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야근이다.
거의 일주일의 2-3일은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는 것 같다. 내가 다니는 회사는 저녁 식사 비용 이외에 야근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 회사다. 그래서 웬만하면 모두가 야근을 피하는데, 어쩌겠나? 맡겨진 업무를 마무리 지어야 하는 입장에선 야근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나의 경우 몇 가지 일을 번갈아 가며 진행하는 업무라서, 야근의 빈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편이다. 급하게 정리해야 하는 여러 프로젝트를 상황에 맞춰 치고 빠지는 일을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현재도 세 개의 프로젝트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여러 팀의 젊은 엔지니어들과 야근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낮에는 어린 팀원들과 업무 외에 다른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다. 그네들도 시간에 쫓겨 마감 시간을 어렵게 맞추는 실정이다. 그러나 야근을 위한 저녁 식사 자리는 그냥 지나쳤던 어린 직원들과 유대감을 갖고, 그들의 관심사를 들을 수 있는 잠시나마 여유로운 시간이다.
“다미 씨, 요즘 20대 친구들은 월급 받으면 뭐부터 해요? 요즘 친구들 사이에 가장 유행하는 아이템이 뭐가 있어요?”
생기발랄한 20대 초반의 어린 친구들과 접점이 없었던 나는 요즘 어린 친구들 사이에 유행하는 것들이 궁금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답은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주식이요.”
“주식을... 해요? 아직 주식하고 그러기에 좀 어리지 않나?”
순간 놀란 마음에 꼰대 같은 소리를 하고 말았다.
“제 또래 친구 중에 주식이나 코인 안 하는 친구들 없어요. 대학 다니는 친구들도 아르바이트해서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해요.”
“어, 그래요? 다미 씨는 어디에 투자하고 있어요?”
“저는 ‘삼전(삼성전자)’만 사요. 코인에 투자해볼까 했는데, 그럴만한 돈도 없고 위험해 보여서요.”
나의 21살 때와는 다른 삶을 사는 어린 친구들에게 무척이나 놀랐다. 월급 받으면 일부 은행 적금에 넣고, 친구들과 어울려 술 한잔 할 생각부터 했던 나다. 돈을 모으면 ‘차를 살까?’, ‘여행을 갈까? “를 고민을 했었지만, 지금의 친구들은 ’어떻게 월급을 이용해서 재테크를 할 것인가?‘ 를 고민한다.
오십 전, 후의 우리 세대는 모든 관심사가 부동산에 몰려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식에 대해서는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이 있을뿐더러, 코인의 경우는 일부 관심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 아예 지식이 없기에 접근 자체가 어렵다.
하지만 지금의 어린 세대들은 부동산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여러 종류의 재테크를 하고 있다. 무엇보다 20대, 30대들의 재테크 열풍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과감하고 무모할 정도로 저돌적이다. 회사에서도 스마트폰을 켜놓고 증권 현황을 지켜보거나 코인의 동향을 체크하는 어린 친구들이 있을 정도이다 보니 이러한 현실이 더욱 실감이 간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지금의 20, 30대들은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장이 최고점에 다다랐던 시기를 보고 자란 세대들이다. IT 벤처기업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부동산과 주식 등을 통해 벼락부자가 된 이들이 주변에 심심치 않게 출몰했다. 그리고 2세, 3세들의 부의 대물림을 보면서 자란 세대들이다. 드라마에서는 재벌 2세가 실장님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가난한 어린 여직원과 로맨스에 빠지기도 하고, 심지어 ’ 꽃보다 남자‘와 같은 드라마는 재벌집 황태자들이 한 여자를 중심으로 기꺼이 조연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보여주는 드라마지만, 부의 세습이라는 판타지를 심어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샘플인 샘이다.
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자신의 처지를 보게 되는 나이가 될 때쯤, 그들은 깨닫게 된다. 자신들이 드라마와는 다른 현실을 살고 있다는 것을. 더구나 지금 처해 있는 현실이 어린 시절보다 못하다고 느껴지는 순간 그들은 미래에 대한 투자를 조금이라도 일찍 시작할 수밖에 없게 된다.
