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돌이한의사 Oct 16. 2021

우리아이가 수험생직업병에 걸렸다고요?

공부하다 생긴 병(#수험생직업병)



‘똑똑똑’


“네, 안에 있어요.”


‘똥을 하루 종일 싸나’, ‘급해죽겠는데 빨리 좀 나오지’


K씨는 지하철 화장실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중이었다. 1분이 마치 1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뱃속에서 꾸루룩 천둥소리가 나고 배가 사르르 아픈 게 설사가 곧 나올 것 같았다. 참으려고 심호흡을 해보기도 하고 다리를 올렸다 내렸다 해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1분만 더 있으면 큰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장이 좋지 못했던 K씨는 회사원이 된 이후에도 이런 일을 종종 겪었다. 아침에 별 이유없이 갑자기 배가 아팠고 그럴 때마다 화장실을 급하게 찾았다. 여러 번이런 일이 있다 보니 지하철 화장실의 위치를 모조리 외우게 됐고, 지하철 어느 칸에서 내려야 하는지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주요 지하철 역은 출근하면서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몇 정거장 전에 내려 화장실을 이용했고, 화장실에 휴지가 없는 경우를 대비해서 여행용 티슈를 항상 휴대하고 다녔다. 화장실에 들렀다 가려면 10분 이상 걸리기 때문에 그 시간까지 계산해서 일찍 집에서 나왔다.


 수년간 나름 노하우가 생겨 이런 일상에 그럭저럭 적응하고 있었지만 가끔 대비할 수 없는 경우가 생겼다. 이직을 위해 면접을 보러 간다든지, 승진을 위한 영어시험을 본다든지, 남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등 중요한 날이 그랬는데, 이런 날에는 배 아플까 걱정이 돼서 아침부터 식사를 안 하게 되었다. 긴장하거나 신경을 써야하는 날이면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계속 화장실을 가야 했기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를못하다 보니 체력이 달려서 중요한 순간에 제 실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K씨의 병명은 과민성대장증후군이다. 중고등학교부터 시작된 과민성대장증후군이 성인까지 이어져 고통을 받고 있었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은 장이 예민해져서 약간의 자극에도 대장이 과민반응을 보이는 난치성 질환이다. 


 한의사가 돼서 진료를 시작하고 보니 많은 사람들이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특히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아이들 중 상당 수가 K씨와 같은 고통을 겪고 있었다. 시험을 보는 날이면 배가 살살 아파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경우는 너무 흔했고, 심한 경우 학교나 학원에 가려고만 하면 배가 아파 힘들어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조금만 뭘 먹어도 신호가 오는데 막상 화장실에 가면 대변이 시원하게 안나와서 10분 이상 앉아있는다고 했다.


 나도 중고등학생때 시험 보는 날이면 아침마다 배가 아팠고, 특히 수학시험을 볼 때면 시험 보는 도중에 배가 아파 화장실로 뛰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화장실에 갔다오면 진이 쏙 빠져서 힘겹게 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지금도 예전의 나처럼 힘들게 공부하는 아이들이 이렇게 많다니. 참 안쓰러웠다. 그렇게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경험해봐서 알기 때문이다. 


 공부하는 아이들은 이런 과민성대장증후군뿐만 아니라 다양한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두통, 소화불량, 체력과 집중력의 저하, 잦은 감기와 목이나 가슴의 답답함, 환절기 비염과 코막힘, 목과 어깨, 허리의 통증, 생리불순과 생리전증후군, 시험불안증과 불면증을 공통적으로 앓고 있다. 


 사실 나도 이런 증상들을 두루 가지고 있었다. 몸 컨디션에 따라, 계절에 따라,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증상들이 나타나고 심해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이런 증상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성인이 되어 수능과 같은 큰 시험을 준비할 때마다 증상들이 재발했다. 증상이 너무 심할 때는 아예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날이 반복되는 날이면 시험을 포기하고 싶었다.


 시험만 끝나면 없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한의대에 다니면서도 증상들은 없어지지 않았다. 양약을 먹으면 증상이 조금 완화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그래서 내 몸을 스스로 치료하기로 결심했다. 동의보감을 공부하고 다양한 한의학 서적을 찾아보면서 증상의 원인을 알게 되었고, 치료를 통해 큰 효과를 경험했다. 이후 한의원에서 수험생들을 치료하면서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수많은 데이터가 쌓이다 보니 수험생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마치 직장인들이 앓고 있는 직업병과 비슷했다. 비슷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반복적인 작업과 나쁜 자세,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 쉬지 않고 일하면서 쌓이는 피로, 화학첨가물이 많이 들어간 음식, 급하게 먹는 식습관, 운동부족 등으로 비슷한 질병에 시달리기 쉽다. 이를 직업병이라 부른다. 수험생들도 직장인과 비슷한 생활패턴을 가지고 있고 이에 따른 공통적인 증상들을 보인다. 그래서 나는 수험생이 가지는 특징적인 질병이란 뜻으로 ‘수험생직업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수험생 직업병에 걸렸다면 공부와 성적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 견딜만하다고 내버려두거나 시험이 끝나면 좋아질 거라 생각하면 나중에 후회할 수 있다. 수험생 직업병은 잠복되어 있다가 취업시즌이 되거나 공무원시험, 임용고시, 변호사시험 등 큰 시험을 치를 때 재발한다. 그리고 성인병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수험생 직업병은 반드시 치료를 해주어야 한다. 당장의 공부와 성적을 위해서도 그렇고, 아이의 성인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수험생의 건강에 대해 간과하는 부모가 많다. 의지만 있으면 되고, 좋은 학원만 다니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공부는 건강의 바탕 없이는 절대로 잘 할 수 없다. 정신력도 건강한 신체에서 나온다. 아무리 좋은 공부방법을 배웠어도 몸이 안따라주면 의미가 없다. 공부가 가장 쉬었다는 사람은 막노동으로 단련된 몸을 가지고 있었고, 1년만에 꼴등에서 1등한 아이들은 운동선수 출신이었다. 중학교 때 싸움만 하다가 고등학교 때 마음잡고 공부해서 서울대 간 아이도 있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신체적으로 매우 강인했다는 점이다. 우리 아이가 이 정도 체력이 아니라면 건강부터 살펴야 한다.


 진료실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면 시험을 준비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공부를 잘하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줄 때의 답답함과 짜증, 그리고 이어지는 무력감과 우울함, 이렇게 가다간 시험을 망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 우리 아이들도 이런 마음일 것이다.


수험생 직업병, 치료하면 나을 수 있다.

수험생 직업병만 치료해도 아이의 성적은 올라간다.


기억하자.

아파도 공부할 수 있다, 그러나 잘할 수는 없다.

작가의 이전글 공진단 아무때나 먹는 것이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