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식: 김치말이국수
야식
아이의 방과 후 액티비티로 이른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어김없이 밤 10시-11시쯤 남편은 “저 혹시 배고프지 않아?” 라며 문자가 온다. (같은 집안에서)
남편은 머릴 많이 쓰는 직업이라, 어느 날 작업량이 많아 과부하가 걸리기라도 하면 밥 먹은 지 한두 시간 안에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고 배가 고파 속이 쓰리다고 한다. 결혼초 난 이런 이상한 사람을 그저 입이 심심한가 보다…라고 생각해서 그저 군것질 거리나 던져주고 말았다. 이상한 그와 결혼 10년 차 이제는 작업양 많은 날엔 어김없이 야식을 준비한다.
저녁으론 아이가 좋아하는 치킨가스를 먹었으니, 야식으론 뭔가 담백한 걸 먹여야 했다.
오늘의 야식은 김치말이 국수.
마침 엄마가 해준 나박김치가 폭 익어서 신맛까지 나니, 제격이다.
냉면으로 해도 맛있지만, 오늘의 면 초이스는 소면이다. 삶아도 나는 밀가루풀 냄새 때문에 난 소면을 좋아하지 않지만 남편은 가장 좋아하는 면류가 소면이니 오늘은 그의 입맛에 맞추자.
소면을 적당량 삶는다, 조리법에는 3-4분 삶으라고 나오지만, 찬 국물에 들어갈 거니 4분 30초쯤 삶는다. 삶아진 국수는 손가락이 시릴 만큼 찬물에 얼른 헹궈 전분끼를 뺀다.
그동안엔 나박김치 국물 맛을 내야 한다. 신맛을 잡아야 하니 설탕 조금과 물이 들어갈 수 있으니 소금 약간으로 간을 한다. 되도록이면 김치 조각 건더기는 들어가지 않게 해야 깔끔하지만, 마지막에 김치만 모아 고명처럼 올려도 이쁘겠다.
별양념 안 하고 이렇게만 먹어도 좋지만, 참기름 조금을 마지막에 쪼르르 뿌려도 어울릴 맛이다. 난 오늘 담백하게 가기에 참기름은 제외하고, 낮에 삶아놓은 계란과 김치 조금을 고명으로 얹는다.
밖엔 눈이 무릎까지 쌓인 날씬데, 살얼음까지 살짝 있는 국물만 먹는 게 영 아쉬워 예전에 빚어놓은 만두도 5개 팬에 굽는다.
차갑고, 시큼하고, 달큼한 김치말이 국수를 크게 한입 먹고, 뜨거운 구운 만두를 연달아 먹는다. 차갑다 뜨겁다 하는 입안을 달래 가며 “아, 너무 맛있다” 하는 남편.
“이렇게 해주는 와이프가 어딨 어?!”라고 생색을 있는 데로 내고, 마침 오늘 보너스가 좀 들어왔다기에…
시작은 현모양처였으나 그 뽀나스 삥 뜯는 현모양아치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고 다시 작업하라며 먹여들여보내고 나니, 주방은 다시 초토화다. 난 손이 빨라 음식을 금방금방 하는 편이지만, 빠른 손으로 어지럽히는데도 일가견이 있다. 이걸 또 언제 치운담…
“넌 주방에서 노는게 재밌니?” 라던 J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하다.
뭐 냉동식품이나 라면 하나 끓여줬음 이렇게 주방이 초토화 되지 않았겠지만, ”아 너무 맛있어“ 라며 고마워 하는 남편을 보는거, 조금이라도 건강하게 먹였다는 뿌듯함에 오늘도 또 주방에서 유난을 떨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