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엄마의 미국 유학 일기
미국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한국을 떠날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다. 사실 한국을 떠날 형편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인 것 같기도 하다. 나름 한 번 번듯하게 해 보겠다고 엄청난 임대료를 무릎 쓰고서 학원을 확장 한지 약 1년, 하루하루 어떻게 보내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늘 바빴고, 이 돈 줄 테니 떠나라고 하는 든든한 부모도 남편도 나는 없는 사람이었다.
다만 자폐인 나의 아들이 초등학교 갈 시기가 되어 대안학교를 시도해 본 그 시점부터 미국에 가 봐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좀 더 뚜렷하게 들었고, 그 당시 주변 사람들도 이상하게 나에게 미국이나 캐나다를 권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미국을 갈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학교를 고를 때 공립학교는 일찌감치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특수학교로 바로 결론을 내리기가 조금은 망설여져서 만 7세에는 대안학교를 시도했고, 대안학교에서 거절당한 후 나는 아이의 입학을 1년 미루며 특수학교에 보내는 결정을 내렸었다.
공립학교를 일찌감치 배제했던 건, 크게 2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학교 폭력과 왕따에 대한 고민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해해 줄 마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혹시나 벌어질 나의 아이의 잘못이 염려되어서였다. 학원 강사로 오래 지내온 나는, 공교육의 학습 효과를 전혀 믿지 않는다. 공교육의 장점은 학습이 아니라 사회성 습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 날 한 시에 그 모든 아이들이 모여 있는 것, 그것이 공교육의 가장 큰 힘이요 장점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폭력과 따돌림에 대해서는 일반 엄마들보다 알게 될 계기가 많았기에, 자폐인 내 아이를 공립학교에 보낼 수는 없었다. 게다가, 분명 내 아이는 다른 아이에게 폐를 끼칠 수도 있는 아이이고, 이 아이가 폐를 끼쳤을 때 상대방 아이나 부모가 이해하고 받아들여질 마음이 전혀 없다면, 끝없이 사과하며 죄인처럼 학교를 다녀야 할 나의 아이와 내 모습이 너무 그려져서 공립학교는 보낼 수가 없었다 (이런 나의 사고에 대해 이기적이라고 비난을 한다고 해도 나는 비난을 감수하고 내 맘 편하게 살 생각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기는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특수학교를 보내자고 결정하려고 하니, 나 자신도 미련이 좀 남았고, 많은 주변의 치료실 선생님과 학부모들은 굳이 특수학교를 보낼 정도는 아니지 않냐고 묻기도 했다. 이렇게 한국에서는 늘 그 정도면 괜찮다고 했었는데, 나도 괜찮지가 않았고, 미국에 오니 내 아이는 정말 심한 자폐에 속하는 아이였다.
정말 대안학교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 많은 대안학교 중 하나를 고르는 나의 기준은 첫째는 기독교 학교였고, 다음은 통학 가능 한 거리, 마지막으로 학교에서 요구하는 조건을 생각해서 한 군데를 고르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대부분의 대안학교들이 통합 교육 대상의 인원을 발달 장애보다 신체장애로 채우는 것이 관례라는 것을 몰랐었기 때문에, 강의 듣기, 독후감 내기, 무슨 면접 가기 등등 전형 요건에 꽤 시간과 열정을 쏟았었다. 결과를 발표하는 날, 목사님이었던 교장 선생님은 면담에서 먼가 원론적인 이야기만 하시더니 결국은 옆 방에 있는 교무 주임 같은 여자 선생님에게 나를 보내어 거절 통보를 듣게 했다.
물론 거절당하는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그보다는 조직이란 참 비겁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 그 여자 선생님은 나보고 미국이든 캐나다든 한국보다는 훨씬 나을 수 있으니 가 보라는 말씀을 하셨다. 사실 그분은 나를 잘 모르고, 나도 별로 그분에게 내 사정을 말한 적이 없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게 신기했다.
학교 입학을 1년 미루던 그 해, 작업치료 선생님도 역시 이 아이는 미국이든 캐나다든 외국에서 더 행복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이 아이는 비교적 명확하게 좋아하는 것이 있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다면서, 경험상 이런 아이는 외국 가서 더 잘 지내더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외국으로 나가는 것에 대해 조금씩 권유를 받았던 것이 유학을 계획하는 시작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