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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바다 Jan 30. 2021

저는 취미가 없는데요?

도대체 집에 들어가면 뭐하니?

30년을 살면서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해본 적이 없다. 주로 집에서 논다는 말로 애둘러 말하곤 했다. 그런 질문을 받고나서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딱히 떠오르는 취미가 없다.


취미의 사전 적 의미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다.


꽤나 넓은 범위에 해당하는 의미이지만 왠지 모르게 외향적인 것들만 연상된다. 스포츠와 같이 집 밖에서 하는 활동들 말이다. 나 같은 경우는 사람을 만난다거나 집 밖에서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취미가 없다고만 생각했다.


활동적인 취미들은 대게 비용이 발생한다. 장비라던지 대관이라던지 여러가지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무언가 관심이 생겨서 배워보려고 해도 선뜻 시작하기가 부담스러웠다.


너무 혼자 집에만 있는 것이 답답해서 볼링을 배워보려 했었다. 어색하지만 작은 동호회에 가입해서 몇번 볼링장에 나가봤지만 게임비도 그렇고 볼링 신발과 볼링공 등 여러가지 장비를 사야하는 시점에 그만두게 되었다. 보통은 한 게임에 5,500원씩 세 게임 정도를 진행했는데 볼링화 대여비와 음료 비용까지 하면 하루에 2만 5천원 정도를 썼다. 일 주일에 두 세번씩 모임을 가지다 보니 한 주에 기본 5만원이 들었다. 그리고 보통 게임을 하고 난 뒤에는 친목 도모를 위해 술자리까지 가졌다.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는 성격도 아니고 비용이 부담된다고 말하면서까지 취미를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


시대가 점차 바뀌고 집에서 혼자하는 취미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코로나 펜데믹 상황이 지속되자 ‘홈루덴스’라는 신조어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호모 루덴스(Homo Ludens : 놀이하는 인간)'에서 파생된 말로, 밖에서 활동하지 않고 주로 집에서 놀고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수공예 제품을 만들거나 그림에 채색을 하고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이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는 취미들이 인기가 많아졌다.


나는 집에서 유튜브나 틱톡 같은 동영상 기반의 플랫폼을 보는게 유일한 낙이었고, 경제와 관련된 유튜브를 보게 되면서 책을 읽게 되었다. 유튜버 신사임당의 콘텐츠를 자주 보곤 했는데, 적은 비용으로 창업이나 부업을 시작해서 경제적으로 여유를 찾게 되는 내용이 흥미로웠다. 그 동안은 월급 이외의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유튜브를 통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성공하는 과정을 보게 되니 자신감이 생겼다.


신사임당 채널의 콘텐츠를 보다 보니 유튜브에서 관련 영상들을 계속 추천해줬다. 그 중 하나가 김미경 선생님의 유튜브 채널이었다. 선생님 채널에는 다양한 콘텐츠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독서관련 콘텐츠를 자주 시청했다. 주 시청자가 30대 이상의 여성들이다 보니 여성들에게 필요한 경제, 사회, 창업과 관련된 다양한 책들을 소개해 주었다. 어느 날부터는 나도 모르게 관심 가는 책들을 하나씩 사들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흥미로운 내용임에도 책을 읽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이왕 책을 샀으니 다 읽어보자라는 목표를 갖고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는 책부터 한권씩 읽어나갔다. 비슷한 주제의 책들을 한권 한권 다 읽어가다 보니 독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취미가 되어버렸다.


일년쯤 지났을 때 내가 읽은 책들을 모아놓고 보니 그 해에 어떤 것들에 관심이 있었는지 큰 줄기가 보였다. 2020년도의 관심사는 미래사회와 마케팅이었다. 대표적으로 유발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과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이라는 책이 기억에 남는다.


디지털 사회가 가속화 될수록 양극화가 극도로 심해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경고하는 내용이었다. 디지털 사회에서 서로 연결되는 과정과 그 연결을 통해 부가 창출되는 과정을 알 수 있었는데 연결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무용계급(사회적으로 쓸모 없는 계층)’이 될 수 있다는 내용들이었다. 물론 극단적인 주장이긴 하지만 디지털 사회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가까이 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중요성도 알게 되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나의 생각과 일상을 기록해 놓다 보면 하나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동안 내가 하고 싶은 말이나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다. 막연하게만 생각하다 보니 머릿속에 아이디어만 스쳐 지나갈 뿐 구체화되지 못했다. 어느 날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을 한줄씩 적어 놓고 책의 목차처럼 나열해 보았다. 모아 놓고 보니 연결되지 않을 것 같았던 각각의 말들이 한가지 이야기로 귀결되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자연스럽게 그 주제를 가지고 책을 써봐야겠다는 목표가 생겼고 글쓰기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책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 선생님과 책을 쓰는 공부를 하면서 책을 읽는데도 변화가 생겼다. 그동안 읽는 사람의 관점으로만 책을 봐왔는데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글을 읽다보니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작가가 선호하는 글쓰기 패턴이나 구조를 생각해보면서 책을 더 천천히 살펴보게 되었다. 읽기만 했으면 무작정 책을 많이 읽는 것만 좋다고 생각했을텐데 쓰기를 병행하니 책을 읽는 방법도 다양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취미에 대해서 잘못된 편견이 있었던 것 같다.


남들이 다 하거나 알만한 활동을 통해서 공감대를 형성해야만 취미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요즘들어서는 보여주기 보다는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 하는 나만의 취미들이 생겨나서 만족하고 있다. 이제는 누군가가 나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주저없이 ‘책읽기와 글쓰기’라고 말한다.


사전적으로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이 취미라고 했다.


볼링처럼 나와 맞지 않는 것들을 하면서 취미라 착각하던 때도 있었다. 회사 동료들이나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마지못해 하다 보니 꾸준함도 즐거움도 없었다. 취미 조차도 꾸준하게 하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는 일만 남게 되었다.


남들에게는 잘 티가 나지 않아도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해나가면서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실력을 비교하지 않아도 되고 보여주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책과 글쓰기를 통해 내면적으로 많이 성숙해지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고 성장해 나가는 일”

오랜 시간 동안 취미에 대해 고민하다 내린 나만의 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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