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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인말러 Jan 26. 2024

제 3장: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죽음, Breathe.

우창

  안녕하세요. 벌써 세 번째 책을 마무리했네요. 이 책은 우리가 작년 말부터 시작해서 이제 1월 거의 다 돼서 끝난 것 같아요. 


우용

  네, 그렇네요. 간만에 또 한 권을 마무리했습니다. 


우창

  저는 이 세번째 책이 되게 좋았어요. 그런데 책에 얘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근황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새해가 밝았는데 요즘에 어떤 생각하고 계시는지 아니면 근래 일상에 변화가 있는지 간단하게 얘기해 주세요. 


우용

  새해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직 없는 것 같아요ㅎㅎ 일단 제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도 가장 힘들었던 순간도 다 지난해에 있었어요. 갑진년 올해도 그냥 작년과 비슷하게 힘들고 비슷하게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뭔가 작년 한 해를 그렇게 보내니까 되게 많이 성장했다는 느낌도 좀 들어서 올해에도 똑같이 엄청 행복하고 엄청 힘든 시간을 보내면 그만큼 더 성장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창님은 올해 어떤 계획 같은 게 있으신가요? 


우창

  저는 올해 초에 허탈한 일들이 많았어요. 제가 작년부터 계획해 예산도 짜고 했던 것들이 되게 별 것 아닌 일들에 무너졌던 순간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럴 때 조금 무기력하기도 했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2-3주 정도 지나고 나서 보니까 딱히 그렇게 슬퍼할 일은 아니었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걸 발판 삼아서 앞으로 바뀐 계획에 적응해 나가면서 살면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최근에 생겼어요. 올해는 크고 작은 변수에 너무 일희일비하지 말고 그냥 꾸준히 성장해 나가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몇 주 전보다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진 것 같아요. 


  그러면 이제 책 얘기를 시작해볼까요? 저희의 세 번째 책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우용님이 고르셨는데, 어떤 책인지 소개해주시겠어요? 


우용

  네, 이 책은 사카모토 류이치가 2020년도에 직장암 판정을 받고 그 뒤에 간과 림프에까지 전이가 됐다는 걸 알게 된 후에 사카모토 류이치가 쓰기 시작한 책입니다. 사실상의 시한부 판정을 받고 글을 쓴 거예요. 

책 제목이 제 눈길을 상당히 많이 끌었는데 본인이 음악을 맡았던 영화 < 마지막 사랑(1990년) > 속 대사입니다. 이 대사의 전체 내용이 상당히 인상 깊더라고요. 


  “자신이 언제 죽을지를 모르니 우리는 인생을,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생각하고 만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무한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극히 적은 횟수밖에 일어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어린 시절의 그 오후를, 앞으로 몇 번 떠올릴까? 그것이 없었다면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깊은 곳에서, 지금의 자신의 일부가 된 그 오후마저. 아마 앞으로 네 번, 혹은 다섯 번일 것이다. 아니, 더 적을지도 모른다. 보름달이 뜨는 것을 보는 일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있을까. 아마 스무 번이려나. 그리고, 그럼에도, 무한한 횟수가 있다는 듯 생각한다. 

- 영화 <마지막 사랑(베르나르토 베르톨루치)>


  이 책을 읽으실 분들을 위해, 간단하게 미리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요. 저는 사실 이 책 중반부가 조금 지루하다고 느꼈어요. 제가 생각한 이유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황국영 번역가님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몇몇 표현들이 한국어로 좀 잘 안 와닿았어요. 물론 이건 전적으로 제 주관적 의견입니다만, 좀 난해한 표현들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번째로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사카모토 본인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 많아요. 그 와중에 또 음악에 관한 전문적인 이야기가 중반부에 몰려 있어서 그래서 저 같은 일반 독자 입장에선 그 부분이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러나 이 책의 정수는 마지막 챕터인 8장 <미래에 남기는 것>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 챕터가 와닿으려면 또 앞부분을 다 읽어야 “사카모토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하고는 더욱 8장이 이해가 가는 것 같고요. 그래서 혹시나 이 책을 읽게 되시면 꼭 중반부를 잘 견뎌서 마지막 챕터에서 배워갈 걸 얻어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우창

그러면 책을 세 번째 책으로 이 책을 고르게 된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우용

  저희가 <책 읽고 삽시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 프로젝트는 이런 주제로 갈거야”라고 정해놓고 책을 고르지는 않았었던 것 같아요. 뭐랄까, 테마나 암묵적인 방향성은 있어도 3회차까지 하는 데에 있어서 지금까지 읽은 모든 책들을 아우르는 주제도 없었다고 생각해요. 


