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동안 돈미새가 되어봤다
1)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주말만이 인생이 된다 (진짜 그럴까?)
나는 회사에 가기 전까지만 해도 지나치게 이상주의자였다. 가장 좋아했던 카피가 '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주말만이 인생이 된다'는 리크루트 사의 광고였으니까. 박봉이어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급여도 상관없고 조건도 상관없고 카피라이터만 시켜달라고 하니 신기하게도 소위 말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박봉보다는 조금 더 좋은 조건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시켜만 준다면 영혼을 바쳐서 열심히 해내야지' 카피라이터 취준할 때의 마음가짐이었다. 우습게도 '잘해내야 한다'는 스스로에게 주는 압박감은 내 영혼을 서서히 갉아먹었다. 되고 싶은 모습과 지금 내 모습간의 간극이 너무 커서 매일의 행복을 느낄 새가 없었다. '누군가의 꿈'이라는 이 자리가 부담스럽게만 느껴졌다.
매일 출근해서 내 몫을 해내지 못하는 것, 이어지는 아이디어 회의,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 '공채라면서 알고 보니 별거 아니네'라는 듯한 눈빛. 다른 사람들보다 뒤쳐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팀장님의 피드백. 잘하라는 무언의 압박과 대놓고의 목소리. 밤을 새도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아서 엉엉 울면서 새벽 출근을 하고, 주말과 평일 밤에는 늘 노트북을 들고 카페를 찾았다.
2) 벼랑 끝에 서있던 마음을 부여잡고 출근했던 날들
어느 날 아침, 처음으로 '회사에 가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낫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에서는 상담을 받는 도중 자살하지 않겠다는 '자살방지 서약서'를 작성했다. 회의가 있는 날이면 너무 불안감이 심해져서 심호흡이 어려웠고 제대로 된 판단이 서질 않았다. 신경정신과에서 불안장애 약을 처방받아서 먹었다. 불안감이 심해질 때 한 알을 먹으면 20분 내에 진정시켜주는 약이었다. 어떤 기록이나 외부의 시선을 신경쓸 새도 없었다. 내가 병원에 가고 상담을 받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회의에 들어가기 전 약을 챙겨먹었다. 마음이 정말 벼랑 끝에 서있었다. 그게 만 1년차가 되었을 때의 나의 모습이었다.
마음이 아파서 피를 철철 흘리는 날에도 매일 회사를 가고 회의를 하고 점심도 저녁도 먹었다. 2년이나 준비해서 힘들게 합격한 회사라 쉽게 그만둘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에도 시간이 흘러 부서를 옮겼고 팀 구성원이 바뀌면서 불안하던 마음은 조금씩 나아졌다. 처음으로 칭찬을 받아봐서 참 낯설었던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일은 항상 많았고, 회사의 속도를 따라가기가 숨이 찼다. 그러던 중 받았던 건강검진에서 '수술을 해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위급한 병은 아니었으나 수술을 미뤄서 좋을 것은 없는 상황. 바뀐 팀의 분들은 회사보다 개인을 진심으로 우선하는 분들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망설이던 나에게 내 건강부터 생각하라는 말을 해주셨다. 신기하게도 수술 확정 소식을 들었을때 걱정되는 마음보다는 안심이 되었다. '드디어 내게 회사를 쉴 수 있는 합리적인 이유'가 생겼다는 생각에.
*되돌아보면 회사생활에서 감사했던 분들이 더 많았고,그래서 4년이라는 시간동안 회사생활을 하며 다시 회복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나 두번의 병가를 견뎌준 사수와 아무것도 쓸 줄 아는 게 없던 카피라이터 조무래기 시절에도 늘 방패막이가 되주었던 사수 두분께 더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네요. 아니 이렇게 쓰려면 끝이 없는 감사한 분들.
3) 자본주의 사회에서 웰니스의 끝판왕은 '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수술을 하고 일주일정도는 통증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건강을 정말로 잘 챙겨야지, 앞으로 다시는 수술을 하고싶지 않다는 마음. 그렇지만 그 후 남은 3주간의 병가의 시간은?
정말 평화로웠다. 알람 없이 일어나고, 시간 제한 없이 천천히 요리를 해 먹었다. 원없이 강아지와 산책을 하고 가족들과 수다를 떨었다. 이 삶의 속도가 마음에 들었다. 다시 회사라는 급류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돌아가지 않을 방법을 3주동안 고심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결국 '돈'이라는 거였다. 좋아하는 일을 나의 속도로 하기 위해서는 회사를 그만둘 돈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모든 걸 내려놓고 부동산 투자를 배우기 시작했다. 소소한 웰니스들을 다 내려놓았다. 그리고 크고 확실한 안도를 얻고자 했다.
투자를 위한 시드머니를 최대한 빨리 모아야했다. 그래야 나의 퇴사도 앞당길 수 있을테니까.
한달에 쓸 돈을 20만원으로 정했다.미용실에 가지 않고 혼자서 가위로 머리를 단발로 잘랐다.
그렇게 좋아하던 내 취향의 소품과 옷을 사지 않기 위해 어플을 다 지웠다. 매일 비슷한 옷만 입었다. 앱테크를 위한 어플을 다운받았다. 집에 있는 화장품만 발랐다. 스킨 로션만 간신히 찍어바르며 출근했다. 데이트때는 도시락을 싸서 나갔다. 그렇지 못한 날에는 분식집에 갔다. PT를 받는 것도 식단관리도 상담도 명상도 다 사치라고 생각했다. 소소한 행복은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나에게는 회사를 그만두는 것만이 크고 확실한 행복이었으니까.
