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타헤나 - Cartagena
도시에 갈 때면, 관련된 소설 한 권 정도는 챙겨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카페에 앉아 동네의 분위기에 젖어 읽는 소설들은, 전에 읽었던 때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소설의 작가 역시 내가 본 풍경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써 내려간 걸까?라는 의문을 갖으며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 역시, 또 하나의 재미이다(다 읽은 소설을 다른 여행객의 소설과 바꿔 읽는 재미도 있고).
산 블라스(San blas) 제도를 거쳐 파나마시티(Panama city)로 가기 위해서 들렸던 카르타헤나(Cartagena)는 콜롬비아 북부의 항구 도시다. 카리브해와 면해있는 그 도시는, 남미에서 수탈한 자원들을 유럽으로 나르기 위해 만들어진 중요한 항구였고, 스페인에 의해서 거대한 요새가 형성되었다. 해변을 가로막고 있는 성벽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아 그 역사를 지금까지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성벽에 서서 카리브해를 바라보면,
남미적 상상력을 나 역시 발휘할 수 있게 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마술적 사실주의(Magical Realism)의 거장이 쓴 '백년의 고독'을 카르타헤나에 잠시 머물면서 다시 보았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서 재구성된다.
황금 물고기가 내 뒤를 따라 헤엄치고, 노란 나비 떼가 날아오른다. 미녀 레메디오스가 알몸으로 거리에 나와 춤을 추고, 거구의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화가 난 체 달려 나간다. 골목 끝에서는 화려한 서커스단이 지나가고, 그 환상을 따라가다 만난 밤나무를 바라보면, 호세 아르카디오 부엔디노가 나무에 묶인 채 고독한 죽음을 맞이한다.
죽은 자의 유령을 보고 있다 보면, 쪼그라든 채로 내 어깨 위로 올라탄 우르술라가 내 귀에 속삭인다.
가문 최초의 인간은 나무에 묶여 있고,
최후의 인간은 개미 밥이 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카르타헤나는 소설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마을 마콘도(Macondo)와는 관련이 없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고향인, 카르타헤나부터 250km가량 떨어진 아라카타카(Aracataca)가 마콘도의 모태가 되었다(카르타헤나는 마르케스가 잠깐 머물렀을 뿐이다).
그렇지만 마르케스는 마콘도를 배경으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정치적 상황을 풍자한 이야기를 '백년의 고독'에 담았기에, 소설의 배경인 '마콘도'는 결국 남미의 '고독한 역사'의 축소판이고, 식민지 시대에 건설된 카르타헤나에서 내가 느낀 그 '고독'도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바나나 농장 학살의 이야기도, 전철이 들어와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모습도, 콜롬비아 북부의 어떤 마을에서도 고개를 들어 둘러보면 상상 가능한 이야기였기에, 그 지역을 방문하는 모든 여행객들은 하나쯤의 '고독'을, 그리고 '죽음'을 품고 간다.
돼지 꼬리를 단 아우렐리아노가 개미 밥이 됨으로써, 부엔디아 가문의 역사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카르타헤나에서, 아라카타카에서, 카리브해에서,
그리고 콜롬비아에서 고독한 죽음을 마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