  가끔은 세상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우리의 개인적인 삶 그런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 좋은 책을 고를 때도 있어요. 그러면 우리가 같이 읽어볼 수 있는 주제가 숱하게 많은데, 한 번은 반드시 다뤄야 하지만 두 번 이상은 다루지 말자 싶었던 주제가 “죽음”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한 번 반드시 다뤄야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의 종착지이기 때문에 그것이 어떤 인생의 방향이나 그런 거를 잡아주는 데도 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였고요. 두 번 이상은 다루지 말자 싶었는데요. 왜냐하면 저는 죽음에 대해서 너무 오래 생각하면 할수록 산다는 걸 그 자체로 즐길 수는 없는 것 같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막 인간 실존의 이유, 삶의 의미 등 이런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서 저는 되게 관심이 많은 편이거든요? 그런데 그 질문을 너무 많이 할수록 제 일상이나 소소한 행복을 그냥 그 감정을 있는 그 자체로 즐기기는 어려워지는 것 같더라고요. 적절한 표현이 니체가 한 말 중에 “심연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그 심연도 똑같이 당신을 바라보게 된다”라는 말인 것 같아요. 죽음이라는 주제를 너무 깊이 들여다볼수록 오히려 좀 그 상념이 우리를 잡아먹는다고 생각해요. 한 번은 반드시 다뤄야 하지만 두 번 다룰 주제는 아니라고 생각을 했어요. 


  원래는 미하엘 하우스켈러의 <왜 살아야 하는가(The Meaning of Life and Death)>를 같이 읽으려고 했어요. 저는 예전에 한 번 읽었던 책입니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는 그 책에 훨씬 많이 담겨 있겠지만, 기왕 한 번 다루는 주제면 딱딱하게 다루기는 또 싫었어요. 


  철학 책들은 구체적인 개념을 정의한 상태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딱딱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 하거든요. 삶도 죽음도 하나의 흐름인데 철학은 그걸 분자 단위에서 분석을 해서 출발을 하게 되는 것 같고, 토론할 주제는 그 책이 훨씬 많더라도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의 그런 삶의 흐름에서 느껴지는 감각이나 감정은 그 책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타인의 죽음을 재료 삼아 우리가 떠든다는 게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우리의 배움의 목적에 이 책이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했어요. 


우창

  죽음이라는 주제로 책을 선정을 해 오셔서 좀 놀랐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사실 저는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거든요. 근데 저는 한 번쯤은 우리가 얘기를 해봐야 되지 않나 하고 생각을 했던 점에서 공감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또 우용님과 마찬가지로 이 책이 그렇게 죽음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책은 아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은 비슷하게 들었어요. 


  저희가 이번에는 지난 두 번 회차와는 다르게 책과 관련된 영화도 같이 봤고 다각적으로 접근했죠. 특히나 오늘은 같이 건강검진을 다녀오기도 했고요. 저는 두 가지 영화를 같이 봤던 게 모임을 준비하면서 생각이 났어요. 올리브 허머너스의 <리빙: 어떤 인생>이라는 영화랑 사카모토의 공연 영화인 <오퍼스Opus>죠. 이 두 영화의 공통점은 자신의 죽음을 마주한 두 할아버지들이 자신의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그리는 영화였잖아요. 그래서 연말과 연초에 그 영화들을 같이 봤을 때 되게 뭔가 잔잔한 울림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그러면 앞으로 저 나이가 돼서 내 죽음을 인식했을 때 과연 일을 하고 있으려나,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으려나, 아니면 혼자 있으려나” 약간 이런 생각도 많이 하게 됐었던 것 같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이런 것들은 사실 철학 책을 가지고 이야기를 했으면 고민해볼 수 없었던 부분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을 읽고 그 영화들을 본 게 좀 더 쉽게 제 삶과 죽음을 연결시켜볼 기회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역시나 저는 죽음에 대해서 그렇게 깊게 생각하지는 않는 사람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구성하는 데 조금은 어렵더라고요. 


