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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유제이 Jul 28. 2021

런던으로 가는 입장권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인생의 방향이 정해질 때가 있다.

2012년 서울의 어느 가을날이었다.


토요일 아침, 눈을 뜨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전날 밤 친구 A와 오랜만에 밤새도록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고, 그녀는 우리 집에서 잠이 들었다.


며칠 전 지하철역에서 영국 유학박람회 포스터를 보았었다. 대학 시절 미국에서 일 년을 살았던 이후로 다시 나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박람회에 가봐야지라고 생각했고 그날이 오늘이었다.


당시 나는 광고 회사를 관두고 어느 기업의 마케팅팀에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고 있었다.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는 메시지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 이끌렸지만,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건을 더 팔기 위한 목적에 동참하는 일이, 당시에는 도저히 내키지가 않았다.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기대감과 현실에서 하고 있는 일 사이에 간극이 컸다.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서 살고 싶었고 내가 매일 하는 일에서 이를 실천하기를 바랐다. 나에게 더 잘 맞는 일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더 공부하고 찾아보고 싶었다.


모아둔 돈은 딱히 없었다. 좀 더 아끼고 열심히 일을 하면 언젠가는 유학을 갈 돈이 생기지 않을까. 막연한 생각을 품고 나의 이십 대를 살아가는 중이었다.


아침 늦게 일어나서 친구와 간단히 뭘 좀 먹었다. 날씨도 흐린 데다가 금쪽같은 토요일이다. 그냥 집콕하고 싶은 날. 그녀에게 은근슬쩍 물어보았다.


“내가 어제 말했던 그 박람회, 오후라서 시간이 좀 남긴 했는데 너무 귀찮아... 그냥 가지 말까?”

(솔직히 그녀가 가지마라고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왜~ 그냥 한번 갔다 와. 너 원래 유학 가고 싶어 했잖아. 좋은 정보가 있을 수도?”


그래. 잠깐 보고 별로면 바로 집에 와서 쉬면 되지 뭐. 조금은 귀찮은 마음으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비 오는 날이라 한산했던 지하철을 타고 다행히 멀지 않은 시청 옆 어느 건물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런던의 한 학교에서 교수님이 오셔서 세미나를 한다길래 앞자리에 얼른 자리를 잡았다. 뒷 자석은 어느덧 학부모와 어린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웅성웅성 긴장감이 돌았다.


잠시 후 하얀 수염과 꼬불꼬불한 머리 스타일에 나비넥타이를 하고 있던 그가 걸어 들어왔다. 런던에서 온 교수님은 역시 스타일부터 다르구나 싶었다. 관심 있는 것에 적극적으로 표현을 하는 편인 나는 사이사이 손을 들어 질문을 하고 생각을 말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세미나가 끝이 나고 그와 따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평소 디자인 일을 하면서 가지고 있던 고민을 털어놓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하다가 어느 순간 그가 내 눈을 응시하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열정을 가졌고 사회에 기여를 하고 싶어 해요. 우리 학교는 그런 디자이너들을 환영해요. 실제로 커리큘럼에 디자이너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철학적으로 고찰하고 다방면으로 실험해볼 수 있는 기회도 많고요. 당신이 우리 학교에 꼭 지원을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고는 추천서로 보이는   짜리 종이에 무언가를 쓰고는 덜컥 나에게 건네주었다. 어느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엄청난 일들이 몰려올 것만 같았떨림이 아직도 생생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그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 신인 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빗대어 ‘소설가로서의 입장권'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날은 나에게 런던에서 살 수 있는 입장권이 주어진 날이었다. 하루키의 표현을 빌려 ‘어느 날 돌연 뭔가가 눈앞에 쓱 나타나고 그것에 의해 모든 일의 양상이 확 바뀐다'라는 느낌이었다.


비록 당장 유학을 갈 돈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영어 점수와 포트폴리오, 인터뷰 등 실질적으로 해결해야 할 거리가 겹겹이 쌓여있었지만 그런 건 그냥 하면 되겠지 싶었다.


