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형 서비스에서 욕망을 읽다
바야흐로 구독형 서비스의 시대이다. 음악은 물론이고 영화나 드라마, 스포츠 중계와 같은 영상도 구독형 서비스에 가입하여 즐기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라디오에 나오는 노래를 공테이프에 녹음하고 표지를 만들던 시절, 용돈이 생기면 카세트 테이프를 하나씩 사서 모으던 시절, 그리고 CD 패키지의 안에 들어 있는 오페라 원문 가사를 옮겨 적고 번역을 해 가면서 오페라를 듣던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 일본에 출장갔던 분이 희귀한 공연 실황이 담긴 LD를 사오면 음악 감상실에 함께 모여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영상을 봤던 것이 기껏 20년밖에 되지 않은 일인데 말이다.
이제 독서도 구독형으로 즐기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아마존의 킨들 서비스를 부러워하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리디 셀렉트, 밀리의 서재 등의 서비스가 생겨나고 있고 전통의 강자인 교보문고나 Yes24도 유사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아마존 킨들이라는 어마어마한 서비스만큼 되기가 쉽지는 않겠고, 한국어로 되어 있는 책의 수나 그걸 읽는 독자의 수라는 측면에서 충분한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질지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최소한 국내 기업들이 서비스하는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나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 정도의 위치는 차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도리어 영화나 음악에 비해서 책이 언어적인 장벽이 더 높을 거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 그렇다.
나는 음악과 영상에서 구독형으로 넘어가는 것이 매우 늦은 편이었고, 책에 대해서는 더욱 그래서 최근까지도 ‘정액 요금제에 가입만 하면 무제한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서비스’에 대해 매력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종이책을 사지 않고 전자책으로만 책을 사기 시작한지 꽤 오래 되었고, 리디북스에서 보유한 책이 3천여권이 되어 가는 것을 고려하면 나야말로 이런 무제한 서비스가 잘 맞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구매용 전자책조차 양과 질에서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내게 구매용 전자책보다도 훨씬 양과 질에서 못미칠 것이 분명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모든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 아이디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종이책을 사는 경우는 Yes24에서 아이들 책을 사는 것이 전부이다. 학교에서 지정해 주는 필독 도서, 학원에서 지정해 주는 문제집, 그 외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책을 사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실적이 되기 때문에 플래티넘 회원이 된지 시간이 좀 지났다. 그런데 얼마 전에 Yes24 북클럽 3개월 무료 제공이라는 혜택까지 받게 되었다. 사실 이걸 쓸 생각도 별로 없었는데,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는 경우도 있으니 북클럽에 책이 있다면 그 수고를 아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북클럽에 가입을 하고 이 무료 서비스를 써 보기로 했다.
북클럽 첫페이지에서는 신규와 인기 두 가지 탭으로 나누어 책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내가 관심이 가는 책을 제목이나 주제 등으로 검색한 경우에는 읽고 싶은 책을 거의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물론 내가 유행하는 책 또는 베스트셀러들 보다는 마이너한 주제의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런걸 감안하더라도 책의 양과 질에 대한 내 선입견을 깨기에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흥미로운 것은 구독형 서비스를 사용하게 되면 내가 적극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콘텐츠가 아니라 ‘구입형이었으면 절대 돈을 쓰지 않았을법한’ 콘텐츠도 소비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몰랐던 콘텐츠를 만나서 새로운 취향을 개발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Yes24 북클럽에서 내가 골라서 본 책 중의 하나는 대한민국 부동산 전쟁이라는 책이다. 내가 부동산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젊은 세대여, 10년 후 부자와 가난한 자가 갈린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고 매일경제신문사에서 발간했으며 저자들이 무슨 부동산학과 교수며 부동산 사이트의 팀장이며 그런 사람들이니, 내가 돈을 주고 이 책을 산다는 것은 일어날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혹시 내가 모르는 어떤 중요한 통찰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은 이북 기준으로는 200페이지도 되지 않은 짧은 책이고 (Yes24 앱은 기본 설정의 글씨 크기가 매우 작은 편이다) 그나마도 많은 그림이나 표가 들어 있고 여러 명의 저자들이 쓴 짧은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라 읽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은 제대로 집중해서 읽어야 할만한 가치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빠르게 훑어보는 독서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동산이라는 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전쟁터와 같은 곳임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욕망이 지배하는 곳에서 선수로 뛰면서 전체 판을 보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인다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일인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 경기장 안에서 뛰는 모든 선수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에게 유리한 판을 만들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고, 그 노력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은 욕망이라는 이름 앞에서 정당화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4억짜리 아파트가 8억이 되고, 8억짜리 아파트가 15억이 되는 일이 불과 1~2 년 내에 일어나는 것을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 이런 욕망의 게임에 몸을 던지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만히 있으면 바보가 되는 것 같고, 내 노동의 가치가 너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게 때문이다. 어쩌면 부동산은 비트코인같은 것에 비하면 훨씬 상식적이고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면서 욕망의 분출을 보는 것,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어서 자신(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욕망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토지정의사회연대와 같은 진보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도리어 이런 부분에 대해 잘 모르는 이른바 부린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삶을 위해 필요한 것은 단순한 진리이지 복잡하고 화려하게 포장된 미사여구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아는 사람이다. 땅은 가치 생산의 원천이자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공공재이다. 집은 주거의 공간이지 재산 증식의 수단이 아니다. 법이 필요한 이유는 무한히 늘어나려고만 하는 욕망을 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등등…
책을 쓰는 사람도, 책을 읽는 사람도 나름대로의 생각을 가지고 그 행위를 한다. 나는 책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이라 다행이다. 원래 어떤 일이든 직접 하는 것보다는 옆에서 평가하는 것이 훨씬 쉬운 법이다. 저자들이 어떤 고민과 생각을 가지고 책을 썼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래서 내가 읽어내야 할 어떤 지점을 놓쳐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이브하게 말하자면, 이 책의 저자들은 나를 설득하는데 실패했고 나는 선입견을 강화만 한 채로 독서를 마쳤다. 저자들에게 이 사실이 별 타격이 되지 않겠지만, 내게도 별다른 타격이나 변화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일에 짧게나마 내 시간을 사용했다는 것이 아쉬울 뿐.
2020/11/28 https://lordmiss.com/journal/archives/46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