우용

  흠, 행복이, 뭐가 행복일까요? 어느 정도는 내가 잘 먹고 잘 살고, 소비하고 싶은 게 있을 때 그걸 제때 소비할 수 있으면 그것도 나름의 행복이긴 할텐데… 그건 말 그대로 끝을 낼 수가 없는 행복 같더라고요. 나 자신을 얼마나 만족시키든 간에 그 목적지에 자기 자신밖에 없다면 욕구만 왕성해지는 것 같아요. 


  아까 이야기해주신 <리빙: 어떤 인생>의 주인공도 그렇고, 이 책의 사카모토 류이치도 그렇고 시한부 판정을 받죠. 그렇다면 죽음을 앞두고는 최대한 행복한 날들만 보내려 할텐데, 막상 “자기 자신”만을 이롭게 하는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어요. 행복의 기준을 자신이 아닌 외부 세계와 연결 짓는 것 같았 달까요.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어떤 일을 할까’ <리빙:어떤 인생>에서도 “아이들을 위해서 놀이터를 지어주겠다.”라고 주인공 할아버지가 결심하죠. 그리고 이 책에도 사카모토가 맨 마지막 챕터 8장에서 자기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나라인 우크라이나를 도와주기 위한 곡을 작곡해요. 그러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찾아내려는 행복은 자기 자신에 있는 게 아니라 바깥 세상과 외부를 향해 나와 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왜 우리는 죽음을 되게 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들처럼 행복을 외부에서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조금은 있어요. 나라는 존재 자체는 어차피 언젠가 사라지니까, 뭐를 남길 수 있고 다른 사람들한테 뭘 해주고 떠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죽음을 생각하면 함께 고민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우창

  확실히 그런 것들은 유산이라고 생각을 하면, 무언가를 남긴다고 생각하면 말했던 것처럼 생각의 화살표가 나한테 있는 경우에는 남기지 못하는 거니까 사실 갖고 가버리는 거니까 그렇긴 하네요. 


  그러면 제가 준비한 첫 번째 질문부터 좀 드리고 싶어요. 우용 님께서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 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만약에 그렇다면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지 궁금해요. 


우용

  죽음에 대한 상념과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저한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어요. 근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고 생각해요. 많아요, 제가 느끼기엔. 그리고 그건 그 사람들만의 삶의 방식인거죠. 옳고 그름도 없고, 제가 뭔가 더 생각이 깊거나 많은 게 아니라 사람들마다 다른 주제에 더 관심을 갖고 자주 생각하는거겠죠. 사실 저희 집은 항상 들어가는 길에 육교를 건너야 되는데, 저는 그 육교를 건널 때마다 제 장례식 장면을 되게 자주 상상해요. 그 정도로 자주 생각해본다는 뜻이에요ㅋㅋㅋ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있어 ‘죽음’이라는 키워드는 미로 찾기랑 되게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시작점부터 선을 긋다가 막히면, 미로 찾기가 끝나는 점에서부터 선을 그으면 빨리 문제가 풀릴 때도 있거든요. 그것처럼 종착지에 대한 생각은 여정을 잘 보내는 데에도 어느 정도 도움을 주지 않나 하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걸 아니까 내 삶의 무게를 좀 나 자신이 아니라 내가 남길 수 있는 것들, 아까 말했던 그런 것들에 좀 돌리게 됐어요. 내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 어떤 세상을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은지, 이런 것들에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고 내가 누군가를 돕고 싶을 때 도울 수 있는 상태에 조금씩 도달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우창

  그러면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한다는 게 결국에는 “나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을까 아니면 어떤 형태로 남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거랑 비슷한 건가요? 결국에는 외부와의 관계에서 뭔가 남는 것들이 있고 다른 사람들한테 영향을 미치는 게 있는거라면 “내가 어떻게 무엇을 만들어 놓고 떠나야 하는걸까”라는 생각 같아서요. 


