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돌이한의사 Sep 25. 2021

공부 유전자 vs 노력 유전자

공부하다 생긴 병 (#수험생직업병)

 한창 재미있게 마음 공부를 하던 때였다. 마음 공부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께서 제천에서 한방치유센터를 운영하셨기 때문에 종종 놀러 가곤 했다. 그곳에 가면 사모님께서 맛있는 약선요리도 해주시고 낙엽이 쌓인 산책로를 거닐면서 명상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당시 그곳에 명리학을 깊이 공부하신 분이 계셨는데 사주와 심리학을 접목시켜 상담을 해주셔서 흥미롭게 들었다.


 내 사주는 역마살이 많은 사주라고 했다. 운명의 기둥이 되는 4개의 글자가 서로 충돌하기 때문에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는 것이다. 좋은 말로 하면 다양한 시도와 도전을 하는 운명이라는 거고, 나쁜 말로 하면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듣다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어릴 적 이사도 자주 했고, 커서는 대학도 2번 다니고, 회사도 이직하고, 직업도 완전히 바뀌고, 돌이켜보니 살면서 큰 변화가 많았다. 나는 평범하다 생각했는데 남들과 비교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그 동안 사주를 믿지 않았다. 사주가 단순히 점을 치는 미신이라는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공부를 해보니 명리학은 한 사람의 삶의 경향성을 관찰하는 통계학의 일종이었다. 태어날 시점의 천체의 배열, 조부모와 부모의 성향이나 체질 등을 통해 한 사람이 어떤 성향이나 체질을 가지는지에 대한 연구 데이터를 모은 것이다. 실제로 임상에서 진찰이 어려운 어린 아이들의 경우 사주에서 체질에 대한 힌트를 얻기도 한다. 이를 바탕으로 약점을 보완하고 강점을 강화시킨다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으니 참고할 만 하다. 


명리학을 알려주신 선생님께 물었다.


“운명은 정해져 있는 건가요?”


그러자, 인상적인 대답을 해주셨다.


 “운명의 뜻을 아시나요? 운運자는 운영하다라는 뜻이고, 명命자는 하늘로부터 받은 사명을 뜻합니다. 풀이하면 하늘에서 부여한 사명을 이루기 위해 내 삶을 적극적으로 운영해가는 것이 운명이라는 것이지요. 누구나 타고난 명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명을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삶의 결과가 달라집니다. 명리학을 공부해보니 인생에서 운과 명이 미치는 영향은 타고난 것이 30%, 개척하는 것이 70%인 것 같습니다.”


 무릎을 탁치게 하는 말씀이었다. 내가 하늘로부터 받은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삶을 운영하고 개척해 나가는 가다. 아무리 좋은 재능을 타고 났어도 그 재능을 꽃피우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운명은 그를 단호히 거부할 것이다.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타고난 음색과 가창력을 지닌 참가자가 한 명씩 나타난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관객과 심사위원들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공부도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천재적인 아이들이 있다. 이런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확실히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이 친구들이 노력까지 한다면 상위 1%는 이들의 몫이라고 봐야 한다. 어쩔 수 없다. 토끼가 쉬지 않고 달리는데 거북이가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겠나. 하지만 다행인 건 나머지 99%의 아이들은 다 거북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노력하면 된다. 쉬지 않고 노력하면 노는 토끼들까지 따라 잡을 수 있다.


 과외를 가르쳤던 아이들 대부분은 평범한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여러 번 설명해줘도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아이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문제를 어떻게든 풀어보려 했다. 의지가 있고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해서 나도 열심히 가르쳤다.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했기에 아이들이 해이해질 때면 흔들리지 않게 혼도 많이 냈지만, 아이들이 슬럼프에 빠지면 격려도 해주었고, 체력이 떨어진 아이들에겐 한약을 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1년, 2년을 열심히 노력한 아이들 중에 5~6등급에서 1~2등급으로 올라간 아이들이 많았다. 


