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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선 최금희 Aug 15. 2022

나를 찾아 삼만리

北女의 문학 서재 1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학'

남쪽에서 만난 무수한 타자들


나는 15년 전 처음 남쪽에 도착하던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서는 버스 안에서 수많은 고층빌딩과 익숙하면서도 낯선 억양들, 사람들의 향기, 옷차림 등 모든 것이 나에게 신선함 그 자체였다. 중국에 체류할 때 한류드라마를 여러 편 보아서 어쩌면 익숙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으나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경험들은 내 안의 또 다른 나 - 즉 '타자'들과 상견례를 하게 다.

나서 자란 고향 청진을 떠나 중국에서, 몽골에서, 한국에서, 모스크바에서 보낸 20여 년 동안의 길고 긴 타향살이에서  만난 타자들로부터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그 과정은 유년과 동년 시기를 함께 알고 지낸 동무가 아닌, 나를 나아 키워주신 부모님도 형제자매도 아닌 철저히 낯선 사람들과의 관계 형성이었고 그 속에서 나 또한 새로운 '나'를 발굴하고 발견해가는 과정이다.


'타자'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타자'란 무엇인가?  한자로 보면 그 타(他), 놈 자(者) 자로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뜻인데 개인적으로 아무리 들여다 보아도 사실상 매우 어려운 용어다. 레비나스의  「타자 윤리학」은 '주체'와 '타자'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타자 윤리학(Emmanuel Levinas, 1906~1995)


레비나스는 리투아니아 출신으로써 프랑스에서 유학을 한 유대계 철학가이다. 레비나스는 데카르트의 사상에서 인간은 무한 앞에 선 유한한 존재라는 것에 주목하면서 유한한 존재인 주체는 상대인 타자를 주체보다 우월하고 숭고하게, 무한한 관념으로 봐야 한다고 보았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서 타자가 있어야 하고 따라서 나의 사회가 있으면 타자의 사회도 있어야 하기 때문에 관계를 맺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나' - 주체의 고유한 것은 혼자일 때보다 '타자'와의 관계가 형성될 때 성립되고 더 잘 나타난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청진에서 살다 남쪽 지방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는 나에게 이 사회는 굉장히 '타자적'이었다.


내가 남쪽에 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하루도 빠짐없이 뉴스를 들으면서 메모하고, 도서 「한국사」 1, 2권을 정독한 거였다. 일단 또 다른 사회로 왔으니 이 사회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고, 뉴스를 통해 한국의 현재를, 역사책을 통해 한국의 과거를 이해하려 했다.


그 과정에 100세 인생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발견, 당시 34세였던 나는 이제 4년을 공부해도 앞으로 30~40년을  살아가는데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서른다섯에 만학도로 대학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지금까지 나는 무수한 타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호기심과 편견, 동정과 위선, 멸시와 차별, 부러움과 찬탄 등과 부딪쳐 왔다. 또 한편으로는  내 안의 성장하는 자아 - 또 다른 나(타자)와 끊임없는 전쟁을 치르면서 살고 있다. 물론 많은 경우들은 상대적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슬프고 비참하기도 했고 좌절하고 싶은 적도 많았다.


레비나스는 타자가 '동일성'에 대한 '타자'로서 자신의 동일성을 보존하고 강화하려고 한다고 보았다. 다시 말해서 A는  A로,  B는 B로 각각의 존재자들을 동일성으로 규정해 버리기 때문에 그것들은 각각 주체일 수밖에 없으며, 서로의 동일성을 고집하므로 적대와 폭력만이 있게 된다고 했다.


「타자 윤리학」을 읽기 전에는 "세상이 왜 나를 알아주지 않을가", "내가 남쪽에서 태어났더라면" 등 나의 존재 자체에 대해 괴로워하였다면, 책을 읽은 후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또 다른 '나'와 나와 다른 타자들이 각자의 동일성을 고집하는 것은 어쩌면 본능적이라는 너그러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살기 위하여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열린 맘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이 필요했고 그런 과정의 연속속에서 나는 성장한다.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 의식적으로 나부터 세상을, 나부터 타자를, 나부터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대하려고 있는 노력을 다하고 있다.


나의 룸메이트들


결국 나의 삶은 '내적 타자'와 '외적 타자'와의 끝없는 연결 속에서 진행되어 왔다. 그런 의미에서 내 가슴 깊은 곳에서 서로 반항하고 대립하면서 올라오는 나의 자아들을 룸메이트라고 부르고 싶다. 앞으로 남은 여정에서도 만나게 될 룸메이트들과 잘 지내기 위해 지금까지 만난 나의 룸메이트들을 더 잘 이해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


뿐만 아니라 나를 멸시하거나 편견으로 대하거나 미워하는 타자들도 이해하려고 애쓰고 싶다. 이런 나의 삶이 조금은 외롭고 힘들지만 나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주체와 타자의 관계는 각자가 가진 다른 동일성을 긍정할 때 형성된다.
                                                                            -레비나스-


평소 많은 분들이 내게 하는 질문이 있다. "왜 하필이면 남한에 와서 중국문학과 러시아 문학 - 톨스토이를 전공하게 되었나요?"


그 첫 번째 이유는 남북한을 경험하고 한반도의 주변국인 중국과 러시아를 공부한다면 언젠가는 내가 할 일이 반드시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나의 이런 소신은 학부에 입학할 때부터 지금까지 견지해오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문학을 공부하면서 만난 작가와 작품 속의 타자들과 늘 대화를 하고 그 과정에 나다운 '나'를 끊임없이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석사논문을 톨스토이 작품의 타자성에 대하여 연구한 것은 운명이고 필연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박사논문에서는 어떤 타자성에 대해 연구할지 또 다른 기대에 부풀어 오르고 있다. 나는 오늘도, 앞으로도 또 다른 나의 자아(ego)를 찾아서 고군분투해 갈 것이다. 그 길에서 만나게 되는 타자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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