우용

  자꾸 비유적인 표현을 쓰게 되는 것 같은데, 성냥에다가 불을 피우면 언젠가 그 불이 꺼지잖아요. 그러면 성냥에다가 우리가 불을 피웠을 때 그걸 어디다 써야 할 지 생각해봐야겠죠. 초를 키는 데 쓸 건지 아니면 어디 그걸 연료로 쓸 건지, 누구한테 써줄 건지 등등, 꺼져가는 것들은 꺼지기 전에 그 목적을 생각해보게 되죠. 가만히 불이 춤추는 걸 감상해보는 것도 하나의 목적이 되겠고요. 


  그러니까 좀 그렇게 생각을 하는 거죠. “내가 어차피 꺼질 촛불이라면 그 촛불을 어디다 쓰는 게 가장 현명할까?” 저는 이렇게 생각하면 별로 큰 일 아닌 것에 미련과 집착이 좀 사라지는 것 같아요. “잘 안 되면 어쩔 수 없는거지” 생각하면서 모든 일을 하나의 작은 연극으로 바라보는거에요. 내가 거기서 뭔가 역할을 하나 맡았을 뿐인 거지, 사실 나라는 캐릭터 자체는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창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해볼수록 비로소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 있는 화살표를 조금 밖으로 돌릴 수도 있는 것이겠네요. 근데 저도 그런 경험이 많지만, 삶이 그 자체로 고단하고 스트레스 투성이인 때가 있잖아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당장 살아가는 문제로 허덕이며,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느라 단기적인 생각에만 몰두하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모든 생각의 화살표를 자기 자신에게 다 꺾어 돌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지?’ 라는 질문에 답을 내기 급급한 사람들이 많을텐데, 그 사람들에게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말, 외부와 나를 연결하여 생각해보자는 말이 벅차게 들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우용

  물론 지금 당장 순간순간 중요할 때가 있고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어떤 한 가지밖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이 발생하죠. 당장 저도 그렇고요. 그러나 그게 몇 개월 이상, 몇 년 이상 계속 지속이 된다는 건 좀 문제가 있는 것 같고요. 뭔가 분명히 자기한테 안 맞는 삶을 살고 있는 걸 수도 있고요. 그런 상황에서 철학적인 생각은 그냥 뜬구름 잡는 얘기가 될 수 있을거에요. 그런데 제가 아까도 얘기했지만 매일, 항상 생각하라는 건 아니잖아요. 일상에서 한 번씩은, 그런 생각도 해볼 필요가 있다는거죠. 


우창

  그럼 뭔가 저는 그런 생각은 되게 드는 것 같아요. 단기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 생각이 매몰돼 있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발견하면, 특히나 그게 가족이라든가 친구라던가 가까운 사람이 그러고 있으면, 뭔가 제가 그 사람의 시선을 잠시 좀 먼 곳으로 보내주는 역할을 해줄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도 드는 것 같아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볼 게요. 사실 사카모토가 죽음을 맞이해 갔던 방식을 보면 아무나 누릴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던 거잖아요. 의사가 어디가 좋은지 알아서 거기로 맞춰서 그냥 갈 수 있는 환경도 그렇고, 뉴욕과 도쿄를 오가면서 자기한테 잘 맞는 의사를 찾는다든가, 휴양지에서 용생활을 한다든가 이런 것도 그렇고요. 이건 되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한테만 허용이 되는 죽음 같아보여요. 


  비슷한 사례로, 제가 오늘 아침에 뇌 과학자와 노년 내과 교수님의 대화를 유튜브에서 봤어요. 대학병원에 ‘노년’ 내과가 따로 있다는 것도 놀랐었는데, 그 교수님은 수많은 노인 환자를 보면서 앞으로 부자에 대한 정의가 조금 달라질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거에요. 


