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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yoon L Jan 21. 2024

맛있는 글

김치찜


밥반찬으로 내가 자주 하는 게 김치찜이다.

자주 해 먹으면 김치가 푹푹 줄어드는 게 눈에 보여 김치가 아니라 금치인 요즘 주부들에겐 부담되는 음식이지만, 친정엄마가 주변에 살아 김치를 자주 담가주시니 내가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사치일 것이다.

(사치가 기껏 김치찜이라니…)


김치찜은 포기김치로 만든다.

푹 익은 김치 한 포기를 속을 빼고 흐르는 물에 대충 헹군다.  속을 빼는 이유는 조리했을 때 깔끔해 보이기 위함이다.  푹익은 김치 안에 모든 양념 다 배어 있으니 속을 빼도 상관은 없지만 좀 아깝긴 하더라…

그렇게 김치 한 포기를 준비하고, 두꺼운 무쇠솥에 기름을 살짝 두른다. 거기에 돼지고기 한 덩어리와 김치를 넣는다.  돼지고기는 삼겹살보단 목살이 더 잘 어울린다.  덩어리는 자르지 않고 그대로 넣고 조리하다 음식이 다 되면 먹기 바로 전에 한입 크기로 썰어 담아내는 게 맛도 있고 깔끔하게 이쁘다.


아, 소고기 육수를 넣어야 하는데, 시판육수는 달거나 짜기에, 집에 육수 내어 논게 있다면 쓰지만 그렇지 안 타면 맹물에 집에서 만든 천연조미료를 넣고 끓인다.


양념은 천연조미료와, 된장 한 스푼, 파마늘, 고운 고춧가루, 건더기 없는 김칫국 한국자, 약간의 단맛을 위해 꿀 조금.

요즘은 꿀대신 아가베 시럽이란 걸 자주 쓴다.  꿀보단 더 달아 조금만 써도 음식에 감칠맛을 내준다.


천연조미료는… 집에 있는 국물낼만 한 건 다 모아서 음식철학 맞는 언니와 모인다.  각자 다른 재료 가지고와 보니, 보리새우, 멸치, 디포리, 가쓰오부시, 다시마, 마른 표고버섯이 나왔다.  

멸치와 새우는 마른 팬에 한 번씩 볶아 식혀두고, 모든 재료 다 같이 넣어 갈아준다.  이럴 때 빛을 발하는 게 내 바이타믹스 믹서기다.  

그 상황에선 루이비통이고 샤넬이고 무슨 소용이랴, 지금은 바이타믹스다. (아 샤넬은 건들지 말아야지…)


다 갈아놓고는  조미료의 맛을 봐야 한다.  재료의 비율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기에…

언니와 나는 마치 실험실의 과학자들처럼 혹은 기미상궁처럼 한 꼬집씩 먹어보고 맛을 음미하고 이걸 좀 더 넣자느니, 저걸 좀 빼자느니 하며 맛을 찾아간다.


가장 감칠맛이 나는 건 역시 가쓰오부시 지만, 많이 들어가면 좀 느끼한 맛이 날 수 있다.  보리새우가 많으면 국물이 달고, 다시마가 많으면 좀 쓸 수 있다.

그렇게 비율 맞춰가며 만든 천연조미료를 나눠가지고 오면 냉동보관해한 일 년은 쓴다. 우린 마치 계발에 성공한 과학자들처럼 ”오 그래 이거야…“ 라며 나눠가지고 다음 과학시간을 기약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천연조미료를 넣고 물을 김치와 고기가 반쯤 담가질 만큼 붓는다.  그러고 불은 중약에 놓고 한참을 끓인다.  맛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김치찜은 빨리하면 맛이 없어진다. 두꺼운 팬이나 솥에 뚜껑 덮은 채로 약불에 오랫동안 해야 마술처럼 맛있어진다.

최소한 30분에서 한 시간까지도 뭉근하게 조리는데, 국물이 자작하게 졸아 있고 같이 넣은 목살이 푹 익었음 완성이다.

이쯤에선 또 다른 사치를 부리는데, 들기름을 한두 바퀴 돌리는 거다.  이건 마치 잘된 화장에 세팅 미스트 뿌려 세팅하고 피부가 좋아 보이게 만드는 화장의 마지막 단계 같은 거다.  안 해도 상관은 없지만 하면 훨씬 효과 좋은…

하지만 들기름이란 건 참으로 구하기 어려운 재료이기에 자주 있지도 않지만 있어도 관리도 힘들고 두 바퀴는커녕 찔끔찔끔 아껴서 쓰게 된다.  


그렇게 완성된 김치찜을 앞에 꽁다리만 살짝 잘라 플레이팅을 한다.  그릇은 얄팍한 하얀 그릇 보단 투박하고 어두운 두꺼운 접시가 어울린다.  한쪽은 길쭉한 꽁다리만 자른 김치를 가지런히 놓고 한쪽은 먹기 좋게 자른 목살을 놓는다.  여기다 참깨도 흩뿌리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론 입안에서 겉도는 깨가 없는걸 더 선호한다.


먹기 좋으려면 사실은 김치를 한두 번 잘라 한 젓가락에 뜰 수 있는 게 좋겠지만 김치찜은 왠지 길쭉한 이파리 하나를 집어와 손가락과 젓가락의 합으로 쭉쭉 길게 찢는 게 정석 같더라.  그렇게 길쭉하게 가른걸 하얀 밥 위에 돌돌 동그랗게 올려 한입에 넣어 먹으면 밥은 뜨겁고 김치찜은 맵고 난리가 나지만, 그 맛은 … 치유이고 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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