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앵커, 혼자영화, 집콕만찬
말만 들어도 설레는 크리스마스 이브. 하지만 올해는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코로나 때문이다. 명동 거리는 한적하다 못해 썰렁할 정도다. 명동성당에선 신자 없이 성탄미사가 봉헌되고 있다. 온라인 성탄미사는 처음 있는 일이다.
크리스마스가 있는 주간, 나는 TV 뉴스 대체앵커까지 맡아 더 바쁘게 보내고 있다. 진행 준비는 물론이고 컨디션 관리도 해야 하니, 성탄절 취재에선 빠졌다. 덕분에 크리스마스 이브에 오후 반차를 내고 망중한을 누렸다.
이른 퇴근 후, 영화 <봉쇄수도원 카르투시오>를 보러 갔다. 11월에 개봉하자마자 보고 싶었는데 짬이 나지 않아 이제야 보게 됐다. 영화관에 들어가니 관객은 나를 포함해 3명. 저절로 거리두기가 되었다.
인터넷, 전화, 신문, 방송 없이 고독과 침묵 속에 살아가는 수사들. 영화를 보며 말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동안 하지 말아야 할 말, 필요 없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닳아 빠진 신발, 구멍난 양말, 하루 1끼 식사, 이마저도 반찬 없이 맨밥만 먹는다. 그런데도 수사들은 행복해 보인다. 나는 가진 것이 많은데도 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외식이 어려운 크리스마스 이브. 분위기를 내고 싶어 저녁에 고기와 야채를 구웠다. 카르투시오 수사들을 생각하면 너무 과한 식사다. 하지만 이렇게 차려 먹지 않으면 우울할 것 같기도 하다.
오후 8시, 성탄미사 생중계를 시청했다. 신자석은 텅 비었다. 마음이 헛헛해 오후 10시 미사도 보았다. 자정이 가까워지자 여기저기서 카톡으로 성탄 인사가 들어온다. 나도 몇 곳에 성탄 인사를 남긴다.
성탄절인 오늘도 당연히 출근해야 한다. 뉴스 제작을 위해 새벽에도 일하고 있을 기자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부은 얼굴로 뉴스를 진행하지 않으려면 휴대폰을 내려놓고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코로나가 덮친 2020 성탄절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듯 하다.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에게 성탄 인사를 전하며....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