  앞으로는 병이 있으면 그것들을 치료하거나 연명 치료를 할 수 있는 기술이 너무 많이 발달이 돼 있고 기대 수명은 늘어나다보니, 계속 월간 지출되는 의료 비용만 해도 한 500만 원 정도 될 건데 그러면 사실 노후에 쓰는 의료 비용을 많이 모으고 있는 사람, 그 500만원이 충분히 자기 노후자산만으로 뒷받침될 수 있는 사람이 자기는 부자인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우용

  그게 되게 불편한 사실은 맞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사카모토 류이치씨는 워낙 예술적 재능과 긍정적인 파급력이 있었으니까 그만큼의 많은 자산을 축적한거죠. 어떻게 보면 사실 죽음을 앞두고 책을 쓴다는 것도 거기서 오는 특권 가운데 하나잖아요. 


  그런데 그러면 ‘이 책이 없었으면 우리가 이 대화를 했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또 이 사람이 그런 요양생활을 즐긴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같은 기회를 빼앗기는 건 아니니까 사카모토씨가 자기 말년을 보내며 우리에게 전한 생각들을 아니꼽게 볼 건 없죠. 다만 물론 그 사람의 환경과 독자의 환경은 또 다를테니, 독자의 삶에 적용되거나 공감되는 부분은 다를 수 있을거고요. 우리는 오히려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사카모토 작가님의 요양을 체험 하는 거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우창

  그렇네요. 그러면 다시 “죽음”이라는 주제로 넘어와서, 우용님께서는 죽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는 게 결국에 사회와 타인에 대해 어떤 영향을 남기고 갈지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럼 본인도 나중에 죽었을 때 어떤 사람으로 기억이 되고 싶으신건가요? 


우용

  나중에 “이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그거는 정말 제 영역 밖인 것 같아요. 작년이 제가 되게 많이 힘든 동시에 되게 많이 행복했다고 했잖아요. 그때 어떤 느낌이 들었냐 하면 하루가 끝날 때마다 그 하루가 되게 작은 짧은 하나의 생애 같았어요. 하루에도 되게 행복한 순간과 되게 힘든 순간이 반복되는 거예요. 주로 힘든 것들은 어떤 프로젝트를 하거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너무 힘들었고 행복했던 거는 나중에 그 프로젝트를 같이 했던 사람이나 아니면 그걸 본 사람들이 갑자기 찾아올 때가 있었어요. “아 그때 너무 재밌었다”, “그때 너무 감사했다” 이런 얘기를 하는데 그럼 그 사람한테 제가 감사하고 재밌는 사람으로 기억이 된 거잖아요. 


  근데 그걸 제가 “아 난 이렇게 기억될래”라고 마음 먹고 시작했던 일들은 아니거든요. 그게 제가 좌우할 수 있는 범위에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물론 나중에 그런 말을 들을 때 기뻤지만, 그게 기뻤다고 타인에게 어떻게 기억될지에 중심을 두고 사는 건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그나마 좀 ‘이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하는 부분은 가족한테는 좀 “노력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 것 같아요. 특히 지금으로서는 제 사촌 여동생 둘이나, 나중에는 자식이나 배우자한테 좀 바쁠 때도 따듯하려고 애쓰고 항상 노력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네요. 그 외에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 하는 건 아예 없어요. 


우창

  저도 이 질문에 스스로 답을 달아보다가, 사회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어서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생각해봤어요. 최근애 저는 친구들이 제 인생을 구성하는 큰 요소라고 느껴요. 여자친구와 대화를 할 때에도 보면 친구들과 있었던 이야기를 주로 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저는 제 친구들에게 포근했던 사람, 가지고 있던 따뜻함을 베풀어줬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그러면 마지막 질문으로, 우용님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특별한 일이 있으신가요? 


