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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돌이한의사 Oct 02. 2021

꾀병일까, 진짜 아픈 걸까

공부하다 생긴 병 (#수험생직업병)

 누구나 어릴 적 꾀병을 앓은 적이 있을 것이다. 조금 아픈데 학교가 가기 싫어 많이 아프다고 부모님을 속이기도 하고, 다 나았는데 다 안 나은 것처럼 해서 그날 학원을 건너뛰기도 한다. 


 다음의 시를 보면서 그때의 추억이 떠올려보자.


이승하 시인의 ‘내 영혼을 움직인 시’ (301)

꾀병 추억이 있나요? - 주하의 ‘어떡하지’


<어떡하지> 


자다가 설풋

머리만 깼다


등 뒤에서

통닭 먹는 소리가 들린다


―오빠도 깨울까

동생이 말했다


―학원 가기 싫어 아프다며 잠들었는데 나둬라

엄마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나서

아무런 말이 없다


통닭 먹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어떡하지


 제 꾀에 제가 걸려 넘어진 너무 웃픈 상황이다. 학원에 가기 싫어 아프다 하고 잠든 척 누워있는데 등뒤에서 가족들이 치킨을 맛있게 먹고 있을 때,  그 기분은 상상하기도 싫다. 


 성인도 꾀병을 부린다. 바로 월요병이다. 월요병은 직장인이 월요일만 되면 이상하게 피곤하고 여기저기 아프고 기분이 우울해진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도 예전에 직장 다닐 때 월요병을 자주 앓았다. 토요일이 되면 다음날 쉬니 밤늦게까지 이것저것 먹고 영화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새벽에 자곤 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면 벌써 일요일 점심. 내일 아침 일찍 회사에 갈 생각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제 야식을 많이 해서 그런 건지 기분이 안 좋아서 그런 건지 이상하게 소화도 안되고 머리도 아프고, 운동도 안 했는데 괜히 여기저기 아프고 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월요병 증상이 안 나타났다. 그 날은 월요일인데도 기분이 상쾌하고 아픈 데가 없다. 대신 화요일에 아프다. 그런 걸 보면 월요병은 꾀병이 맞는 듯 하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입사 후 건강이 나빠졌다고 한다. 질병 1위는 자세에 따른 목, 어깨, 허리의 통증이고, 뒤를 이어 장시간 컴퓨터 사용으로 인한 안구건조증,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한 피로, 불규칙한 식습관으로 인한 급격한 체중변화, 운동 및 휴식 부족으로 인한 체력저하가 나왔다. 


 업무량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받는 심리적인 부담감이나 회사동료와의 스트레스 등도 건강을 악화시키는 요인이다.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가 반복되다 보면 번아웃증후군과 같은 무서운 병이 생기기도 한다. 


인터넷에 번아웃증후군을 검색해보면 주요 증상이 다음과 같다.(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1.    기력이 없고 쇠약해진 느낌이 든다.

2.    쉽게 짜증이 나고 노여움이 솟는다.

3.    하는 일이 부질없어 보이다가도 오히려 열성적으로 업무에 충실한 모순적인 상태가 지속되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급속도로 무너져 내린다.

4.    만성적으로 감기, 요통, 두통과 같은 질환에 시달린다.

5.    감정의 소진이 심해 ‘우울하다’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에너지 고갈 상태를 보인다.


 번아웃(burn out)은 직역하면 ‘불타서 없어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말로 하면 소진이나 탈진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너무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어느 날 심리적, 육체적 체력이 고갈되어 무기력해지고 가라앉아 버리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병은 병원에서 검사해도 아무런 이상이 나오지 않는다. 


 수험생들은 직장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공부에 쏟아 붓고 있고 입시경쟁으로 인해 극심한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이고 있다. 아이들을 보면 야자에 학원에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쉬지 않고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고, 주말에도 쉬지도 못하고 학원과 독서실에 가서 공부한다. 직장인들은 퇴근하면 쉴 수도 있고 주말에 놀러 가서 주중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 수도 있는데 우리 아이들은 매일매일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 이상 강행군이다. 스케줄을 들어보면 번아웃되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런데 혹시,

우리 아이도 지금 번아웃되기 직전인 건 아닐까?

꾀병인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중병이라면?


 기분이 우울하거나 답답할 때처럼 심리적으로 힘들 때 몸도 같이 아픈 경우가 많다. 정말 아파서 참다참다 병원에 갔는데 검사해도 이상이 없다고 나오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기 시작한다. 공부하기 싫으니까, 일하기 싫으니까 꾀병 부린다고 여긴다. 이럴 때 정말 미치고 답답할 노릇이다. 진짜 아픈데도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치료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더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진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시험 볼 때만 되면 배가 살살 아팠다. 배만 아프고 만 것이 아니라 화장실에 가서 설사를 해야만 했다. 시험시간에 늦으면 안되기 때문에 화장실을 앉아있어도 편하게 볼 일을 볼 수가 없었다. 급하게 뛰어다니느라 숨은 차고 마음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볼일을 보고 나면 통증은 사라졌지만 기운이 쏙 빠졌다. 그럴 때마다 시험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시험기간만 지나면 신기하게도 그 증상이 싹 사라졌다. 시험기간에는 되게 불편한데 평소에는 괜찮으니 내가 봐도 꾀병 같았다. 그러다 보니 누구한테 말하기도 그래서 꾹 참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는 병이었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의 원인을 단순히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트레스를 안받을 때는 증상이 안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한테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혹은 의지를 강조하고 생각을 바꾸라고 한다. 그건 어른들도 잘 못하는 일인데 아이들이 과연 가능할까?


 학년이 높아질수록, 수능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시험 스트레스는 점점 커진다. 당장 증상이 없다고 방치하거나 심리적인 부분만 강조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배가 아프면 돌이킬 수 없다. 그런 생각은 폭탄을 안고 있으면서 시험이 끝날 때까지 터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게다가 그런 일들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트라우마가 되어서 치료하기 더 어려워진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꾀병은 단순히 심리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님이 밝혀졌다. 뇌에서 내장과 온몸 구석구석까지 뻗어나간 기다란 신경이 있는데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그 신호가 뇌에서 이 신경을 통해 온몸으로 전파되면서 실제로 통증을 느끼게 된다. 특히 건강이 안 좋을 때 증상은 더 심해진다.


 꾀병은 일시적이다. 스스로 꾀병이라는 걸 알고 있다. 공부의 적이지만 몸에는 안전하다. 하지만 실제로 아픈 것을 꾀병이라고 착각하면 병이 진행되어 중병이 된다. 


 아인슈타인이 그랬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도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건 미친 짓이라고. 우리 아이가 시험 때마다 배가 아픈데 다음 시험에서 안 아프길 바라는 것도 미친 짓 아닐까.


 치료해서 나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억지로 참으면서 불안해하거나 걱정하는 것은 어리석다. 공부에 집중하는 시간도 모자란 판에 아플까 봐 걱정하면서 시간을 소모한다면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시험에 방해가 되는 게 있다면 빨리 해결해주자. 그래야 우리 아이가 시험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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