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대로 책읽기] 아프고 슬픈 역사
5.18을 소재로한 <소년이 온다>는 잔혹한 폭력에 생을 마감한 한 소년의 영의 시선을 좇아 억울한 죽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흰>은 태어난 지 몇시간 만에 죽었다는 언니를 기억하려 노력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논한다. 4.3 을 소재로 한 <작별하지 않는다>는 어쩌면 생을 마감 했을 수도 있는 주인공 인선의 말을 통해, 그녀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겪었던 제주의 소개령, 서북청년단의 무자비함, 수십년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결코 "작별"하지 않은, 아니 "작별"할 수 없는 기억들을 현재까지 끌고 온다. 한강 작가는 혼(soul)의 등장이나 그것과의 대화를 통해서 역사적 사실이나 경험에 접근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소설 초반은, 어쩌면 <소년이 온다>를 쓴 작가 본인이 투영된 주인공 경하와, 제주의 깊은 산 속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인선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둘은 인선의 공방 근처의 산에 백여 그루의 나무를 심는 프로젝트를 준비하지만,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한 인선과, 더이상 그러한 프로젝트는 하지 않겠다는 경하가 작은 갈등을 일으킨다. 경하는 비워진 인선의 집에 새 한마리를 돌보기 위해 눈이 휘몰아치는 인선의 집으로 오고, 그곳에서 인선의 혼과 대화를 나누며 그곳에서, 그곳에 살던 인선의 부모가 과거에 어떤 경험을 했었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한국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유난히도 한국은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가 자주 있었다. 흑백으로 갈라치기를 하고,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죽여야 하는 적으로 치부하는 세상은, 기독교인이라도 예외가 아니었다. 공산당과 빨갱이는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한쪽 편의 사람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가지지 않은 채 남자는 물론이거니와 아이와 여자까지 무자비하게 살해했고, 뭍으로 잡혀간 수많은 남자들도 이곳 저곳에서 생명을 잃어갔다. 슬프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목은 "작별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읽힌다.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바뀌며 더이상 과거의 기억이 희미해 지는 세상에서, 그때 그 시절을 고통 가운데 견뎌내었던 그들의 역사와 작별하지 않아야 한다고 독자들에게 외치는 소리로 들린다. 주인공 인선의 엄마가 수십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