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01] A의 이야기
본인이 소설속의 주인공이 아님을,
혹은 한낱 평범한 사람일 뿐이란 것을 언제 알게 되었는지?
미래에 어떤 것도 될 수 있다고 믿는 시기는 언제 끝났는지?
I의 경우에는 운이 좋았던가 혹은 나빴던가 하는 이유로 그 시기가 워낙 일찍이 찾아왔다. 어떠한 것을 배워도 보통보다 조금 못 미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삶은 무난했으며, 특별한 미래를 그리기에는 평범함이 드러나는 사람이었으니까.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올라온 중학교에서 A를 만나게 된다.
사실 I는 여전히 A와 어떻게 친해지게 되었는지 잘 모른다. 둘의 아버지가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각각 옆 반 반장이었다는 것. 똑같은 학원을 다니고 같은 선생님에게(하지만 다른 반에서) 배웠다는 것.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접점들이 많았다면 많았다고 할 수 있지만, 둘은 한 번도 같은 반이었던 적도, 같은 동네에 살았던 적도 없었다. 소꿉친구라는 말을 붙이기에도 머리가 얼마만큼 자란 후에야 만난 거니까. 결국 친구가 되기에는 드라마틱한 인연도 사건도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I가 기억하고 있는 청소년기(중학교, 고등학교, 재수시절까지)의 사건들은, A를 제외하고는 성립할 수가 없다. 아무리 사소한 기억이라도 A가 존재하고 있으며, 누군가와 나누었던 대화들의 문장 혹은 단어조차도 A의 흔적이 남아있을정도이다.
그러고 보면 청소년기의 I는 A를 동경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니, 현재까지도. A가 흘려가며 말하는 말 한 문장조차도 곱씹어 보고 기억하려 노력하고, 그의 말투를 흉내 냈으며, 그가 읽고 있는 모든 책들을 읽어보려 했다(그리고 30p가 넘어가기 전에 포기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이미 그는 파우스트, 카르마조프 형제들, 양철북등을 섭렵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I는 깨달았다.
세상은 확실히 평범한 I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저런 반짝이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거라고.
A는 하루를 쉼 없이 보냈다. 공부하고, 책을 읽고, 주식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심지어는 운동까지 하며 스스로를 가꿔나갔다. 그렇다고 젠체하는 샌님이었던 것은 아니다. 학교가 불합리한 일을 시키면 대자보를 붙이고, 교장선생님과 면담을 통하여 잘못된 것들을 바꿔나갔다(물론 학생에게는 힘이 없었기에 많은 부분들에서 실패했지만). 그러한 엄마친구아들 같은 모습에 선생님들은 환호했고, 주위에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이 가득했으며, 시기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A는 I를 어떻게 생각할까? 평범하고, 어설프게 무언가를 알고 있는 I를 볼 때마다 답답하고, 그냥 알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을지. I는 언제나 가장 친한 친구로 A를 꼽았지만, 항상 불안했었다. A가 I를 친구로 생각했는지 알 방법이 없었고, 그 때는 그걸 확인할 용기도 없었기 때문에.
이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A와 I는 7년이란 시간동안 반경 1Km 내에서 함께하고 있었고, 시간들을 공유했다. 대학에 가면서, 군대에 가면서 서로의 시간들은 엇나갔고, A에게 닥쳐왔던 여러 일들, 그리고 그의 학업에 의하여 다른 시공간에 살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I는 A를 20년 가까이 바라보며(물론 그 시간 중 대부분은 연락이란 게 되지 않았다), 주인공의 삶은 피곤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누구든지 소설이나 드라마를 볼 때 마다, 주인공에 동화되어보지만, 실제 그들의 삶은 역경과 고난으로 가득하고 힘든 일로 차 있다.
A는 대학 및 학과를 세 번 바꾸었고, 조기졸업을 통하여 해외로 나갔지만, 그 중에서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어 원하던 대학원에 못간 경우도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부모님께 손 한번 벌리지 않고 고학으로 삶을 유지했으며, 타지에서 끊임없이 사람들과 싸우고 투쟁하며 연구를 계속했다. 돌고 돌아 지금은 전 세계 최고의 대학(들으면 모든 사람들이 최고라고 부르는)에서 박사과정 및 연구를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고, 그의 힘들고 빛나는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짧은 글로는 A의 삶을 조명할 수도, 그 자체를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만큼 입체적이고 훌륭하단 표현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이기에 직접 만나지 않고서는 A라는 사람을 알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 글로 남기는 이유는, 그같이 살아가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 그리고 그만큼 멋있는 삶은 힘든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다.
2020년 COVID-19로 인하여 A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몇 년 만에 A와 I는 만났다. 그리고 I는 7시간동안의 대화를 통하여 더 많은 것을 깨달았다. I는 정체되어 있었구나. A의 시간은 너무나도 다르게 흘러갔구나. 그리고 더 이상 A는 I와의 대화가 즐겁지가 않구나. I가 아무리 A의 주변에 맴돌고 싶어도, A는 같은 공간에 있을지언정 다른 세계를 살고 있구나. 학창시절도 멋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더더욱 멋있어졌구나. 그렇기에 더 이상 그에게 친구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겠구나. 더 괜찮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떠나는 수없이 많은 주인공들처럼, A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기에, 그의 생각의 단편조차 따라가기 힘든 I에게 있어, 그와 함께하는 건 불가능 하겠구나 싶었다.
I는 A의 삶을 응원하고 또 응원한다.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길. A가 지치고 힘들 때마다 도움이 되고 싶었지만, 그건 I의 역할에서 벗어났기에 이제는 도움이 되지 않는 응원 밖에 남지 않았다. 운이 정말 좋다면 최소한 그의 삶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아직은 남아있기를 바라며 I는 그를 계속 기억한다.
PS. 좋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해준 너에게, 언제나 감사한 마음뿐이야.