 에디슨이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땀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내 경험상으로도 성적이 머리가 미치는 영향은 1%이고 노력이 미치는 영향이 99%인 것 같다. 아무리 머리가 좋아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시험 문제를 풀 수 없다. 머리가 좋다는 건 단지 남들이 100번 볼 때 나는 99번 봐도 된다는 뜻이지 공부를 안 해도 성적이 나온다는 뜻은 아니다. 그럼에도 본인의 머리만 믿고 노력을 안 하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저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데요.” 


 아이들은 자기는 머리가 나빠서 노력해도 안 된다며 핑계를 댄다. 물론 정말 공부머리가 없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가르쳐 본 모든 아이들은 머리가 부족한 게 아니라 노력이 부족했다. 아이들은 학원 다니고 과외하고 선생님이 내준 숙제를 하는 것으로 노력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다른 애들도 그 정도는 한다. 남들과 똑같이 하기 때문에 티가 안 나는 것이다. 진짜 노력하는 사람은 밥 먹는 시간도 줄이고 자는 시간도 아껴가며 공부한다. 게임 매니아들이 게임에 빠져 식음을 전폐하고 밤을 새우는 것처럼 공부에 몰입한다. 하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그 정도까지 하지 않는다.


 나는 한의대에 들어가기 위해 아침 6시부터 밤 11시까지 공부했다. 식사시간과 휴식시간, 이동시간을 최대한 줄이며 공부에 투자했다. 그래도 시간이 부족했다. 수능까지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3개월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고 그에 따른 결과를 얻었다. 만약 남들처럼 공부했다면 어땠을까. 힘들면 쉬고 피곤하면 자면서 쉬엄쉬엄 공부했다면 절대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나 노력의 최대치를 끌어내면 성적향상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절박함이 필요하다. 나는 당시 회사를 그만둔 상황이었고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에 서 있는 심정이었다. 여기서 실패하면 1년이란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들어갈 생활비며 학원비를 생각하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각오로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것이다. 


 수능 준비를 하면서 많이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 공부가 안 되는 날들이었다. 어떤 날은 두통이 심해서 공부가 안 되었고, 또 어떤 날은 체해서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환절기에는 비염 때문에 주위에 민폐를 끼치고 도서관을 나와야 했고, 너무 피곤한 날은 다음날 아침에 눈이 안 떠져 오전을 통째로 날려 먹기도 했다. 점심만 먹고 나면 졸음이 쏟아졌고 그러면 오후에 집중이 안돼 너무 힘들었다. 


 아픈 날이면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의지와 상관없었다. ‘이렇게 아프지 않았다면 훨씬 더 많이 공부할 수 있었을 테고, 성적도 훨씬 더 잘 나왔을 텐데’ 아쉬움이 컸다. 아무리 공부머리를 타고났어도 아프면 끝이고, 간절한 의지가 있어도 체력이 없으면 노력에 한계가 있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우리 아이가 의지도 있고 노력도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성적이 안 나온다면 의심해봐야 한다. 숨겨진 질병이 있는 건 아닌지, 혹은 체력이 떨어진 건 아닌지.


 선천적으로 타고난 체력은 30%에 불과하고 남은 70%는 후천적으로 관리하고 키울 수 있다. 한의학을 알지 못할 때는 허약한 체력을 타고난 운명이라 여겼다. 그래서 건강관리와 체력관리를 소홀히 했다. 하지만, 많은 수험생들을 치료하고 아이들이 성과를 내는 걸 보면서 체력도 충분히 키울 수 있고 강화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자, 이제 우리 아이의 성적을 운명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컨트롤 할 것인가.


 비록 건강하게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컨트롤할 수 있는 70%에 집중한다면 우리 아이가 가진 최대치를 뽑아낼 수 있다. 그러면 운명의 여신도 마지막에 우리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결심을 해도 안되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