우용

  저는 우창님이랑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진심입니다ㅎㅎ 아무튼, 제대로 답을 해보자면,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은 또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제가 가장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일들을 더 하고 싶을 것 같아요. <책 읽고 삽시다>도 그 중 하나이고요.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책인데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고 자기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다는 점이에요.사카모토 류이치씨가 거의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연주 작업과 작곡 작업을 계속했단 말이에요. 저는 그 이유가 그 상황이 본인이 가장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이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되게 멋있는 거죠. 그러니까 자신이 가장 살아있다고 느낀 순간이 자신이 가장 잘하는 일로 남들한테 가장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인거니까. 저도 죽기 직전에 뭔가 특별한 걸 해보고 싶다든가 어디 가서 뭘 먹어보고 싶다 이런 거는 딱히 없고, 비슷하게 계속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을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로 사람들한테 도움을 주든, 아니면 내가 새롭게 일을 시작해보든, 중고등학생 때 했던 이주민 지원센터 봉사활동 이런 걸 나이 들어서 다시 한 번 해보든 그런 시간을 많이 채워놓으면 그게 좀 더 후회가 없을 것 같아요. 우창님은 뭐 그런 게 있나요? 죽기 직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 


우창

  저도 물론 우용님이랑 시간을 보내고 싶고요. 레나(우용이 키우는 강아지)도 그때 있었으면 좋겠긴 하네요. 아직까지 저한테 죽음은 되게 개인적인 일이어서 스스로 내 마무리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좀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안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끌어안을 수 있으면 좋을 것 같고 그전에 뭔가 한 끼는 제가 스스로 제 손으로 해먹고 싶을 것 같아요. 


우용

  투박한데요?ㅎㅎ 


우창

  근데 저는 요즘에 그런 생각은 있어요. 지금은 아직 인턴을 구하기 전이고 모든 신경이 어떻게 하면 더 멋있는 이력서를 쓰고, 내가 원하는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거지만, 저는 인턴을 구하는 동시에 제가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좀 하나 찾아서 하고 싶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거든요. 왜냐하면 인턴 수준에서 돈을 버는 일은 사회적으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기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사소한 부분만을 담당하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봉사활동으로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여유가 되면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때 되게 잠깐이긴 했는데 이주민 지원센터를 같이 갔을 때도 되게 좋은 기억이 많이 남았거든요. 


우용

  좋네요. 저는 사실 뭐 우창님을 되게 오래 봐왔지만 노를 젓는 사람보다 항해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늘 갖고 있거든요. 우창님은 항상 엄청 파도 칠 때 억지로 노를 젓기보다 방향을 잘 잡고 파도 위에서 항해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본인이 잘하는 일과 남을 돕는 일이 하나 된다는 게 우창님한테 일어날 되게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 같아요. 


  다음 책 예고를 해 주시고, 오늘은 여기서 마무리할까요? 


우창

  저는 다음 책을 고르는 기준은 하나가 있었어요. 우용님이 지난번에 <초조한 마음>을 마무리하고 “<책 읽고 삽시다>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면 있는지조차 모르고 읽어보지 않았을 것 같은 책이다”라고 하셨거든요. 저도 그게 저희 프로젝트의 묘미라고 생각하고 되게 공감이 갔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번에는 제가 절대 손을 안 대는 분야의 책을 읽어보고 싶었어요. 테드 창 씨가 쓴 소설인데요. 좀 과학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는 책이어서 골랐고 단편 소설집인 것 같아요. 


  아무튼, 지금도 책장을 정리하면 <책 읽고 삽시다>의 책들은 따로 모아두는데요. 그 책들이 서재에 한 줄 두 줄 이렇게 쌓이게 되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리 프로젝트가 롱런했으면 좋겠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으우저는 다음 책을 고르는 기준은 하나가 있었어요. 우용님이 지난번에 <초조한 마음>을 마무리하고 “<책 읽고 삽시다> 프로젝트가 아니었다면 있는지조차 모르고 읽어보지 않았을 것 같은 책이다”라고 하셨거든요. 저도 그게 저희 프로젝트의 묘미라고 생각하고 되게 공감이 갔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번에는 제가 절대 손을 안 대는 분야의 책을 읽어보고 싶었어요. 테드 창 씨가 쓴 소설인데요. 좀 과학적인 내용이 들어가 있는 책이어서 골랐고 단편 소설집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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