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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돌이한의사 Oct 30. 2021

비타민이 채워주지 못하는 50%

공부하다 생긴 병 (#수험생직업병)

“비타민A는 야맹증, 비타민 B는 각기병, 비타민 C는 괴혈병, 비타민 D는 구루병”


 비타민이 부족하면 생기는 병인데, 이름이 특이해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생물시험을 보기 위해 표를 만들어 무작정 외우긴 했는데 당시는 비타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저런 병이 어떤 병인지도 몰랐다. 열심히 외운 덕분에 시험은 잘 봤지만, 이해가 안된 상태로 외우기만 하다 보니 생물은 점점 선호하지 않는 과목이 되어버렸다. 나중에 한의대에 들어가서 인체의 신비로움을 이해하고 나서는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되었지만 말이다.


 비타민의 역사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롭다. 비타민 C가 부족해서 생기는 괴혈병은 17세기 대항해시대에 먼 바다를 여행하는 선원들에게 처음으로 나타났다. 당시 채소나 과일의 보관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비타민을 보충할 수가 없었던 선원들 중 많은 수가 괴혈병으로 사망했다. 이 시기 선원들에게는 괴혈병이 해적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1753년 영국 해군의 제임스 린드 박사는 식사 환경이 좋은 고급 선원들에게 괴혈병의 발병이 덜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다른 선원들에게도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섭취하게 했고 그 결과 괴혈병이 생기지 않게 되었다. 이후 식품보관 기술이 발전하면서 괴혈병은 사라졌고 비타민에 대한 관심도 같이사그라들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미국의 화학자 라이너스 폴링이 고용량의 비타민 C를 섭취하면 암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비타민에 대한 관심을 다시 끌어올렸다. 이후 수십년간의 연구에서 비타민이 암, 심장병, 뇌졸중 예방에 별다른 효과가 없다고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비타민의 인기는 폭발적으로 늘어만 갔다. 2013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44%가 비타민제나 건강보조식품을 복용한다고 한다. 비타민 광고에 보면 비타민이 피로회복은 물론 조직 재생, 면역 증진, 암 예방까지 된다고 한다. 거의 만병통치약이다. 


 그런데 비타민을 먹으면 정말 모든 건강 문제가 다 해결이 될까?


 우선 비타민이 어떤 녀석인지부터 살펴보자. 비타민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과 같은 주 영양소가 아니다. 주 영양소는 인체활동에 필요한 에너지원이 되고 인체를 구성하는 성분이 되는데, 비타민은 이런 주 영양소의 대사를 돕는 보조 영양소로 인체에 극소량만 있어도 된다. 게다가 비타민은 과일이나 야채에 충분히 들어있기 때문에 현대인들에게 괴혈병과 같은 비타민 결핍성 질환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오히려 비타민은 과잉섭취를 할 때 문제가 된다. 수용성 비타민인 비타민 B, C는 물에 녹기 때문에 많이 먹어도 소변으로 배출되어 문제가 없다. 하지만 과잉섭취를 하면 불필요한 비타민을 계속해서 몸 밖으로 배출해야 하기 때문에 신장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지용성 비타민인 비타민 A, D는 물에 녹지 않기 때문에 소변으로 배출이 안 되고 체내에 누적되어 비타민과다증을 일으키니 더 주의해야 한다.


 다른 문제도 있다.


 주위에 보면 귤이나 사과를 먹을 때는 괜찮은데 비타민 C를 먹으면 속이 쓰린 사람이 있고, 샐러드를 먹을 때는 문제가 없는데 종합비타민을 먹을 때 소화가 안 되는 사람도 있다. 이것은 공장에서 화학적으로 합성한 비타민과 자연상태의 비타민이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의미한다. 과일이나 채소에는 비타민의 소화흡수를 돕는 성분들이 함께 들어있다. 또한 인류는 과일이나 채소에 들어있는 비타민을 효과적으로 흡수할 수 있게 장내미생물들이 진화해왔다. 그렇기 때문에 과일이나 채소를 먹을 때는 비타민이 자연스럽게 흡수되지만 합성비타민을 먹을 때는 탈이 나는 것이다. 


