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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yoon L Dec 19. 2023

첫인상

첫 이민

파라과이

난 남미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파라과이란 남미 가장 자장자리에 심장처럼 유치한 크지 않은 나라인데, 주변에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로 둘러 쌓여 있다.  위치가 가운데라 자기네 나라가 남미의 심장이라는데 뭐 택도 없는 후진국이었다.  이 멀고도 이상한 나라를 어떻게 가게 됐는지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써보겠다.

초등학교 5학년쯤 엄마는 우리가 다른 나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다른 나라로의 이사, 새로운 나라에서의 생활이 어떨지 그 5학년 짜리 애가 짐작할 턱이 없으니 난 그저 비행기를 타야한단게 설레었다.  하지만 어릴때부터 이어온 우량아 콤플렉스에 설렘반 걱정반.  승무원이었던 사촌 언니에게 조심스레 물어봤다.  “언니 나처럼 몸무게 많이 나가는 어린이가 타도 돼?”  언니는 비행기 들어가기 전 양말 벗고 체중계에 한 번씩 올라갔다 가는 거라고 했다.  그때의 공포는 정말이지…


집을 정리하고, 짐을 정리하고, 학교에 서류를 내고 그렇게 우리 다섯 식구는 이민을 떠났다.

처음 타보는 비행기가 36시간 장시간 비행기라니, 비행기라면 신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 비행기 오르기 전 체중을 안재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때 우린 Japanese Airline을 타고 도쿄로 가서, 한참 기다렸다, LA 행 비행기를 타고, 트랜스퍼를 한 후 지금은 없어진 브라질 항공 Varig을 타고 브라질 상파울루를 거쳤다, 거기서 작은 비행기로 파라과이를 갔다.

오랜 여정에 어린 내 동생은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유일하게 비행경험 있던 엄마의 의견으로 사갔던 육개장 사발면은 그때 우리 식구에게 그리고 딱 한 팀 있던 한 한국부부에게 구원이었다.  유일한 한국사람 부부 중 여자가 우리가 사발면 먹는 걸 보고 한참을 앞에 서있더니 하나만 주면 안되겠냐 했다.  엄마는 안 됐어서 우리가 좀 덜먹지 라며 우리 식구 수 대로 산 라면 중 하날 나눠줬고 그들은 여태본 초콜릿 중 가장 큰 초콜릿을 고맙다며 전해왔다.  그때 그 비행기는 2층으로 돼있던 비행기였는데 (아마도 2층은 일등석 아니었을까…) 그 한국부부는 2층에서 내려왔다.


영겁의 시간 같은 여정이 지나고 우린 파라과이에 도착을 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파라과이는 맨 빨간 흙에 건물하나 없이 띄엄띄엄 선인장 같은 나무들만 있었다.  우리가 내릴 도시에 다가가자 낮은 벽돌 건물들이 좀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비행기라 통로와 비행기사이가 약간 틈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맡아본 그 나라의 공기.

갑자기 사우나의 뜨거운 공기를 누가 내 얼굴과 목에 훅~ 하고 분 느낌.

약간의 잡음이 있었지만 우린 무사히 공항을 빠져나왔다.  기억하기론 그때가 4월. 한국은 봄이었지만 그 나란 폭염이 한풀 꺾긴 초 가을이었다.  말이 가을이지 매우 더움과 조금 더움 밖에 없는 열대 지방에서의 가을은 20도 후반 30도 초반의 온도였다.  다행히 습기는 없어, 기분 나쁜 더위는 아니었지만, 매끈매끈한 천이  덧데어진 내 연두색 면사파리는 갑자기 철에 맞지 않게 여름에 파카입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숙소에 도착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다음날까지 우린 발이 땅에 닿은 느낌이 안 들고 정신이 안 차려 졌다.  이튿날인가 식구들 다 같이 숙소 주인아저씨가 일려 준 데로 시장엘 놀러 갔다.  처음 맡는 냄새, 처음 보는 색의 사람들, 처음 보는 풍경들.  어디다 눈을 둬야 할지 몰라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햇빛 보고 자란 야채와 과일이 흔해터진 나라에서 제일 먼저 우리가 산건 바나나 한박스 였다.  (한국에서 그땐 바나나 하나의 가격이 1000원쯤, 삼양라면 안성탕면 한봉지가 100-200원 하던 그 시절이 였으니 비싸도 보통 비쌌던게 아니다) 바나나좀 실컷먹자며 비행기에서부터 떠들던 나와 내동생에게 아빠가 꿈을 펼쳐보라며 한박스를 샀다.  박스의 크기는 바나나 한아름 가지가 다 들어가는 정도의 크기였고, 한가지에는 바나나가 10개 이상달린 줄이 너덧개쯤 있었다.  대충잡아봐도 바나나 40-50개쯤.  그때 그 한박스 가격이 한국돈 2000원 정도 였다.  한국에선 바나나 두개 살 가격.

그때 나와 내동생은 이틀을 바나나만 먹었는데도 반도 못먹고 변비가 걸려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머리속에서 맡아지는 빨간흙의  파라과이 냄새, 천연찬란했던 야채들의 색과 그 나라 사람들의 웅성거림.  

살아있는 사람들 색깔들.

투박하고, 촌스럽고, 느리지만 살아있는 생명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때의 그 풍경.


파라과이를 생각하면 느껴지는 것들은 그 첫날봤던 파라과이의 첫인상으로 지금 까지도 내 머리속에 각인되 있는것이다.

그 냄새와 풍경, 색깔과 맛 그게 그리워서 난 가끔 여행갈 기회가 생기면 파라과이를 다시 가볼까 싶다가도, ‘에이….갈때가 얼마나 많은데 거길 가’ 라며 두번째 마음에 손을 들어준다.


아마 자아가 형성되던 말랑말랑한 영혼을 가졌을때 여서 그럴것이다.  모든게 아름답게 감성충만하게 느껴졌을 그때이기에…아마 지금처럼 자본주의 색안경 장착한 굳은살 배긴 영혼이 다시 간다면 아마 예전에 느꼈던 그 파라과이의 그 인상을 어른의 잣대로 재고 있을것이다.  그런의미로 나의 그 파라과이 첫인상을 보존하려면 다시 가지 않는게 맞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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