며칠 후 부모님과 오빠를 불러 모았다. 상황을 설명하고 나는 앞으로 몇 달간 유학 준비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기간 동안 돈을 더 모으기 위해 회사를 계속 다닐 테다. 그래도 자금이 부족하니 투자해 주면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갚겠노라고. 스스로가 뻔뻔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나마 보상을 받아야겠다는 얄팍한 마음도 조금은 있었다.


‘그 교수는 그냥 학생 한 명 더 유치하려고 그러는 걸 수도 있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나에게는 ‘이렇게라도 멀리 떠나야 해, 이곳은 지긋지긋하다고’라고 외치는 내면의 오랜 저항에 응답해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 반년 간 하루에 평균 네 시간 정도를 잤던가. 회사를 다니면서 점심시간에는 카페에 가서 공부를 했고 퇴근하면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와서 저녁을 후딱 차려먹고 근처 새벽까지 열려있는 카페에 가서 또 공부를 했다. 몸은 피곤했지만 런던에서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쁘고 설레었다.


지금의 나는 건강을 해치면서 까지 무언가에 매달려서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지만, 마음이 불안정했던 그 시절엔 그게 일종의 생존법이었다.




그로부터 9년이 흘렀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그날 그 장소에 가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 삶은 어땠을까? 나는 지금 런던에 있을까? 그날 친구가 가보라고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인생에서 어떠한 사건 혹은 누군가와의 만남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곳으로 나를 데려다줄 때가 있다. 그때 M 교수님을 만난 것 외에도, 어떤 장소에서 누군가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인해 좋은 기회를 얻게 되는 일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하고 싶은 일은 웬만하면 해보고, 가고 싶은 장소는 (귀찮은 마음이 들어도) 되도록이면 가보려고 한다.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간절히 바라면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이 그리 반갑지 않을 수 있다. 간절히 바랬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던 경험으로 그건 그저 운이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거나, 심지어 마음껏 꿈을 품어보지도 못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럴 때가 있었고, 또 이루어질 수 없었던 일들이 있다.


저 문장에는 오해가 있다. 간절히 바라기만 한다고 그 꿈이 저절로, 그것도 내가 바란 그 모습 그대로, 착착 이루어질 리가 있을까.


한 때 내가 참 좋아했던 문장, 인터넷 상에서 꽤 유행했던 카툰이 있다.


“세상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지네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걸요!”


빨강머리 앤이 두 팔 벌리고 행복 가득한 표정으로 한 말. 지금 봐도 힘이 나는 말.


나에게 비로소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열심히 찾고,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일까를 고민하는 것. 진심으로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으로 목표를 향해서 소신 있고 담담하게 나아가다 보면, 크고 작든 기회는 반드시 온다고. 나는 믿는다. 적어도 지금 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운이 좋게 꿈으로 들어서는 입장권을 얻고 나서는 마음을 다해 그 순간을 누려야 한다. 그곳에는 기쁨, 슬픔, 고통, 불안 등 다양한 감정 요소가 있을 것이다. 무서울 땐 무서운 데로, 힘들 때는 힘든 데로, 신날 때는 신난 데로. 그 여정의 흐름에 나를 맡긴다. 어느 순간 꿈(목표) 하나가 이루어져 있고, 한층 성장해 있을 것이다.


혹여나 입장권을 놓쳤다고 해서 크게 낙담하지는 말자. 어떤 형태로든 기회는 또 온다. 이 번이 아니면 다음에라도 꼭.


가끔은 꿈을 이루었다는 느낌이 들고 나서 공허함이 들 때도 있을 테다. 하지만 이것조차도 꿈을 꾸는 인간에게 주어진, 인생의 의미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다시 한번 고찰해 보라는, 삶이 주는 선물 같다.


그때는 깨달음을 마음에 새기고, 그 시절의 나에 맞는 또 다른 꿈을 그려나가면 된다.


소신 있고 담담하게. 꿈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기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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