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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돌이한의사 Oct 09. 2021

공진단 아무때나 먹는 것이 아니다

공부하다 생긴 병 (#수험생직업병)

 한의대 6년을 마치면 한의사 면허를 따기 위해 국가고시를 본다. 1년에 한 번 시험을 보기 때문에 떨어지면 하염없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합격률이 높다 하더라도 절대 안심할 수 없다. 본과 4학년 1학기가 끝나고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모두들 도서관에 틀어박혀 본격적으로 한의사 국가고시를 준비한다. 2학기부터는 매달 모의고사를 보면서 실력을 점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다.


 첫 번째 모의고사를 보는 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3교시가 되니 갑자기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잠을 쫓으려 해도 잠귀신이 눈에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비몽사몽 헤매다 보니 3교시가 다 지나갔고 시험을 망쳐버렸다.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랬겠거니 했는데 웬걸, 다음 모의고사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 다음 모의고사도 마찬가지였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국가고시가 코앞인데 혹시나 시험 보다 졸면 낭패다 싶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에 공진단이 떠올랐다. 한의학 수업시간에도 배우고 선배들한테도 많이 들었다. 예전에 황제만 먹을 수 있었던 아주 좋은 약이라고. 당시 은행에서 대출받아 학비와 생활비로 쓰면서 근근이 버티던 시절이라 공진단은 나에게 그림의 떡이었다. 그러나 시험이 코앞이라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부랴부랴 공진단 2환을 샀다. 모의고사 때 한번 테스트해보고 괜찮으면 국시 때도 먹어보리라 생각했다. 


 모의고사 날 아침에 1환을 먹어보았다. 뭔가 평소보다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았지만 확실하진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나서 3교시 시험 보기 전에 1환을 더 먹었다. 


‘어, 잠이 안 오네? 괜찮은데?’ 


 3교시만 되면 달라붙던 잠귀신이 사라졌다. 모의고사 볼 때마다 식곤증 때문에 걱정이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맑은 머리로 시험을 치르니 당연히 점수도 잘 나왔다. 이거다 싶었다. 이후로 1번 더 테스트했는데 또 효과가 있었다. 신기했다.


 국가고시 보는 날 아침에 혹시 몰라 청심환도 준비했다. 너무 긴장되거나 떨릴 때 먹으려고 준비했는데 다행히 그렇게 긴장되지는 않았다. 모의고사 때처럼 아침에 공진단 1환을 먹고 3교시 때도 1환을 먹었다. 역시나 괜찮았다. 잠도 오지 않았고 체력적으로도 끝까지 버틸만했다. 공진단 먹길 잘했다. 


 공진단에는 4가지 약재가 들어간다. 녹용, 당귀, 산수유, 사향이다. 


 한의학에서 녹용은 정혈과 골수를 보충해 주는 가장 좋은 한약재다. 정혈은 에너지와 혈액의 원료이고, 골수는 뼈와 관절의 원료다. 따라서 체력이 약하거나 뼈 성장이 느린 아이들에게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또한, 당귀는 혈액을 보충하는 대표 한약재이고 산수유는 수렴하는 성질이 있어 몸 속 영양분과 진액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사향은 사향노루의 향인데, 사향노루의 향주머니에 들어있는 향분비물이다. 짝짓기 철이 되면 수컷 사향노루의 향주머니에서 향이 멀리까지 뻗어나가 암컷을 유혹하는데 쓰인다. 이러한 사향의 특성은 인체 내에서도 동일하게 작용한다. 


 사향은 개규성뇌開竅醒腦 작용이 있는데, 개규開竅는 인체의 구멍을 열어준다는 뜻이고 성뇌醒腦는 뇌를 깨운다는 뜻이다. 인체의 구멍에는 눈, 코, 입, 귀, 항문, 요도, 땀구멍 등이 있다. 이러한 구멍은 인체와 주위 환경을 소통시켜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구멍들이 막히면 치명적인 문제가 생긴다. 눈이 막히면 볼 수가 없고, 코가 막히면 숨을 쉴 수가 없고, 입이 막히면 먹을 수가 없고, 귀가 막히면 들을 수가 없고, 항문이 막히면 대변을 볼 수가 없고, 요도가 막히면 소변을 볼 수가 없으며, 땀구멍이 막히면 온도 조절이 되지 않는다. 이런 증상은 중풍에서 볼 수 있는데 선조들은 사향의 개규開竅 작용을 이용해 중풍을 치료했다.


