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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돌이한의사 Sep 16. 2021

결심을 해도 안되는 이유

공부하다 생긴 병 (수험생직업병)


 “엄마, 저 서울대 가기로 결심했어요.”


 꿈에서라도 이런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예능 프로그램을 보지 않아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할 것이다. 당장 우리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을 사러 부리나케 장을 보러 가고, 나도 모르게 주위에 자랑을 할지도 모른다.


 “글쎄, 우리 아이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서울대를 가겠다고 그러지 뭐야~”


 하지만 자랑은 잠시 접어두자. 내일이 되면 아이 생각이 또 바뀔지 모르니까.


 많은 아이들이 새 학기가 되면 열심히 해야겠다 결심을 하고 의지를 불태운다. ‘이제부터 진짜 마음잡고 공부해야지’ 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때 그 마음은 진심이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한 두 번이면 믿어주겠는데, 매번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결심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의심부터 간다. 이제는 말도 곱게 안 나온다. 


 “니가 서울대 가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도대체 우리 아이는 왜 결심만 하다 끝날까. 

 말과 행동이 왜 이리 다를까. 


 이유를 알기 전에 우선 결심의 정의부터 살펴보자.


 결심決心 : 할 일에 대하여 어떻게 하기로 마음을 굳게 정함. 또는 그런 마음.


 그렇다. 결심은 어떤 일에 대해 어떻게 하기로 마음을 굳게 먹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서울대 가기로 결심했으면 열심히 공부하겠다 마음을 굳게 먹은 것이다. 내가 살을 빼기로 결심했으면 열심히 운동하고 식단을 조절하겠다 마음을 굳게 먹은 것이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결심이라는 단어의 뜻에는 행동이 달라진다는 말이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은 진실을 말한 것이다. 결심한다고 했지 실천을 하겠다고 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결심을 하는 순간, 공교롭게도 재밌는 유튜브 영상이 눈에 들어오고, 친한 친구의 카톡 알람이 울린다. 주말 약속이 잡히고, 공짜로 식사할 기회가 생긴다. 이런 상황이 되면 마음 속에서 갈등이 생긴다. 하고 싶은 마음과 하기 싫은 마음이 다투기 시작한다. 그런데 대부분 하기 싫은 마음이 이긴다. 결심은 했지만 실행까지 이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후회한다. 이렇게 결심과 후회가 반복되면 자포자기하게 된다. 주변 사람들도 더 이상 기대를 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면서 자존감도 떨어진다. 어느 순간부터는 결심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자전거를 배울 때를 생각해보자. 처음에 자전거를 배울 때는 타고 넘어지기를 반복한다. 넘어지면서 무릎도 까지고 또 넘어질까 겁도 나지만 계속해서 타다보면 어느 순간 잘 타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어떻게 자전거를 타는지 의식하지 않는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몸이 알아서 잘 타고 있다. 처음에는 팔 다리를 어떻게 할지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이제는 자전거를 타면서 여유롭게 다른 생각도 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타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편한 일상이 된다. 


 이렇게 무의식이 지배하는 상태가 되면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되고 몸과 마음이 이완된다. 수백번~수천번 자전거 연습을 하면서 얻어진 데이터가 뇌에 저장되었다가 자전거를 타는 순간 자동적으로 나오기 때문에 따로 신경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무의식 속에서는 마치 조건반사처럼 특정 상황에서 특정 생각이나 행동이 툭 튀어나오게 된다. 이런 무의식적인 행동은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한 번 습관이 생기면 우리 뇌는 잘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무의식적인 행동에는 단점도 있다. 무의식이 지배하면 별 생각없이 하던대로 하고 습관대로 하게 된다. 결심을 한다는 건 기존의 습관을 다른 습관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공부를 안 하던 습관에서 공부를 하는 습관으로, 살이 찌는 습관에서 살이 빠지는 습관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기존의 습관을 바꾸려하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뇌는 이런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뇌는 결심에 저항한다. 그 결심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해도 말이다.


 단군신화에 보면 곰이 쑥과 마늘만 먹고 100일을 버텼더니 사람이 되었다. 우리 어머님들도 새벽마다 정한수 한사발을 떠놓고 자식 잘 되게 해달라고 100일간 빌었다. 종교단체에서도 소원을 빌 때 100일 기도를 드린다. 


그런데 왜 하필 100일일까? 


 100일이라는 기간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건 바로 습관이 변하는 시간이다. 의식적으로 100일간 행동하면 그 때부터는 내가 원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다. 예체능을 해보면 알 수 있다. 악기도 3개월은 해야 소리다운 소리가 나고, 운동도 3개월은 해야 폼이 난다. 무의식 중에 좋은 습관이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면 그때부터는 쉽다. 처음처럼 힘들지 않고 자연스러워진다. 그렇게 3년 정도 하면 내공이 쌓이고 아마추어에서 벗어난다. 


 치료도 똑같다. 기존의 약한 몸이 치료를 통해 건강한 몸으로 변해야 된다. 즉, 체질이 변해야 한다는 말이다. 진료를 해보면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 최소 3개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하다. 이는 몸이 변하기 위한 최소한의 시간이다. 그렇게 치료가 끝나고 3년간 철저히 관리하면 재발하지 않는다. 건강습관이 몸에 배였기 때문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100일만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 수 있다면 이후는 쉽다. 공부 습관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3년을 계속 한다면 공부에 감이 생긴다.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고 성적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다.


 나는 공부습관을 만들기 위해 환경을 바꿨다. 우선 공부를 방해하는 것들을 최소화했다. 핸드폰의 게임을 지우고, 카톡 알람을 껐다. 그리고 딴짓하기 어려운 곳을 찾아갔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도서관이나 학원 강의실이 딴짓을 할 수 없어 자주 이용했다. 씻고 옷입고 이동하는 시간을 아끼면 더 공부할 수 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집에 있으면 딴짓하다가 공부 몇 시간 못한다. 그보다 낯선 환경이 공부에 집중하기에 훨씬 효과적이다. 처음에는 일어나기도 힘들고 밖에 나가기도 귀찮았지만 꾸역꾸역 하다보니 습관이 되었고 나중에는 알람 없이도 일어나고 밖에 나가는 것도 편하게 느껴졌다. 


 작심삼일作心三日 이라는 속담이 있다. 마음을 먹어도 3일을 못간다는 뜻으로 습관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3일만 가도 대단한 것이다. 의식적으로 3일간 기존의 습관을 바꿔왔다는 것이니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루도 못가는 사람이 훨씬 많다.


 작심‘삼일’을 반복하라. 아니 작심‘일일’을 반복하라. 


 하루만 습관을 바꿔도 그날은 성공한 것이다. 다음날 안되면 다시 결심하고 하루만 성공하면 된다. 그렇게 격일로 성공해도 1년간 차곡차곡 쌓이면 180일이고 6개월이다. 기존의 습관을 1년의 절반이나 바꿨다면 대성공이다.


 아이가 하루라도 노력했다면 이제부터 비난하기보다 마음껏 칭찬해주자. 우리도 살면서 습관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수없이 겪어보지 않았나. 우리 아이는 하루동안 바위처럼 단단한 습관의 벽을 허물려 했고 강력한 무의식의 조종을 이겨냈다. 


아이가 결심하고 삼일간 변했다면 파티를 열어주자. 

작심삼일을 습관으로 만들면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다.


부모의 칭찬도 한 번하고 그치면 안된다.

칭찬도 습관을 들여야한다.

오늘부터 부모도 칭찬의 작심삼일을 반복하자. 


기억하자.

모든 위대한 업적은 하루의 변화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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