 사실 채소와 과일을 골고루 먹고 낮에 햇빛을 잘 쐰다면 굳이 합성비타민을 따로 챙겨 먹을 필요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현대인들이 그렇게 일일이 챙겨먹을 시간이 없으니 비타민제로 보충하자고 하는데, 과연 비타민만 부족할까? 다른 영양소는 부족하지 않을까? 이러한 생각들 때문에 온갖 보충제가 난무하고 있다. 간편함만 추구하다 보니 제대로 된 식사에 신경 쓰기보다 보충제에 의존하게 되고, 그 결과 오히려 영양결핍이 오거나 보충제로 인한 부작용에 시달리게 된다.


 진료실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비타민이나 영양제로 질병이 치료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매스컴이나 인터넷에 떠도는 광고를 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 수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은 비타민이나 영양제로 치료되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병은 오히려 깊어만 간다. 병이 만성이 될수록 치료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된 믿음으로 안타까운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비타민을 비롯한 건강보조식품을 먹는 사람들의 심리에는 자신이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못 먹던 시절 사람들의 인사는 “밥은 먹었니?”였다. 지금은 잘 먹고 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잘 먹어야 된다’라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배탈이 나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한 끼라도 안 먹으면 큰 일이 생길 것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보양식을 찾아다니고, 배불리 먹는 것을 좋은 것으로 여긴다. 피곤하면 비타민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하고, 몸이 아프면 영양제를 찾는다. 


 하지만 현대인들의 병은 먹는 것이 부족해서가 아닌 넘쳐서 온다. 예전에 농사짓던 시절에는 하루 종일 노동을 하고 먹는 것이라고는 밥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육체노동이 현격히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열량의 음식이나 불필요한 보조식품들을 많이 먹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음식이나 식품에 들어가는 화학첨가물이나 보존제, 환경호르몬의 섭취량도 대폭 증가했다. 과도한 영양과 화학물질들이 몸에 쌓여 독소가 되고 질병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건강해지기 위해 뭔가를 먹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빼내야 한다. 


 한약과 비타민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비타민은 보충하는 역할만 한다. 비타민이 부족하지 않은데 보충하는 것은 부작용만 생긴다. 한약이라고 하면 보補약만 생각하는데, 사실 한약의 시작은 사瀉약이었다. 사약의 사瀉자는 뺄 사이다. 사약의 목표는 질병의 원인이 되는 담음[1]이나 어혈[2]과 같은 독소를 몸 밖으로 빼내는 것인데, 주로 땀이나 대소변으로 배출시키는 방법을 썼다. 이렇게 불필요한 독소를 빼내고 깨끗하게 비운 상태에서 기혈氣血과 영양을 보충해줄 때 몸이 살아나고 질병을 빨리 몰아낼 수 있게 된다. 한약처방을 잘 살펴보면 빼주는 약과 보충하는 약이 적절한 비율로 되어 있는데, 이런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먹을수록 좋은 약이나 건강식품은 없다. 과다 복용한 비타민이나 영양제는 우리 몸에서 독소로 작용한다. 아무리 좋은 약이나 건강식품도 꼭 필요할 때 정확한 용량으로 복용해야 한다. 또한 장기적으로 먹을 때는 주기적으로 몸 상태를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달라진 몸 상태에 따라 약이나 건강식품이 달라져야 한다. 배가 부르면 숟가락을 내려놓아야 하듯, 우리 몸이 정상으로 회복이 되었다면 복용을 중단해야 한다. 아깝다고 더 먹으면 그 때부터 바로 역효과가 시작된다. 아무리 몸에 좋은 한우도 과식하면 배탈이 나는 것처럼 말이다. 


 비타민이나 보충제에만 의존하는 것은 건강이 나빠지는 지름길이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내 몸을 구성하는 음식에 무관심하다면 질병이 나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내 몸이 건강해야 하고 싶은 일도 마음껏 할 수 있다. 건강이 가장 중요한 줄 안다면 어떤 비타민과 영양제를 먹을지가 아니라 평소에 먹는 음식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옳다.


 우리 아이가 기운이 없고 병이 낫지 않는다고 해서 무턱대고 건강식품이나 비타민을 먹이면 안 된다. 아픈 이유가 기혈이 부족하기 때문인지, 독소가 쌓였기 때문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독소가 쌓였다면 빼줘야 하고 기혈이 부족하다면 채워줘야 한다. 둘 다 문제라면 거기에 맞게 더하고 빼줘야 한다. 특히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라면 아이한테 맞는 건강식품이나 비타민을 찾는데 쓰는 시간도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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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상적인 ‘진액’이 변하여 병리적 상태가 된 것을 총칭.

[2] 정상적인 ‘혈액’이 변하여 병리적 상태가 된 것을 총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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