 사향은 또한 뇌를 깨우는 효과가 있다. 논문[1]을 보면 사향의 무스콘muscone 성분은 뇌혈관장벽Brain Blood Barrier[2]에 작용하여 다른 약물이 뇌로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 다른 논문[3]에는 공진단이 치매환자의 인지 기능을 향상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실려있다. 사향이 가진 성뇌醒腦 작용을 통해 공진단의 유효성분이 뇌에 공급되고 뇌 기능이 활성화되는 것이다. 


 방약합편[4]에 보면 공진단에 사향 대신 침향이나 목향을 써도 된다고 쓰여있다. 사향이 없으면 향이 짙은 약재로 대체해서 쓰라는 말이다. 진한 박하 향을 맡으면 코가 뻥 뚫리고 머리가 맑아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향이 있는 약재들은 대체로 인체의 구멍을 열고 외부와 소통을 시켜준다. 이런 이유로 사향을 구하기 힘들면 목향이나 침향으로 쓰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약효가 같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침향이나 목향에는 성뇌작용이 없다. 뇌혈관장벽을 열어주는 성분인 무스콘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중력이나 인지 기능을 향상시키려면 사향이 들어간 공진단을 먹어야 한다. 문제는 사향이 목향이나 침향보다 수백 배 비싸다는 점이다. 사향이 워낙 구하기 힘들고 고가이다보니 가짜 사향도 유통된다. 사향노루가 아닌 사향고양이나 사향쥐의 향분비물을 사용한다거나 정식 통관을 거치지 않은 정체불명의 사향이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라면 차라리 목향이나 침향을 쓰는 것이 낫다.


 우리 한의원의 공진단은 정품 사향만을 넣어서 만든다. 정품 인증이 된 사향은 밀폐용기에 담겨 봉인이 된 상태로 검사성적서와 함께 한의원에 들어온다. 진품임을 정부가 인증해 주기 때문에 믿고 쓸 수 있다. 공진단을 만들기 전에 봉인이 뜯긴 흔적은 없는지 눈으로 꼼꼼히 확인하고 봉인도 직접 제거한다. 병에 들어있는 사향은 한 톨도 흘리지 않고 써야 한다. 워낙 고가이기 때문이다. 흔히 녹용이나 인삼이 고가라고 생각하지만 사향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사향이 들어갔다고 하는데 공진단 가격이 너무 저렴하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사향은 시중에서 구하기도 어렵고 워낙 고가이기 때문에 사향이 들어간 공진단은 비싸다.


 공진단은 옛날 중국 황제에게 진상했던 약이다. 생각해 보자. 황제에게 바치는 약이 부작용이 있거나 효과가 없다면 그 한의사는 어떻게 될까? 황제에게 드린다는 건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다. 그만큼 약효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만약 아이가 체력과 집중력이 떨어져 걱정이거나, 공진단을 먹였는데 효과가 미진하다면 믿을만한 한의원에서 정품 사향이 들어간 공진단으로 처방받을 것을 추천한다. 


 지금도 머리를 많이 써야할 일이 있거나 체력이 많이 필요할 때 공진단을 만들어 먹는다. 총명탕 성분을 더한 공진단이다.



          


[1] 줄기세포분화촉진을 위한 한약재의 뇌혈관장벽 투과 연구 현황, 辽宁中医杂志, 2016

[2] 뇌를 보호하기 위해 혈액을 선택적으로 투과시키는 혈관 구조. 세균이나 병원체, 약물 등 뇌에 위험이 될만한 성분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한다.

[3] 「공진단이 알츠하이머형 치매환자에게 미치는 영향」, 동의신경정신과학회지, 2004

[4] 조선시대 고종 21년 의학자 황도연의 유언에 따라 아들인 황필수가 간행한 의서로 한약처방을 쉽게 찾아 쓸 수 있도록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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