴싸했는데 현실은 내 생각과 달랐다. 한달을 수학공부에 쏟아부었는데 점수가 생각만큼 나오지 않았다. 한의대에 가기 위해서는 수학이 가장 중요한 과목이었기에 멘붕이 왔다. 서울대에 입학해서 대학원을 마치기까지 수학 과외만 6년을 했고, 공대 출신에 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수식만 풀었기 때문에 수학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퇴사 전에 모의고사를 풀어봤을 때 웬만한 공식은 다 기억이 났다. 그래서 조금만 공부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리석게도 회사에 들어와서 6년 이상 고등학교 수학에서 손을 놓았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그때 또 하나의 벽이 나타났다. 한달동안 쉼없이 공부를 하다 보니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시험공부가 두 달째에 접어들자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졌다. 가까스로 일어나도 입맛이 하나도 없었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 내내 졸음이 쏟아졌다. 집중이 안 되니 공부계획들이 계속 밀리기 시작했다. 대학교에 들어간 이후 그동안 크게 아프지 않아서 나름 건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트레스와 피로가 쌓이자 중고등학교 때 앓았던 병들이 하나 둘 재발했다.


 나는 위장이 약한 체질이라 위장에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만 소화가안 되는 음식을 먹거나 신경을 좀 쓰면 바로 체하고, 체하면 두통이 생겼다. 두통이 심해지면 눈이 빠질 듯이 아팠고, 손발이 싸늘해지면서 식은땀까지 났다. 온 몸에 힘이 빠지면서 눕고만 싶었다. 이렇게 체기와 두통이 찾아오는 날이면 하루 이틀은 밥도 못먹고 쉬어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은 점차 심해졌고 급기야 먹으면 체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상태까지 갔다. 


과민대장증후군도 재발했다. 시험 때만 되면 배가 살살 아프고 설사를 했다. 증상이 반복되면서 수능시험을 망칠까 걱정이 되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심해지는 날이면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모의고사를보다가 갑자기 불안해지면서 머리 속이 하얗게 되기도 했다. 식사를 잘 못하고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알레르기 비염도 심해졌다. 아침에 찬바람이 살짝만 들어와도 콧물과 재채기가 계속 나왔고 오후에 날씨가 따뜻해지기 전까지 증상은 계속됐다. 


 결국 버티고 버티다 근처 한의원에 찾아갔다. 


 “수능 끝나면 좀 나아질테니 조금만 참아.”


 그 한의원에서 내 이야기를 듣고 원장님이해 주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수능때까지는 스트레스와 피로가 계속될테니 그동안 한약으로 증상을 다스리고 체력을 유지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 그 원장님이 해 주셨던 따뜻한 위로의 말 한마디로 인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걱정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편안해졌고 희망이 생겼다. 원장님께 나중에 따로 인사를 못드렸지만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한약을 먹고 신기하게도 바로 소화가 되기 시작했다. 지금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그 당시에는 놀라운 체험이었다. 식사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속도 안정이 되었다. 대변 상태도 좋아지고 불안감도 더이상 심해지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먹을 걸 후회가 됐다. 괜찮아지겠지 하면서 한 달이란 시간을 허비한 게 아쉬웠다.


 내 병들의 원인은 입시 스트레스와 피로였다. 장시간 공부로 피로가 누적되고 이번에 안 되면 끝이라는 압박감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 생각보다 점수가 안 나와서 불안감이 몰려왔다. 그러면서 평소 체질적으로 약했던 위장이 먼저 탈이 나고 이어서 수험생 직업병이 재발을 한 것이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왜 그리 미련하게 버텼는지 모른다. 문제집이나 인터넷 강의의 수업료, 독서실 비용은 아낌없이 투자하면서 훨씬 더 중요한 내 몸에 투자하는 것에는 인색했다. 내 몸을 이루는 음식은 싼 것을 찾고, 공부의 기본인 체력을 올리는 것은 등한시했다. 그래서 결국 탈이 났고 그걸 회복하느라 공부도 못하고 아까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수험생의 목표는 수능시험에서 최고의 성적을 올리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 효율을 높여야 한다. 공부 효율을 높이기 위한 기본 바탕은 건강과 체력이다. 이 책을 보는 수험생 여러분들은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나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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