”저는 늦은 편이에요. 다른 친구들은 다미 씨처럼 스무 살 때부터 시작했거든요. “
함께 식사하던 24살의 같은 부서의 선배가 말을 거든다.
나와 같은 기성세대의 시각으로 보면, 지금의 시대가 그들에게 재테크라는 또 하나의 관문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다. 내가 처음 사회에 길을 들어설 때 만해도 하나의 분야에서 자리를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의 세대는 자신이 먹고사는 분야 이외에도 각자가 이루어야 할 것들이 많아졌다. 부모가 물려줄 것이 없는 어린 친구일수록 재테크는 하나의 신념과 같이 그들의 삶에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다.
나는 그들의 과감한 재테크에 대해 ‘무모하다’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다. 나 또한 직장을 다니면서 필요에 따라 청약을 넣기도 하고, 주식에 투자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시대에 맞는 재테크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그리고 월급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기에 앞으로는 더욱 이러한 투자에 관한 관심은 커져만 갈 것이다.
다만, 선배로서 내가 우려하는 것은 ‘그들의 투자가 정리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내가 이야기하는 정리란, 투자에 관한 포트폴리오 또는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가능성이 낮은 위험한 투자에 적극적이라는 점이 크게 우려스럽다. 내가 주변에서 접한 사례들이 모두를 대변할 정도로 일반적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를 하는 이들도 있다는 점에서 이야기해 볼 만하다고 본다.
얼마 전, 사촌 동생 중 하나가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고 연락이 왔다. 나를 비롯한 또래 친척들이 모여 축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별반 내세울 것이 마땅히 없는 동생이다. 굳이 찾는다면 어디를 가나 연애는 끊임없이 한다는 점과 세상을 참으로 쉬운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것 정도이다. 어디서 그러한 자신감이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세상의 돈은 다 긁어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친구이다.
“형, 내가 아는 선배가 있는데, 그 선배가 뷔페에서 일하면서 일 년에 1억씩 벌어. 나보고 같이 하자는데, 한번 해볼까 생각 중이야. 일 년에 1억씩 벌면 기동성 있게 차부터 뽑고, 집을 사야겠어. 그래야 형 같은 독거노인 안 될 거 아니야. ”
“뷔페에서 일하는데 일 년에 1억을 번다고? 혹시 거기 매니저? 아니면 행사 기획자로 일하는 거니?”
“아니, 접시 닦아, 테이블 세팅도 하고.”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을 그는 스스럼없이 이야기했다.
“미친놈아, 알바하는 사람이 어떻게 일 년에 일억을 버냐? 그것도 경력이 일 년밖에 안 됐다면서.”
“그 선배가 일 년에 일억을 번다고 그랬어!”
그 선배의 말은 자신이 경력을 쌓아서 매니저급으로 진급하고 행사 등을 많이 유치하는 위치에 서면, 일 년에 1억 도 벌 수 있다는 개인적인 바람이었다. 사촌 동생은 1억이라는 말에 개인적인 바람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당연히 이번 결혼도 없지 않아 쉽게 결정한 면이 있었다. 오해할까 봐 하는 이야기지만, 제수씨가 문제가 있거나 이 결혼 자체가 문제 있다는 것이 아니다. 돈 한 푼 없이 은행 빚만 몇억을 짊어지고 결혼을 감행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결혼할 거면, 전세라도 얻어서 들어가야지? 얼마간의 생활 비용도 있어야 하고?”
“아이 씨, 이번에 결혼 비용 쓰려고 돈 좀 모았는데, 코인에 넣었다가 깡통 됐어.”
“뭐? 그 돈을 코인 사는데 넣었다고?”
“응, 작년 말에만 들어갔어도 제대로 한번 먹는 건데, 올 초에 들어갔다가 다 날렸어.”
자신의 투자 실패를 잘못된 투자 시점으로 미루는 모습이었다. ‘과연 작년 말에 코인을 샀다고 해서 실패한 투자가 성공한 투자로 바뀌었을까?’라고 생각을 속으로 해본다.
결혼식을 한 달도 안 남겨놓은 새신랑을 혼내기 뭐해서 살살 달래 가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비트코인 산거야?”
내가 아는 유일한 코인은 ‘비트코인’ 밖에 없었다.
