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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현 Apr 07. 2023

구멍에 관한 단상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마음에 관하여

공백.



아주 작은 구멍

아니, 아주 큰 구멍

메꾸기 위해 분주하지만

채울수록 크나큰 동그라미.


길을 걷다 우리의 길을 보며

그 길 속에 담긴 과거를 만지고

어르고 달래서 만지고

또 부비고 부비고

촉각으로 느끼고 싶은 시간을 향해


마음껏 울음을 토해내고

쏟아진 빗방울과 서늘한 공기

그리고 기다리지 않았던 소리

채워진 소리는 어쩌면 공명

필요하지 않은 소리들은 여백


나아가는 것일까 멈춘 것일까

메꿀 수 없는 큰 동그라미

부비고 싶었던 그 시간을 향해

지향을 벗삼아 자유를 갈망하던 항해는

큰 바다로 나아가고 멈추고 나아가고


아주 작은 구멍이었지

아니, 아주 큰 구멍이었지

구명될 수 없는 삶을 기어이 안고

나아갈 수 없는 시간을 항해

자유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던 지금

언젠가 이 갈망도 의식하지 않을 때

그 미래를 분주히 맞이하는

오롯한 내 현재의 동그라미


채워지지 못할

아니 채울 수 없는

무엇을 향해 동그라미를 그리는걸까?

그 동그라미의 이름은 공백.


무수한 구멍을 맞고 자라

공백이 여백이 되는 과거

그 과거를 부비고 어루만지며

필요하지 않는 소리들을 채우며

아프지 않을 여백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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