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몇 번 겪어보면 익숙해질 일도 나에겐 어렵다.
이럴 때 나만의 장소를 떠올린다. 그곳에 노을 질 무렵에 간다면 위안을 받을 수 있을까?
힘들 땐 나만의 장소를 떠올린다. 누구에게도 공개하고 싶지 않은 장소가 있다. 삶과 죽음이 함께 영면하는 공간이다.
어제는 명동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렸다. 기도가 절실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동안은 너무 행복해서 외면한 것이 많다. 행복한 만큼 힘든 시간이 있는 거겠지. 평화를 바라면서 오랜만에 절실한 기도를 했다. 바람이 달큰했고 내 마음까지 쓰다듬어 주었다. 영적인 기분을 느꼈다. 그 평화를 믿냐, 믿지 않느냐의 문제만 남아있다. 나는 용기를 내서 그 바람을 믿어보기로 작정했다.
#2.
문장이 중요하다. 소설을 쓰고 있다. 덕분에 많은 소설을 읽고 있다. 좋은 소설은 중언부언 말이 길지 않다. 가장 필요한 말만 남긴다. 소설가가 쓴 비문학조차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결국 모든 맥락에서 같다는 생각을 한다.
읽다 보면 호흡이 가파른 소설도 있고 쓰러져가면서도 우뚝 서는 숨의 소설도 있다. 내 소설의 맥은 어디쯤 있을까? 단순하게 쓰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심혈을 기울인다. 그에 반해 말을 자꾸 길어진다. 역설이다. 하지만 말을 통해 정리하고 있으니 많은 이들의 이해를 구한다.
소설은 언제쯤 완성될 수 있을까? 주인공들의 마음이 무섭도록 느껴지고 있다. 그 문을 열어보니 스스로 무너질 것 같아서 다시 닫아버리고 싶다. 헤쳐 나가야만 한다. 분명 무언가가 느껴지고 있다. 내 호기심이 나를 그만두게 만들지 않는다. 직면해보고 싶다. 이제 그들이 정말 실재한다고 느껴진다. 아니, 실재하고 있고 관찰하고 있을 뿐이다.
#3.
소설과 시나리오. 행태로 속마음까지 표현해야 했던 시나리오에 비하면 소설은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강력한 이점이 있다. 덕분에 말 많은 나에게 더 적합한 매체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동시에 글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니 동영상을 묘사하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그게 소설이다. 소설도 곧 묘사이다. 좋은 소설은 독자들의 감각을 자극하기 위하여 풍경과 사물 그리고 감성을 묘사한다.
설명하고 싶은 풍경들이 많다. 나는 사실상 풍경을 통해 이야기를 떠올린다. 하지만 새로운 풍경을 감각하지 않은지 너무 오래되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원하는 풍광들은 대부분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다시 가야만 할 것 같다. 짧은 기간이라도 다녀와야 글을 쓸 동력이 생길 것 같다.
떠나야만 나오는 글쓰기는 어떤 의미일까? 새로움을 쓰는 사람이라 스스로 느낀다. 글을 더 많이 쓰기 위해 더 많이 보고 싶다. 나에게는 바람이 필요하다. 불어오는 새로운 공기의 냄새 속에서 보지 못했던 공감각을 동원해 타인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