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성희 Sep 08. 2020

당당한 자폐 2

자폐 엄마의 미국 유학 일기

자폐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2-가족의 권유와 유학 준비

       주변의 권유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의 미국행에 가장 큰 공헌자는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내 남동생이다. 내 남동생은 조카의 대안학교 입학 실패 스토리를 듣더니, 거의 이삼일에 한 번 꼴로 나에게 전화해서 그 아이를 데리고 한국에서 어떻게 할 거냐며 캘리포니아에 있는 아무 학교라도 지원해서 무조건 떠나라고 종용하기 시작했다. 멋도 모르고 미국 생활의 환상에 들떠 있던 우리 엄마도 네가 돈을 벌면 얼마나 벌겠냐며 그냥 정리하고 미국을 가보자고 매일 나를 붙잡고 설득을 했다. 



         내가 미국으로 떠나는 것을 선뜻 결정할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경제력의 상실이었다. 경제력을 상실한다는 것은 사실 이혼보다 나에게는 훨씬 더 무서운 결정이었다. 내 짧은 결혼 생활 후의 이혼은 그냥 되돌린다는 개념이었지만 이 나이에 유학을 한다는 것은 무슨 실수 하나만 해도, 무슨 물건 하나만 고장이 나도 돈이 들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그런 가슴 졸이는 시절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막연히 젊은 시절에 이루고 싶었던 걸 어느 정도는 이뤘기에 아마 내 인생의 다음 장이 열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 겨우 좀 살만 한데 고생길에 또 들어서야 하나 하는 고민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입학을 1년 미룬 채 적당히 다닐 교육시설이 없어 집에 있는 아이를 보며 느끼는 심란함과, 가족들의 끊임없는 권유에 갈등하던 나는 일단 원서를 넣어 기로 했다. 입학 허가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으니 일단 시험 점수라도 받아놓고 원서라도 써 보자는 마음이었다. 시험 준비는 차치하고 시험 보러 갈 시간을 빼는 것도 쉽지 않았던 나는, 올해 안되면 내년에 또 해보자는 마음으로 대학원 지원을 시작했다.   

 



         특수교육 분야에 너무나 무지했기 때문에 오히려 학교는 비교적 빨리 결정했다. 사실 학교의 인지도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조건 날씨가 온화한 곳인 캘리포니아와 밴쿠버 쪽으로 학교를 찾아보았다. 이때 놀란 것은, 캐나다는 미국에 비해 대학원 과정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었고, 전형 요강도 매우 달라서, 시험 점수와 돈만 내면 되는 미국과는 달리, 캐나다의 전형요강은 교수와의 협업 과정이나 에세이가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러한 전형 요강에 따라 캐나다의 한 학교의 교수에게 연락했더니 그 교수는 심리학 전공 쪽 배경이 아니면 뽑지 않는다고 연락이 왔고 그런 전공과 전혀 관계없던 나는 캐나다 지원을 초반부터 포기하고 미국만 지원하게 되었다. 



         유학을 와서 공부를 하다 보니 알게 된 것이지만, 자폐는 꼭 특수교육에서 연구하는 것은 아니다. 심리학, 뇌 과학, 인간 발달학 (human development) 등등 여러 과에서 연구하는데, 유학을 준비하던 당시는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전무해서 무조건 특수교육 (special education) 전공이 있는 곳을 3군데 지원했고 11월 말에 원서를 냈는데 의외로 곧 1월 초에 UC Santa Barbara에서 입학 허가가 나왔다. 



        이때쯤에는 거의 유학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 같은데, 막상 입학 허가가 나오니까 새로운 시작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입학 허가도 나왔는데 안 간다고 하면 나는 자식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는 그런 엄마가 될 것만 같았던 두려움도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이 공부를 통해서 어려움을 겪는 나와 비슷한 가정을 좀 도와주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과 신앙적 확신 같은 것이 내 두려움을 조금은 눌렀던 것 같다.          




        많은 사람이 나의 산타 바바라 유학을 좋아해 주고 응원해 주었다. 대부분 산타 바바라에 와 본 적이 없지만 그들은 그냥 그렇게 들었기에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의 교육에도 찬사를 보냈다. 이들의 찬사는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마 실리콘 밸리의 환상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산타 바바라는 돈 많은 백인들에게만 좋은 곳이고 (최근에 온 해리 왕자 부부처럼), 캘리포니아의 교육은 미국 전국의 교육 수준으로 따졌을 때 그다지 칭찬받을 수준은 못 된다고들 한다. 특히나 특수 교육 쪽은 195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이민자가 늘 많았던 캘리포니아는 교육의 불평등과 차별이 가장 교묘하게 발달 한 곳 중 하나라는 걸 이곳에 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당당한 자폐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