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일-박병호 트레이드
야구팬들의 조급은 질병이다.
야구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등으로 넓어지고 젊은 야구팬들이 부쩍 늘어나면서 좋은 점만큼이나 보기 싫은 광경들이 펼쳐지는 빈도도 정말 높아졌다. 십여 년 전 네이버 스포츠 댓글창에서나 볼 수 있었던 글들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못한 수준의 댓글들이 즐비하다.
인스타에서 악플 달고 유튜브 댓글로 비난한다. 비판 말고 명백한 비난. 내 기준에서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팬도 아니다. 이기면 기뻐하고 지면 슬퍼하는 일희일비가 너무 심하다. 3연승 하면 우승 설레발치고 3연패 하면 팀 해체하라고 한다. 내 생각에 이런 조급은 경험부족에서 온다.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야구 봐 온 어르신들은 오늘 경기 날리면 시원하게 욕 몇 번 하고 말지 인스타 댓글로 어디가 잘못됐으니 누구누구 나가라며 따지고 들지 않는다. 물론 그분들도 그라운드에 술병 던지고 구단버스에 불 지르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샌 그 모습이 고스란히 댓글창으로 옮겨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꼭 야구 본지 몇 년 안 된 사람들이 제일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비판과 비난 사이 그 무언가를 해댄다.
게다가 트럭 시위며 현수막을 동원해 다방면으로 압박한다. 좋은 말로 하면 들어먹지도 않는 구단에 그렇게라도 메시지를 전하려는 시도야 나도 이해하는데, 가끔은 정말 비난 이상 이하도 아닌 경우도 보인다. 도덕적으로 잘못한 일이 있으면 몰라도 성적이 안 나온다고, 그런데 경기를 뛴다고 선수를 공격하는 트럭을 보내고 현수막을 거는 건 정말 이해 안 된다. 선수들은 야구장이 직장이고 경기 뛰는 게 직업이다. 매출이 적고 성과가 없다고 다니는 직장 앞에 현수막 걸면 제정신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 없다. 백 번 잘해도 한 번 못하면 욕먹고, 조롱당하고, 무시당하고. 아무리 야구가 인생을 닮았대도 이런 것까지 닮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오늘 오재일과 박병호 트레이드가 있었다. 며칠 전까지 오재일 2군 보내라며, 은퇴시키라며 떠들던 사람들의 말들이 아직도 버젓이 기록으로 남아있는데 다들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개인적으로 의미 없는 트레이드가 아니라고 생각하며, 단장의 의중도 어느 정도 보인다고 보고, 오재일과 박병호가 비슷한 케이스의 선수라는 의견에 동의도 안 되어서 대부분의 여론과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그보다 트레이드는 결과론인데 앞으로 매일같이 떠들썩할 것이 눈에 보이니까 벌써부터 피곤하다. 당장 내일 경기부터 하루하루 트레이드의 성패를 논하겠지. 이원석과 김태훈 때 그랬던 것보다, 김태군과 류지혁 때 그랬던 것보다 심하게. 제발 인간적인 수준의 인내심은 탑재하고 응원을 해줬으면 좋겠다. 적어도 야구'팬'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야구팬이고 돌아가는 꼴 보다 보면 화나는 거 백번 이해한다. 화를 내는 것이 잘못이라는 게 아니라, 화를 내는 강도와 빈도, 그리고 방식의 타당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어디까지가 팬의 권리고 어디서부터는 명백한 월권인지. 애초에 팬이라는 게 뭔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나도 정답은 모르겠지만 어딘가 심히 잘못된 사람들이 많은 것만은 확실하다.
이제는 다른 팀에서 이어질 오재일의 선수 생활을 진심으로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