6개월동안 부동산 투자를 공부하며, 한 달에 하나씩 지역분석보고서를 써내려갔다. 주말이면 3-4만보를 걸으며 임장하고, 다시 회사에 복귀한 뒤엔 회사 일에 쏟는 마음을 줄여보려고 했다. 회사일에 마음을 쏟지 않으니, 회사에 있는 시간이 점점 더 지루해져갔다. 좋아하는 걸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현실이 냉혹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것만이 나를 살릴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4) 어쩌다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을 유용한 도구 하나 획득
벼랑끝에 몰린 마음으로 투자라는 도구를 배웠다. 살면서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포기하고 하나에 몰입해보는 경험은 생각보다 많은 걸 나에게 남겼다. '나에게 정말 정말 포기하지 못할 중요한 건 무엇인지'도 부동산 투자자로서의 1년 반동안 깨달은 것 같다.
부동산 투자를 하며 배운 소중한 깨달음 세가지.
첫째, 내가 만족스럽게 살려면 몇백억이라는 돈이 필요한 게 아니다.
60세부터 일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때, 자녀까지 고려한 월 생활비를 400만원으로 측정했다. 그렇게 100세까지 살더라도 생활자금으로는 약 19억정도만이 필요했다. 아래 사진의 노후자금을 계산할 때만 하더라도 한남동이나 성수동의 고급 아파트에 살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은 그게 타인의 욕망이었음을 안다. 나는 강남 판교의 30평대의 아파트에 사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그러면 책정된 주거비용 역시 45억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 수 있다. 어찌됐든 내가 필요한 노후자금은 5-70억수준이다. 계속 더 많은 돈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일할 필요는 없다. 몇백억 몇천억원의 엑시트를 꿈꿀 필요도 없고 말이다. 객관적으로 나에게 얼마만큼의 돈이 있으면 행복한지를 아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야 뜬구름잡는 목표를 세우지 않을 가능성이 커진다.
둘째,이번 생은 망하지 않았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을 갖는 것의 중요성을 안다면.
투자와 자본주의 공부를 하면서, 이번 생은 망했다는 말을 쓰지 않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서 투자자들이 많이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지난 1년 반동안 모든 지인들을 투자자들로 채우면서 그들이 어떻게 재산을 불려나가는지 두 눈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얼마나 용기있고, 노력하고,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서 애쓰는지.
내가 직접적으로 아는 방법은, 아파트 전세 투자를 통한 시스템 구축이다. 이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 '이젠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든지 '생활터전인 주택을 투자로 보는 건 잘못되었다'든지. 불법적인 투자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투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자본주의에 살고 있는 우리가 자본을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전통적인 부를 축적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고, 아이디어가 번쩍이거나 사업수완이 좋은 사람이 아닌 평범한 사람도 자본주의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법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셋째, 바닥까지 떨어지더라도 10년안에 10억은 벌 수 있겠다.
투자를 위한 시드머니를 모으기 시작하고, 3년동안 1억이라는 돈을 모았다.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쉽게 모았다고 할 지 모르겠지만, 몇천만원이라도 스스로 아껴서 모아본 사람은 알것이다. 월 백만원, 이백만원을 모아서 몇천단위로 만드는 데 얼마나 큰 인내가 따르는지. 스스로의 구질구질함을 견뎌온 시간들을. 해낸 경험이 있기 때문에 다시 1억이라는 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투자할 수 있는 시드를 어떻게든 만들 수 있다면? 2년에, 3년에 한채씩 형편대로 투자를 해나가면서 10년안에 10억은 당연히 벌 수 있는 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산의 증식은 계단식이겠지만. 굳이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최저시급의 알바를 하더라도 그 돈을 아껴서 시드를 만들 수 있다면, 평생 살면서 30억정도는 돈을 마련할 수 있겠다. 돈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돈에 대한 불안을 해결하고 나니까, 더 중요한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5) 어차피 필요한만큼의 돈은 문제없이 벌 수 있다면, 그럼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돈에 대한 불안을 극복하는데 1년 반 정도가 걸렸다. 돈미새로 살아온 시간들이다. 그래서 이제는 장기적으로 봤을때 돈 때문에 불안하지는 않다. 어차피 필요한만큼의 돈은 문제없이 벌 수 있다면, 이젠 다른 부분에서 궁금한 점이 생겼다.
* 좋아하는 일을 내 방식대로 해서 돈을 벌 수 있을 것인가?
* 삶을 돈 말고 돈보다 더 중요한 경험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인가?
* 나만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뭘까?
그런 마음에서, 회사를 나와 브랜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회사에 남아있는 이유가 안정적인 월급밖에 없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삶을 더 다양한 경험으로 채우고 싶어졌기 때문에. 그리고 브랜드를 만들면서, 내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계속 고민한다. 아마 계속 마음이 같은 부분에서 걸려 넘어지는 것 보면 신은 나에게 이 일을 하라고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의 불행한 마음을 살피는 일. 특히 매일 견디며 출퇴근 하던 나 같은 사람을 도와주는 일.
"일단 우주가 당신의 고용주가 되면, 설사 다른 누군가가 당신의 급여를 깎는다고 해도 아주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wherever you go,There you are
https://www.allurekorea.com/2023/08/05/health-is-the-new-wealth/
* 웰니스의 8가지 영역에는 파이낸셜 경제적인 부분도 포함되더군요, 자본주의에 산다고 해서 웰니스의 끝판왕이 돈이 되는 건 아니지만, 반드시 챙겨야 하는 부분은 맞다고 생각합니다. 돈 관리와 재무계획을 회피하지 마시고 마주보는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