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럼에도불구하고 Dec 10. 2020

너무너무 행복한 요즘.

매일매일이 요즘만 같았으면 좋겠습니다.

콜센터에서 고객 상담 업무를 시작한 지도 벌써 3년째. 최근 들어 업무 상으로 여러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부서 이동이었다.


일반 상담 업무 부서에서 조금 심화된 상담을 하는 부서로 옮긴 것이다. 업무 교육을 2주 정도 받고 처음엔 엄청 정신이 없었다. 하나를 받으면 두 개를 처리해야 하는 마술이 매 순간 펼쳐지니까.


초반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많이 버둥거렸다. ADHD 환자인 나는, 업무량이 많아지면 뭘 먼저 해야 할지 몰라서 패닉에 빠지곤 다. 사실 지금도 완전히 그걸 벗어난 건 아니어서, 업무에 투입될 때는 항상 시작 전에 약을 꼭 먹고 일을 시작한다. 본격적으로 심화 업무에 투입된 지 2-3주 정도 지난 지금은 그래도 업무에 많이 익숙해진 느낌이다. 어떤 업무인지를 어느 정도는 터득하고 나니 이전에 일하던 부서보다 여기가  좀 더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의 변화는 센터 이동이었다. 원래 있던 큰 곳에서 조금 규모가 작은 곳으로 이동했는데 옮겨간 센터에서 너무 좋은 팀 리더와 중간관리자를 만났다.


업무와 관련해서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받거나 똑같은 걸 계속 반복적으로 물어보면 '이 사람은 뭐 이런 질문을 하지?'라는 생각에 짜증이 날 법도 한데, 두 명 다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말 그대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똑같은 걸 여러 번 물어봐도 항상 정말 친절하게 잘 알려준다.


그리고 업무 처리가 예상보다 늦어지면 팀 리더나 중간관리자는 나 때문에 늦게 끝나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최근에 굴을 잘못 먹고 배탈이 났다. 교육 직후에 장장 5일을 써버린 . 휴무를 마치고 오니 이미 머릿속은 초기화 되어 있었다. 당연히 동기들보다도 업무 적응 속도가 많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원래도 업무에 익숙해지는 데 까지 시행착오도 엄청 많이 겪는 나란 사람은 남들보다 적응 속도도 배로 걸린다.


그들도 사람인지라, 예상치 못한 야근은 싫을 것이고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을 텐데 내 업무가 끝날 때까지 싫은 내색 하나 없이 기다려준다. 그리고 어려운 건 없는지, 뭘 도와주면 되는지 수시로 물어보고 내가 마음 편하게 물어볼 수 있게 배려해준다. 어차피 본인도 할 일이 있어서 늦게까지 남아있는 것이니 너무 부담 갖지 말라면서. (그래놓고 왜 제가 끝나면 같이 나오는 건가요....)


그리고 또 하나. 노력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원래 업무 파악도 느린 데다 동기들보다도 많이 뒤처지는 나. 남들에게 민폐 끼칠까 봐 조바심이 났다. 쉬는 시간도, 점심시간도 제쳐가며 업무처리를 했다. 둘 다 며칠 주의 깊게 지켜봤나 보다. 팀 리더도, 중간관리자도 번갈아 내 자리에 와서 해 주는 말이, 챙길 건 챙겨가며 일하라고, 또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한다. 지금은 속도보다는 천천히 차근차근 정확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고 노력하고 발전하는 게 눈에 보이니 지금처럼만 해달라고 한다.


와우. 이 사람들은 보살일까 아님 대천사일까? 이런 팀 리더와 중간관리자 밑에서 일을 하니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 나뿐만 아니라 팀원들 모두 다. 둘 다 업무능력도 뛰어나지만, 개개인의 가능성을 믿고 기다려 주고 지켜봐 주니까 그런 리더들을 실망시키기 싫어서다. 이러니 센터 내 분위기가 항상 좋을 수밖에.


그래서일까. 업무를 하면서 매번 고객만족도 평가를 받는데, 오늘 확인해보니 부서 이동 초반에 교육받을 때 한 개가 빵점 나온 걸 제외하고 나머지는 거의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교육 때, 이번 부서 넘어오면서는 어려운 콜들이 예전보다 많아질 거라고 해서 사실 많이 걱정했는데 예상보다 점수를 높게 받아서 진짜 놀랐다.  팀 리더한테 바로 자랑했더니 폭풍 칭찬! 그래서 오늘은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았다. 믿고 지켜봐 주는 관리자의 존재가 이렇게 중요하구나를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그래서 퇴근하자마자 팀 리더와 중간관리자에게 기프티콘을 선물로 보냈다. 그들이 너무 잘 알려줘서 좋은 점수를 받은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랬더니 본인들이 해야 할 일을 한 것일 뿐이니 너무 본인들한테 미안한 마음 가지지 말란다. 이렇게 눈물 나게 멋진 리더들인데 내가 어떻게 안 미안해해.


앞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서 많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그리고 언젠가 내가 신입 때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새로 들어와서 정신없을 때 나도 내 노하우를 전달해 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어야지. 내가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나도 여기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지.라는 행복한 결심을 하게 된 오늘이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매 순간이 늘 행복하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