“아니, 비트코인 말고 다른 것들. 이더리움, 바이넨스 코인, 리플, 테너... 등등.”
그의 입에서 나오는 코인의 종류를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동생에 대한 답답함이 다시 한번 튕겨져 나왔다.
“미친놈아! 지난번에 주식에 넣었던 돈도 다 날렸다면서, 제수씨는 이 사실 아냐?”
“응, 얼마 전에 이야기했어. 사실 그전부터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더라고.”
사촌 동생이 친구들과 모이면 각자 투자 내용을 공유하고, 수익률을 가지고 자랑하기 바쁘다고 한다. 가끔은 자신이 낸 수익을 바탕으로 친구들에게 주식 및 코인을 추천하기도 한다. 나도 소액의 주식을 가지고는 있지만, 듣고 있자면 그의 투자 방식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투자 방식을 따라 하기 때문이다.
큰 특징을 두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먼저는 소문을 듣고 피크 때 투자한다. ‘형,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들은 정본데...‘ 가끔 만날 때마다 나에게 습관처럼 하던 멘트였다. 그러나 그가 투자할 때마다 가격은 수직 낙하를 했고, 남은 돈이라도 구하겠다며 ’ 손절매‘를 하고 만다. 아마도 다음에는 내가 그를 상대로 해야 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는 남들이 돈을 벌었다는 종목을 따라 들어가는 투자 방식이다. 남들이 벌었으니 자신도 안전하게 벌 수 있다는 생각에 투자를 감행한다. ’ 형, 형이 주식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래. 이 종목 들어가서 내 친구들 다 벌었다니까?‘ 그렇다. 그들은 벌었고, 동생은 잃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실패한 투자에 대해 물어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신경질을 내기가 일수였다.
내가 그에게 투자에 대한 철학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번 돈이니 어떻게 쓰던 나는 상관이 없다. 다만, 단돈 십만 원을 투자하더라도 잃지 않는 공부를 했으면 했다.
문제는 동생이 나의 이러한 조언을 듣기 싫어한다는 점이다. 친척들이 모이면 정치 이야기와 종교 이야기는 피하라는 말을 듣는다. 나는 한 가지 더 추가되어야 한다고 본다. 재테크에 관한 이야기이다. 돈을 벌어도, 돈을 잃어도 좋은 소리 듣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아니면 코인이든 간에 현재를 사는 모든 이에게 재테크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월급 만으로 살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고, 평생직장이란 개념도 희미해졌다. 내 경우도, 하나의 기술을 배우면 평생 먹고살 수 있을 거라 믿고 따랐지만, 지금까지도 새로운 기술이 소개되면 그곳을 배우기 위해 전문가들을 수소문하거나 자격증에 매달리는 삶을 살고 있다.
지금 새롭게 사회 활동을 시작한 초년생들과 내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내가 나의 사촌과 다른 것은 재테크를 바라보는 관점이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은퇴 후에 얼마나 오랫동안 나의 삶을 영위할지는 모르겠지만, 재테크에 관해서는 ’ 평생을 함께해야 하는 일종의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오늘의 결과에 대해 세상을 얻은 것처럼 좋아할 것도, 나라를 잃은 것처럼 좌절할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내 사촌을 비롯한 주변의 젊은 친구들이 재테크를 마치 게임처럼 여긴다는 점이 안타깝다. 남들이 갖지 못한 아이템을 습득하듯이 주식과 코인을 모으고 실패를 반복한다. 그러나 현실은 게임과 달라서 모든 것이 이익이 되지 않을뿐더러, 큰 손해를 안겨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들에겐 재테크를 하는 이유, 돈을 버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단순히 돈을 버는 목적에 매몰되지 않을뿐더러 실패를 줄일 수 있다. 내 친구의 경우 주식을 하는 이유가 노트북을 사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는 소소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이 도달하면 과감하게 시장을 빠져나온다.
지금은 어떤 목표를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소하게나마 내가 돈을 버는 목표를 만들고 그에 다가가기 위해 한 걸음씩 움직인다면, 이에 따른 결과는 내가 걸어간 거리보다 가깝게 어느 순간 다가와 있을 것이다. 내가 사촌 동생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